천 개의 말, 하나의 진실

언어의 전장

by 영업의신조이

붉은 물의 항거

_ 유관순, 낮은 곳에서 울리다



창은 너무 작아

하늘이 반으로 잘려 있었다


젖은 벽에는

오래 마르지 못한 자국이 스며 있었고


그 자국은

숨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손을 벽에 댔다

차가웠다

돌보다 단단한 침묵이

내 손바닥을 밀어냈다


그러나 물은

돌보다 오래 남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설산에서 떨어진 한 방울이

자신의 높음을 잊고


낮은 골짜기로 기울어가듯

나 또한

이 낮은 자리로

몸을 기울였다


끌려온 것이 아니라

기울어진 것이다


벽돌 틈에 맺힌 한 방울처럼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물을 떨어뜨린다


목이 마른 것은

내 몸이 아니라

아직 밝아지지 않은

이 어둠일 것이다


누군가 내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면


내 안의 물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때릴수록

조일수록


나는 더 낮아지고

낮아질수록


내 안의 자리는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그릇이 모양을 강요해도

물은 그릇이 되지 않는다


벽의 모양을 닮을 수는 있어도

벽이 되지는 않는다


한 방울

또 한 방울


소리 없이

돌에 몸을 부딪친다


부딪히고

스며들고

자국이 되어

결국 길이 된다


저녁이 오면

작은 창 틈으로

붉은빛이 번진다


그 빛은

피와 닮았고

노을과 닮았다


나는 눈을 감는다

더 낮은 어둠 속으로


숨을

내려놓는다


그 숨은

벽을 지나

담장을 지나

이름 없는 거리로 흐른다


낮은 곳에 모인 물은

어느 날

강이 된다


나는

마르지 않는다


오늘 여기에

지금도

함께 한다



붉은 물의 항거 by 영업의신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