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생활
람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가 떠난 다음 날부터 날씨가 맑아졌다고. 람은 호텔의 주인집 딸이었다. 리셉션에 자주 앉아 있었다.
나를 그 호텔로 인도한 것도 람이었다. 호치민에서 타고 온 버스는 어느 호텔 앞에 멈추어 섰는데 사람들은 모두 그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무런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그 호텔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람은 버스 앞에 조용히 서 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호텔로 들어가 버린 것을 확인한 후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나처럼 예약 없이 도시를 방문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민 호텔 명함을 한 번 본 후 따라갔다.
방은 침대가 셋이었다. 넓고 차갑게 느껴졌다. 방에 있으면 바람이 얇은 유리창을 쉼 없이 흔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튼을 쳤지만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 들어와 걸려 있는 것들이 흔들렸다. 꿈속에서도 그 소리가 들렸다. 나는 춥고 배고팠다. 반바지와 티밖에 없었는데 날씨는 늦가을이거나 꽃샘추위가 있는 이른 봄이었다. 침대 위에서 얇은 이불을 돌돌 말아 웅크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얼굴을 녹이기 위해 거울 속의 내게 입김을 불어 넣으려 했다. 그리고 쏟아지고 있던 비를 보았다. 비어 있는 두 개의 침대를 쳐다보면 훨씬 쓸쓸해졌다. 사람이 배가 고픈 거랑 외로운 거랑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외로우면 배고프다고 말하는 버릇은 그때 생긴 것이었다.
쌀국수와 볶음밥은 몇 번 먹고 나니 생각이 없었다. 무료하고 지루했고 무엇보다 초라해졌다. 나는 그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마다 람은 웃었다. 하루는 내가 왜 웃어요? 라고 물었더니 뭐라고요? 하며 되물었다. 나는 다가가 쥐고 있는 볼펜을 빌려달라고 해 종이에 썼다. - why laugh? 람이 또 웃었다. 내일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만일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면 짐을 쌀 것이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좋다고 했다. 나는 가이드북을 펼쳐 가고 싶은 식당을 가리켰다. 그러자 거긴 별로라며 좋은 데를 알고 있다고 했다.
스테이크와 핫폿을 먹으면서 우리는 서로 할 수 있는 말만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만 이해했다. 그리고 서로의 발음을 확인하기 위해 종이 위에 말들을 적었다.
‘난 코미디언도 아닌데 왜 나만 보면 웃어요?’
‘난 원래 웃음이 많아요.
‘어제는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서 샤워를 하다가 혼났어요.’
‘아, 미안해요.’
‘내일도 비가 올까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왜 혼자 다니죠?
‘이유는 없어요.’
‘하나보다는 둘이 나아요. 다음엔 꼭 둘이 오세요.’
‘좋아하는 영화 있어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요.’
‘좋아하는 소설은?’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어요.’
‘호치민에 살고 싶지 않아요?
‘거긴, 가본 적은 있는데 조용한 여기가 더 좋은걸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탈 때 손바닥으로 람의 머리를 가려주었다. 람이 웃었다.
저녁에는 허름한 시장에서 국수를 먹었다.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는데 람은 걷자고 했다. 웃으면서 람에게 말했다.
“우린 지금 파티에 가는 거예요.”
시장을 나와 카페에 갔다. 시끄러운 음악 때문에 우리는 서로 적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웃으면 잘 생겼는데 왜 잘 안 웃어요?’
‘그래요? 몰랐어요.’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탑이 서 있었고 별이 빛나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환상적으로 불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바다가 흉내 낼 수 없는 조화였다. 이 도시가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고 헛되이 여러 날을 보낸 느낌이었다.
“여길 떠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지네요. 그때 나를 불러줘서 고마워요.”
람이 호텔 명함을 내밀던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고마운걸요.”
“꼭 한 번 밥을 같이 먹고 싶었어요.”
“저도요.”
“근데 왜 말 안 했어요?”
“당신과 함께 걷기 전까진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우리는 사진 몇 장을 찍고 호텔로 걸어갔다. 갈림길이 나왔다. 람은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악수할까요?”
“물론이죠.”
나는 여러 번 람의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람이 가는 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람이 돌아서며 말했다.
“혹시 다음에 여기 오실 거면 미리 연락하세요. 제가 호치민까지 마중을 나갈 수도 있어요.”
그녀는 내게 걸어와 볼펜을 꺼내어 내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었다. 나도 그녀에게 내 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그곳이 무척 우울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날의 기억들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