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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한마녀 Dec 15. 2021

식물의 위로

나의 식물 이야기

그날도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주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밥과 미역국을 준비하고, 잠시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살짝 돌리니 눈이 부셨다.

동향인 주방 창문으로 눈부신 햇빛이 쏟아졌다.


‘오! 아침엔 밝은 햇빛이 이쪽 창으로 들어왔구나.’


그 아까운 빛들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 얼른 거실 베란다로 가서 햇빛이 아쉬웠던 식물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뛰었다. 데려가고 싶은 식물들이 너무 많아서 한껏 조바심이 났다. 햇빛이 부족해서 꽃을 피우지 못한 식물들과 잎이 돌돌 말린 식물들까지 다 옮기고 싶은 욕심은 앞섰지만 손도 공간도 부족했다.

‘주방 창문이 조금 더 컸으면 좋았을 걸’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창문을 커다랗게 늘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려온 식물들을 햇빛 조각 틈으로 하나라도 더 밀어 넣으려 안간힘을 썼다.

마른 잎이 햇빛에 닿자, 내 마음에 뿌듯함이 절로 차올랐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순간 아이들 키울 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준비도 없이, 배운 적도 없이 엄마가 된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치 망설임도 없이 ‘육아’라고 답할 것이다. 특히 아들은 밥을 지독히도 안 먹었다. 한 숟갈 먹이기가 그야말로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별의별 유혹과 연기로 겨우 한입 먹여도 토를 해서 먹은 것 이상을 게워냈다. 어른 밥숟갈로 겨우 세 숟갈을 먹이느라 아이와 씨름하고 나면 나는 체력이 고갈된 사람처럼 기진맥진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다 보면 내가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인지, 수행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그래도 내일도 먹이고 모레도 먹이고...... 어떻게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서 키도 키우고 살도 찌우게 하려고 쫓아다녔다. 화분을 들고뛰면서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쳤다. 다만 다른 점은 그때의 아들은 밥을 거부했고 지금의 내 식물들은 내가 마련한 햇빛을 아주 좋아한다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난 진심으로 고맙고 신이 났다. 억지로 먹이는 고통에서 벗어나, 날름날름 잘 받아먹는 아이를 보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식물을 키우면서 아이들 어릴 때의 기억들이 자주 떠오른다.

충분히 못준 사랑이 아쉬워지면 나는 지금이라도 더 사랑을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탓에 내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진 않는다.

귀찮을 만큼 엄마를 찾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 아이들은 다 컸다며 엄마의 짝사랑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때마다 서운함을 넘어서 괘씸한 기분까지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우리 엄마 얼굴을 떠올린다.


'나도 우리 엄마한테 그랬을 거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일 거다.'

'아이들 어린 시절에 갇혀 사는 내가 어리석다 '


이렇게 스스로 위로하고도 속이 풀리지 않으면 베란다로 가서 식물들에게 고자질하듯이 하소연한다.

‘지들이 혼자 큰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지들을 키웠는데. 엄마를 우습게 봐 ‘ 너희들과 똑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이놈들아!' 끝도 없는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고자질 끝엔 늘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데, 내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스파트필름도 고무나무도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그쯤 되면 내 마음속 울분들도 다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미역국의 구수한 냄새가 난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아들 입에 억지로 밀어 넣던 시절이 휘리릭 스쳐 지나간다. 진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스치면 곧이어 나와 식물들의 시간들이 유유히 흘러간다.

언젠가 식물들과의 날들도 추억할 날이 오겠지?

그날을 추억할 때 아쉬움으로 남지 않도록 나는 지금을 마음껏 즐기고, 또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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