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드디어 주말이다. 날씨 어플을 켜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한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이다. 환기를 할 겸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이 앞머리를 훅 스친다. 아직 잠이 덜 깬 탓에 잠옷 차림으로 잠시 소파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오분쯤 지났을까, 차가워진 코끝만큼 발끝도 차가워졌다. 아, 겨울이 오고 있다.
‘어우- 발 시려. 오늘은 미뤄둔 양말 빨래를 좀 해야겠다!’
옷장 속 양말 칸에 있는 여름 양말을 모조리 꺼냈다. 날씨가 추워지면 신을 요량으로 지난여름 성수동 양말가게에서 산, 아직 택도 뜯지 않은 새 양말들까지 전부 꺼내 세탁기에 넣었다. 얇은 덧신부터 두터운 털양말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탁기 속에는 모든 계절이 함께 뒤섞여 돌아갔다.
빨래가 몇 분이나 남았으려나. 확인 차 다가선 세탁기 문에는 열심히 돌아가는 빨래통을 벗어난 여름용 덧신 한 짝이 붙어 있었다. 무게가 가벼워서 튕겨 나온 탓이겠지만, 문득 토이스토리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이 빨래가 끝나면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옷장 속에 처박혀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지난 계절에 미련이 남아 튕겨 나온 건 아니었을 까? 마치 '안 쓰는 장난감 박스'에 들어가게 될 운명을 직감하고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철 지난 장난감처럼.
‘추워지기 전에 더 많이 놀러 다닐 걸. 난 아직 가을도 제대로 못 즐겼는데. 이렇게 갑자기 겨울이라니!!’ 나 또한 지나가버린 계절에 미련이 한가득 남아있다. 일조량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타입 인지라 낮이 짧아지는 계절이 오는 게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날씨가 추워지면 움츠러든 어깨만큼이나 마음 한 구석도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인지 연말에 다이어리를 보며 한 해를 돌이켜보면 봄, 여름, 가을과 함께한 달에는 이것저것 한 게 많은데 추운 달이 다가올수록 아무것도 써넣지 않은 빈칸이 많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 패턴은 매년 한결같다)
이번 겨울은 왠지 무기력하게 보내고 싶지 않은데... 건조기 안에서 뽀송하게 마른 양말을 개다 보니 '양말'이 구원의 손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좋아하는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서면 늘 걸었던 길도 왠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 되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양말로 꽉 채운 겨울을 보내다 보면 조금은 가벼워진 겨울을 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예쁜 새 양말을 더 사고 싶어서 구실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런 이유라면 또 어떠랴. 어둡고 칙칙한 이 겨울에 예쁜 양말이 주는 작은 기쁨이라도 생기면 그걸로 된 거다 싶었다. 곧바로 29cm 앱을 열고 양말 치고는 조금은 비싸게 느껴져 장바구니에 넣어 두기만 했던 양말들을 한 번에 계산했다. 나처럼 겨울을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건네고 싶은 양말도 함께.
“새 양말들아, 나의 겨울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