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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오유 Dec 24. 2021

10주년 기념 여행이 남겨준 것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의 소중함

"우리 곧 10주년인데, 어디 가까운데라도 놀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10년 전 대학시절, 지금의 남편인 S를 만났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우리 곧 있으면 10주년이네?"라고 말했던 것이 2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쯤이었다. 회사일이, 퇴근 후의 일상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두었는데. 이제 진짜 10주년 기념일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


"요즘 둘 다 컨디션이 별로니까 그냥 서울에서 호캉스 어때?"

"와... 근데 연말이라 진짜 비싸긴 하다..."


괜찮은 평이 오가는 호텔을 예약하는 건 역시나 너무 늦어 버렸거나, 연말 성수기 시즌이라는 이유로 한껏 치솟은 숙박비 탓에 불가능했다. 인천이나 경기도 쪽도 예약할만한 숙소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부지런을 떨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는 역시나 존재했다.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기 싫은 마음과 막상 여행을 가려니 괜찮은 곳으로 가고 싶은 욕심을 동력으로 서울로 정하려 했던 목적지를 저 멀리 남해 여수까지 닿게 했다.


늦잠을 포기하고 공항으로 달려간 주말 아침, 1년 반 만에 간 공항의 분주한 공기와 비행기만으로도 10주년 기념 여행의 설렘이 쿵쾅거렸다. 여행지를 확정하고 네이버 지도 앱에 틈틈이 저장해둔 장소들을 보며 2박 3일간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대충 그려보았고 여수공항에 도착하면 우선 유명 게장 맛집에 들르기로 했다.


아차차... 맞다, 역시 여행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법이지... S는 전날 야근 후 먹은 매운 떡볶이 때문인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계속 장염 증세가 있어 우선 공항에서 급하게 약국에 들러 증상을 완화시켜줄 약을 잔뜩 먹고 나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원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저녁쯤 숙소 체크인을 할 계획이었으나, 안색이 좋지 않은 S를 데리고 다니는 건 더 이상 버거워 보였다. 아무래도 내일까지 외식을 하는 건 무리다 싶어 근처 마트에서 죽과 레토르트 식품 몇 개를 구입해서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결국 여행 첫날, S는 밤새 열과 근육통에 시달리며 끙끙 앓았고 나 역시 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그의 열이 가라앉기만을 지켜봤다.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숙소에서 쉬며 보낸 이틀이 지나고 셋째 날이 되어서야 성준은 조금 생기를 되찾아 그제야 반나절 동안 여수 여행지를 조금 돌아다니고 다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서울로 올라가는 비행기 안에서 10주년 기념 여행의 새로운 추억은 많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상기시켰다. 첫 번째는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MBTI 검사를 하면 10년째 변하지 않는 나의 J(계획형) 성향으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늘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P(충동형)인 S와의 여러 여행을 통해 적어도 여행지에서 만큼은, 무계획을 불안해하는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해두었던 동선 대신 숙소에만 머무르며 보낸 이 여행도 나름 여유 있고 좋았다. 두 번째는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것. 아프면 정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해야 놀 때도 잘 놀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왔다. 세 번째는 '건강한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겠다는 것.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의 에너지가 달라진다는 걸 듣고 체험하고 난 뒤로는 잘 챙겨 먹으려고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또 우리 둘 다 식습관이 무너져 있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며 일상을 보내도 다가올 기념일들을 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이렇게 일상을 보내면 매일이 기념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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