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째라는 마음은 한톨도 없었어요

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9)

by 반하의 수필

“오늘은 꼭 샤워를 해야 해.” 샤워를 돕기만 하고 정작 자신은 씻기지 못한 워커들은 회의 시간에 심심치 않게 그런 말을 했다. 어제는 베라가 그랬고, 오늘은 나와 소피가 그랬다. 이곳에서 샤워를 할 시간을 찾는 것은 마치 4월 중순에 있는 시험 기간에 벚꽃 구경을 갈 시간을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그러나 늘 상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던 건 부족한 샤워 때문만은 아니었다. 샤워를 하고 난 다음 입을 깨끗하고 보송한 옷, 양말을 신지 않아도 되는 슬리퍼, 새로운 수건 따위가 없었다. 김이 낀 욕실에서 다시 여름용이 아닌 흑청바지를 입고 땀이 젖었다가 마른 검은색 반팔티를 다시 입었다. 덜 마른 머리에 바람이 잘 통하는 원피스를 입고 나온 소피가 부러웠다. 제일 큰 문제는 신발이었다. 사람들이 때에 맞춰 샌들과 슬리퍼, 운동화를 자유자재로 갈아 신을 때 나는 줄곧 군화 같은 워커에 더운 발을 쑤셔 넣었다. 일 년째 똑같은 배낭을 등에 업는 세계 여행자처럼. 그리고 일 년 후 그 가방이 낡고 헤지듯 내 워커도 일주일 만에, 눈에 띄게 망가졌다.


숙소인 알파카 농장은 여러 채의 나무집에 참가자들의 방이 나뉘어 있고 주방이 있는 나무집, 마당, 마구간 등이 퍼져 있는 형태였다. 여느 유럽식 집과 같이 방안에서도 신발을 신었으니 잠을 잘 때 빼고는 신발을 늘 신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매번 워커를 신는 게 여간 귀찮고 답답한 일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슬리퍼를 하나 사 왔다면 좋았으련만, 그건 하지 못하고 그냥 맨발로 돌아다니기를 택할 때도 많았다. 가끔 날카로운 나무 조각만 조심하면 나무집의 바닥은 매끈하고 시원해서 걷기에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후베아트의 방이나 내 방으로 가는 길에는 자그맣고 뾰족한 돌들이 모여 있어서 무척 따가웠고, 나는 발을 한껏 오므려서 천천히 걸었다. 매일 발바닥이 까매졌다. 내가 자는 방은 후베아트의 방이 있는 오두막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오두막 2층이었다. 나무 계단을 오르고 주인장의 방으로 보이는 큰 방을 하나 지나쳐서 다시 한번 계단을 오르면 내 방으로 가는 문이 나왔다. 문지방을 넘으면 열기가 갇힌 짧은 통로가 나오고,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그 끝에 있다. 그 작은 방에는 딸린 화장실이 없었고 주인집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탓에 자갈길을 지나서 주방이 있는 곳에 있는 화장실, 그러니까 매일 후베아트가 밥을 먹고 입을 닦을 때 가는 화장실까지 가서 씻고 볼일을 봐야 했다.


그래서 맨 발로 그 길을 걸었을 때는 그냥 먼지 묻은 발을 연분홍색의 산만한 패턴이 있는 커버를 입힌 부석한 매트리스에 올렸다. 발만 이불 밖으로 빼놓고 존재하지도 않는 애인을 그리워하듯 몸을 웅크리거나 이불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농장 모든 곳을 누비고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잠드는 생쥐처럼 곯아떨어졌다. 일기장에는 휘갈겨 쓴 몇 문장이 남기도 했지만, 우아한 나이트 루틴 같은 건 없었다.


모든 것의 이유는 내가 그리 크지 않은 배낭 하나만을 가져왔다는 데에 있다. 가방 표면이 울퉁불퉁 튀어나올 정도로 짐을 쑤셔 넣긴 했지만, 압축팩도 없고 여러 번 확장되는 마법의 공간도 없었다. 내가 적은 짐을 고수하는 사람인가? 다소 그런 편이다. 무거워서 어깨가 아픈 것보다 부족한 것이 낫다고 여긴다. (가끔 일기장과 책, 스케치북, 수채화 물감, 필름 카메라, 돗자리 등을 차곡차곡 가방에 채워 어깨가 빠질 듯 무거워 지는 건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같은 숙소에 머무는 캠프에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가 좀 더 깡이 있었다면 캐리어를 선택해 조금 더 풍족하게 짐을 쌌으리라. 작은 짐은 작은 용기의 결과였고 나는 남은 공간을 눈치보는 마음으로 채웠다. 독일인들은 주로 배낭을 들지 않나? 나만 캐리어를 가져가면 부끄러울 것 같은데. 혹여 차에 짐을 실을 자리가 없어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기관차가 일정하게 회색 연기를 뿜어내듯이 뿌연 걱정과 듣지 않은 핀잔을 망설임없이 스스로 만들어냈다. 결국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그냥 내가 불편하고 말지.”


막상 캠프에 와서 보니 바지를 열 네벌씩 가져온 참가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워커들은 내 배낭이 세내 개쯤 들어갈 만한 캐리어나 그 정도로 큰 등산 가방이 있었다. 나는 의도치 않게 놀랍도록 간소한 짐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다음에는 꼭 캐리어를 가지고 와야지, 다짐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늘 청결에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는 것은 참을 만했다. 더 예쁘게 꾸미지 못하는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렴 사진에 찍힐 일도, 잘 보이고 싶은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히 불편함을 감내했던 내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외딴섬에 갇힌 것도 아니었는데 슬리퍼를 구하지 못한 것도 ‘나’를 말할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차를 운전할 수 있는 다른 워커에게 부탁해야 했고, 사람들과 함께 마트에 갔을 때도 ‘나’를 위해 후베아트와 있어 줄 수 있는지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후베아트의 손을 꼭 잡고 그의 킨더 초콜렛을 함께 고르는 것에만 열중했다. ‘나’를 말하는 것이 밤늦게까지 쌓인 설거지를 처리하는 거나 서툰 독일어로 샤워를 돕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이것은 더 이상 가방에 대한 글이 아니다. 용기의 모양에 대한 대한 글이다. 내게 ‘용감한’ 이라는 말에는 ‘뻔뻔한’ 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남들이 불편할 것 같아도, 다소 방해가 될 것 같아도, 누구는 다른 걸 원하는 것 같아도, 적당한 뻔뻔함으로 나의 안위를 앞에 두는 선택을 하는 용기다. 그러려면 나를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나만 달라도, 그래서 조금 튀더라도. ‘어쩔 수 없지’ 는 나에게 말하는 것밖에 몰랐는데, 남에게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어쩌라고. 그때는 한 톨도 없었던 배째라는 마음이, 이제는 옅게나마 뿌리를 내렸다.


이제는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 달라짐을 느낀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캐리어를 챙길 만큼은 용감해졌다. 어쩌면 농장 주인에게 슬쩍 웃으며 남는 슬리퍼가 있냐고 물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만큼 뻔뻔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 모든 과정이 그리로 가는 길이었다.





IMG_7662 2.JPG 함께 일했던 워커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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