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8)
그들의 중얼거림이나 울고 웃는 것을 눈으로 볼 때면 보이는 것 너머에 어떤 내용이 있을 지 이해하고 싶었기에 한국에 돌아가면 모국어로 이런 일을 하는 날을 상상했다. 언어가 통하면 사람들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을테고 그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거였다. 그러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릴까 봐 겁이 났다. 많이 이해하면 무거워질테니.
독일에서의 경험은 내게 소속감 없는 아주 일시적인 삶이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낯선 풍경이기에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서 그들을 돌보는 것은 온전히 하나의 여행이 되었다. 책임감 있는 한 문장을 만드는 것도 언어적으로 어려운 입장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나 구조적인 문제 같은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한국이라면, 그들의 삶은 별다른 장애물을 거치지 않고 곧장 내게 전달될 것이다. 일주일의 캠프를 마친 후 그들을 떠올리며“잘 살고 있겠지, 좋은 여행을 하고 있겠지”라고 안온히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영영 그들의 삶이 내게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독일에서 돌아온 곧바로 본교의 마지막 학기를 다녔다.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했던 사회봉사 과목에서, 나는 고민없이 특수학교로 봉사 기관을 선택했다. 그 학교는 우리 대학과 오 분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난 사년 동안 매일 지나쳤지만 한번도 멈춰서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봉사 첫 날부터 나는 그곳의 아이들과, 다정하고 활동적인 선생님들과, 알록달록하고 깔끔한 교실들에 반한다. 그곳에서 일하는 나를 어렵지 않게 상상할만큼. 커다랗고 나이든 사람의 손 대신 여덟살 아이의 보드랍고 작은 손을 잡고 수목원을 걷는다. 그들이 자기만의 기분과 충동에 빠지는 것을 방해하며, “손 잡고 가자. 이리 와. 천천히 같이 가자. 오늘 아침 먹었어?” 그런 말들을 한다.
몇 주가 지난 후 봉사를 담당하는 선생님께 봉사 시간을 더 늘릴 수 있겠냐는 전화를 한다. 그는 내게 중학교 3학년 반과 스무살 아이들의 직업실습 교육 등에 따라갈 기회를 준다. 성인의 나이가 된 학생들이 콘센트의 부품을 조립하는 것을 본다. 흥분한 학생이 전부 엎지른 작은 부품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어질러진 조각들을 통에 담고 먼지를 고른다. 그렇게 보지 못했던 낯선 일상을 또 체험한다.
이곳은 정말 가까이에 있었는데, 이제야 오고 말았네. 대학교 일학년 때부터 이곳에 왔으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먼 독일에 까지 가서야 코 앞에 있는 특수학교에 발을 딛은 것을 아쉬워하다 이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의 추억 없이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집 앞에 있는 공원과 카페조차 파리와 베를린과 런던에 다녀오고 나서야 어떻게 즐겨야 하는 지 깨닫게 되는 것처럼.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으며 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나서야 내리쬐는 햇볕에 멈춰서고 쉬어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먼 길을 돌아 가까이에 있는 것을 발견해 내는 일, 그것이 여행의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