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 후베아트 이야기

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6)

by 반하의 수필


우리


이틀쯤 지났을 때,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그는 어두운 방에 앉아서 축구를 보고 있었다. 당구공보다 작지만 손을 채울만큼 큰 노란색과 빨간색의 공 두개가 그의 한쪽 손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그에게 다가가 옆에 앉으며 짧은 독일어로 말을 걸었다. “안녕. 축구 좋아해?” 그냥, 그가 혼자 있었고 나도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옆에 온 내게 가라는 말을 하지 않고 대꾸를 해주었고, 어느 팀이 이기고 있는지 설명해 줬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많아도 “악 쏘Achso (아하 그렇구나)“라는 추임새를 하는 나 때문에 후베아트는 내게 계속 말을 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후베아트가 발달 장애와 함께 시각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기에 언제나 그의 이동을 챙기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축구 경기가 끝난 후 나는 소피가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다주는 걸 지켜보았다. 소피는 턱이나 계단이 있을 때 말해줬고, 후베아트의 방에서 화장실에 가는 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을 말로 묘사했다.


그날은 후베아트가 샤워하는 날이었다. 주방의 설거지를 처리하는 것보다 이곳에서 벌어질 일이 더 궁금했다. 봐도 되는지 소피한테 물었고, 그는 후베아트에게 내가 있어도 되는지 물었다. 후베아트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옷을 벗었다. 소피는 샤워부스 안에 있는 그에게 샤워 꼭지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면 되는지 알려줬고 때에 맞춰 샴푸와 바디워시를 건냈다. 내 손은 들리는 단어들을 부지런히 메모장에 적느라 바빴다. 한트투쉐(수건), 두쉐자흔(목욕용품), 두쉬겔(바디워시)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소피 대신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거울 앞에 선 그가 천천히 치약을 칫솔에 묻혀 입으로 가지고 갔고, 큰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세수했다. 더듬더듬 느린 속도로 모든 동작이 능숙하게 진행되었다. 옆에서 쫑알거리던 나는 면도가 되지 않은 부분이나 아직 거품이 남아있는 부분을 알려줬다. 내 엉터리 독일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후베아트는 내가 말한 그곳으로 다시 수건을 가져다 댔다. 잘 준비를 마친 그가 조개껍질이 올려져 있는 서랍과 창틀의 열쇠 뭉치를 지나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고, 침대에 걸터앉아 잠옷을 입는 것을 지켜보다가, “잘 자”라고 말한 뒤 어두운 방에서 나왔다.


그때부터 캠프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함께 다녔다. 나는 어딜가나 그의 손을 잡고 걸었고 그가 필요한 것을 살폈다. 후베아트는 아침으로 우유를 가득 넣은 커피와 꿀을 바른 빵을 먹길 좋아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빵에 꿀을 발라 그의 앞접시에 두고, 컵에 커피와 우유를 따라 그의 앞에 두며 말했다. “여기에 있어요. 더 필요하면 이야기해요.” 그의 손은 더듬 더듬 접시를 만지고,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가 배부르다고 말하면, 이것저것 다른 이들을 챙기던 나는 “입 닦으러 가요”라고 말한다. 입 주변에 빵가루나 우유가 잔뜩 뭍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선다. 내 키는 그의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 않는데, 커다란 그의 몸이 손을 통해 나에게 기대어진다. 우리는 하나의 턱을 올라가고 또 하나의 턱을 내려가고 다시 하나의 턱을 올라 화장실에 도착한다. 그때마다 “슈뷀레~”, “슈툴레 나흐 오븐~” 등과 같은 말을 했다. 그가 아니면 알지 못했을 말들이 익숙하게 흘러나왔다.


후베아트와 산책하고, 마트에 가서 그가 좋아하는 킨더 초콜릿을 사고, 그가 이러쿵저러쿵 떠들 때마다 ‘아하’하는 리액션을 하며 하루하루가 지났다. 그는 찌푸린 표정보다 웃는 표정이 훨씬 많은 사람이었다.


활짝 웃던 그의 표정을 생각하다 보면 야외 민속촌에 갔던 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더운 날이었고 후베아트, 야스민, 프랑크 아저씨가 나와 한 팀이 되어 한 시간 넘게 옛날 헛간, 옛날 교실, 기념품 샵, 닭장의 닭들을 보며 돌아다녔다. 안 되는 독일어로 다른 워커 없이 사람들을 이끄느나 진이 빠졌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 “집에 갈까?”라고 묻는데, 평소 늘 고개를 끄덕이던 후베아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소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잠깐 마주친 티나가 이야기한 소가 그의 구미를 당겼나보다. 야스민도 후베아트와 같은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 셋은 소를 찾아 언덕을 내려갔다. 날벌레가 날아다니고 선명한 햇빛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더운 날이었다. 넓은 들판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소는 보이지 않았다. “소가 없어. 없나 봐. 돌아가자.” 언덕을 되짚어 올라오며 나는 이제 포기하고 차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후베아트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편 들판으로 또 한 번 내려갔다. 그때 야스민이 저 멀리 보이는 나무집을 발견했다. 어쩌면 저기에 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여섯 개의 다리가 휘적휘적 열심히 움직였다. 그 나무집 앞에서, 후베아트가 외쳤다. “나 들었어!” 그는 “음매~” 하는 소 울음소리를 들어 기뻐했고, 야스민은 갈색의 소를 보아 기뻐했고, 나는 신난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후베아트의 입꼬리는 잔뜩 올라갔고 난 그의 얼굴과 야스민을 함게 담아 셀카를 찍었다. 소를 보고 왔다고,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티나에게 자랑하는 후베아트의 상기된 목소리가 너무 진심이라, 내 안에 묻혀 있던 편견이 들춰졌다. 시각장애인도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발달 장애인도 예쁜 옷을 사러 가고 싶어. 부끄럽게도, 그 당연한 사실이 그제야 내게도 당연해진 것이다.


알파카와 산책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의 기분이었다. 캠프 끝자락이었던 그날, 고대하던 알파카를 만나는 사람들의 기대치는 최고조였다. “오늘 알파카와 산책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던 걸 보면 별다른 내색이 없던 후베아트도 기대하긴 했나 보다. 농장 주인은 여러 마리의 알파카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왔고 난 난생처음 보는 그 동물의 귀여움에 놀랐다. 기린처럼 큰 눈에, 이마에는 양털처럼 복슬한 흰색 털이 나 있었다. 알파카는 울지도 않는데, 보지 못하는 후베아트도 알파카가 귀엽다는 것을 알까? 곧 귀엽다는 건 우리가 알파카를 오직 눈으로만 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종종 독수리나 호랑이를 보고도 그것이 귀엽다고 말한다. 철창에 갇흰 동물원의 호랑이를 보기 때문이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귀엽다거나 사랑스럽다는 말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 생명을 길들이고 포획될 수 있는 존재로, 위엄과 권위를 잃은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 글을 읽은 뒤로는 알파카도 고양이도 멋대로 귀엽게 보기 보다는 위엄있는 것으로 보려고 한다.

아마 알파카를 끈으로 느낀 후베아트는 그것을 강하다고 기억할 것이다. 나도 알파카의 끈을 잡았을 때 그 귀엽게 생긴 것이 뿜어내는 엄청난 힘에 놀랐으니까. 알파카의 목과 연결된 끈을 후베아트에게 넘기고 나는 그의 나머지 손을 잡았다. 후베아트는 무척 안정적으로 알파카와 걸었다. 그의 흰 팔이 알파카의 움직임에 따라 수축되고 이완되는 것이 보였다. 샌들을 신고 있는 그의 발에 풀이 스치는 것도. 알파카를 보지 않아도 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알파카의 온순하지만 힘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언어를 가장 못하는 내가, 언어로 하는 소통이 절대적인 후베아트와 짝궁이 된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소피도 우리의 케미가 좋다며 재미있어 했다. 나는 그를 점점 편하게 대했다. 밖을 걸을 때면 나는 후베아트에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설명하려고 이것저것 떠오르는 말을 뱉었다. 하늘이 정말 파랗다! 사람이 많아! 햇빛 좋다! 그러다보면 틀린 말이 아닌지 한번 더 고민하기를 생략한채 쫑알댔다. 내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도 추임새를 넣고, 그는 신나서 말을 이어가는 것처럼 나도 그냥 말하고 싶어서 말했다.


홀로 앉아 있는 후베아트에게 다가갈 때는 내가 왔다고 목소리로 알리거나, 때로는 발가락으로 그의 발을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후베아트는 즐겁다는 듯 입을 반쯤 벌리고 웃었고 더 하라는 듯 발가락을 내밀기도 했다. 머리카락이 히끗히끗해질만큼의 세월을 지낸 개구장이 소년이었다.


그가 나를 보지 못하는 동안 나는 늘 그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의 팔에 부드럽게 남아 있는 흰 털이나 살짝 차갑고 엷은 나이든 사람의 피부, 나보다 큰 손, 그 손가락에 나 있는 짧은 털들을 기억한다. 비가 와서 땅이 축축한 날에는 샌들을 신고 맑은 날에는 운동화를 신었던 것도, 그가 자주 입던 파란색 티셔츠와 자주 매던 빨간색 배낭도 기억한다. 내가 후베아트 짝궁이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금요일에는 후베아트가 애청하는 코미디쇼가 있다고 했다. 그는 혹여라도 워커들이 잊어버리고 티비를 켜주지 않을까봐 걱정인지, 아침부터 밤 10시를 강조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올수록 후베아트는 점점 신나졌다. TV가 있는 방으로 걸어갈 때는 무척 신이나서 내게 코미디쇼 이야기를 마구 하기 시작했다. 내게도 보라는 것 같길래 나는 대꾸했다. “나는 봐도 어차피 이해 못해. 독일어잖아!” 후베아트는 결연한 표정으로 또박 또박 말했다. “하지만 너는 그 코미디쇼로 독일어 공부를 할 수 있어.” 내 언어 공부까지 챙겨주는 그가 너무 웃겨서 크게 웃었다. 곧 그는 티비에 도착하고, 나와 소피는 그의 코미디쇼가 나오는 채널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티비에서는 아직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애착 공을 동글 동글 손 안에 굴리며 실실 웃고 있다. 그에게 묻는다. “너 행복해?”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왜?” “왜냐면 곧 코미디쇼가 나오니까.” 알아듣지 못할 농담들을 들으며 그의 행복을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설거지의 탑으로 복귀해야 하는 나는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외치고 그의 방에서 나왔다. 부엌으로 총총 걸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독일 시간으로 금요일 밤이 되면 문득 코미디 쇼를 보며 웃고 있을 후베아트를 떠올리겠구나. 그 방송은 영영 종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에 있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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