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5)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일찍 잠에서 깬 사람들의 목소리와 옅은 바람이 잠을 깨운다. 초록 잎사귀들과 꽃이 만발한 유월 말, 독일 시골의 오두막이다. 방의 분위기 때문인지 낡은 매트리스에 누워있지만 헛간의 짚 위에서 잠을 잔 것 같은 느낌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뻐근한 몸을 일으켜 창밖을 바라보면, 야속하게도 사람들이 나와 있다. 24시간 돌봄은 그들이 하루를 시작한 이상, 나도 얼른 옷을 걸쳐 입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막 70세 생일을 지난 토마스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거나 주위를 어슬렁 돌아 다니다, 내가 가면 몇 개 남지 않은 이를 보이며 커피를 타 달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버릇처럼 자주 반복하는 말이 있는데, 토마스의 경우에는 쓰레기를 들고 이걸 버려도 되냐고 묻는 것이었다. 비교적 청년처럼 보이는 짧은 머리의 야마스는 매일 똑같은 말 인형을 쥐고 있다. 그는 말을 더듬지만, 큰 목소리로 말하는 걸 좋아하며 “죄송해요! 근데 질문해도 돼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야마스의 절친이자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는 케빈은 상·하의가 연결된 멜빵 바지를 자주 입는다. 덕분에 야마스의 경우처럼 흘러내린 바지를 추어올리라는 말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된다. 케빈은 종종 커다란 덩치로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 주는데 나도 그에게 안긴 적이 있다. 캠프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서로를 껴안는 일이 잦았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처럼 산책할 때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그런 스킨쉽을 할 때마다 이곳에 속해 있는 기분이 들었고, 이 특별한 일주일이 벌써 그리워지는 느낌이었다. 여느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보이는 프랑크는 늘 불만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소피가 정성껏 준비한 요리마다 싫다고 말해서 그녀를 화나게 한다. 파스타도 싫고 샐러드도 싫다고 하다가 결국 한 그릇씩 더 먹는다. 그의 표현 방식이 그러함을 내게 설명했던 소피조차, 자신은 이제 미운 네 살 같은 프랑크를 상대하지 못하겠다며 진절머리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이미 옷을 입고 나와 있는 몇 명의 사람들과 잘 잤냐는 인사를 나누고 난 후에는 내가 맡은 방으로 간다. 나무집 이층에 있는 야스민, 비어기트, 그리고 비키의 방이다. 내게 잘 웃어주는 비어기트 할머니가 있어 그 방에 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비어기트 할머니는 내가 독일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내가 못 알아듣는 체를 하면 더 쉬운 말로 바꿔주거나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웃기도 했다. 비어기트 할머니는 아주 느린 속도지만 옷을 입거나 샤워하는 등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다. 비어기트 할머니의 맞은편에는 야스민의 침대가 있다. 야스민은 “야 숀 Ja schön”이라는 말로 모든 말에 응답한다. 나갈래? 라고 물으면 ‘응 좋아’라고 하고, 집에 있을래? 라고 하면 또 ‘응 좋아’이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가 가장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는 건, 샤워에 관한 것이다. 내가 샤워를 제안하면 그는 싫다고 하거나 내일 하겠다고 한다. 나는 “그럼 내일 아침에 꼭 해요.”라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는 새 옷들을 챙기고 방 안에서 옷을 뚝딱 벗어 커다란 샤워타월로 몸을 한번 감싸고 화장실로 간다. 소피에게 받은 야스민의 차트에는 샤워 시 도움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지만, 그는 늘 도움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샴푸를 너무 여러 번 펌프질하거나 충분히 비누 거품이 닿지 않은 채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샤워부스 바깥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소피에게 물었다. “이분들 매일 세수하고 머리 감아야 해?” 소피는 말했다. “나도 오늘 머리 안 감았는 걸. 그럴 필요 없어.” 그때 확실히 알았다.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휴가이며, 내 역할은 그저 그들이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호텔리어 같은 거라는 것을. 이미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이며 오랫동안 지내온 그들의 생활 방식이 있는 그들을 다그치거나 가르치는 건 내 역할이 아니었다. 그들과 하루 하루를 통째로 함께하며 각각의 성격을 알게 되고, 그러자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화장을 하고 예쁜 원피스를 골라 입는 것을 좋아하는 비키에게는 “보라색 원피스 정말 잘 어울린다! 예쁘다!”같은 말을 건네고, 야스민에게는 속옷을 갈아 입었는 지 체크하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머리를 말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어디까지 도움이 필요한 지 확인해야 할 때나 유당불내증 여부를 파악해야 할 때는 소피에게 받은 차트를 펴보았다. 참가자들의 특징, 흡연·음주·카페인·수영 가능 여부와 개인 돈 여부 등이 적혀 있는 종이였다.
비어기트 할머니와 짧은 수다를 떨고 그들이 느긋이 아침을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좀 이따 봐요!” 라고 인사하고 방에서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참 가볍다. 누군가의 안녕을 바라고 웃으며 잘 잤냐고 인사하는 아침은 보람찼다. 그 다음 할 일은 아침 식사 준비인데, 나는 우선 과일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음식을 둔 창고로 갔다. 수박, 망고, 사과, 배, 바나나, 키위, 복숭아 등 아침마다 다른 과일을 마음껏 골랐다. 독일에서는 소스 없이 잘 잘린 과일을 섞어 놓기만 해도 과일샐러드라고 불렀다. 중요한 건 다양한 과일을 열 여덟 명이 한 그릇씩 먹을 수 있게 아주 많이 자르는 거였다. 어느 날은 혼자 자르고, 또 어느 날은 비어기트나 요르간 등의 사람들이 돕기도 했다. 과일 샐러드를 완성한 후에는 나머지 아침 식사 테이블을 준비한다. 주방에 있는 쇼핑백 두 개에 빵집에서 갓 사 온 따뜻한 빵들이 가득 차 있다. 잠멜(Sammel)이라고 부르는 작은 빵들이다. 흰 빵도 있고 통밀빵도 있고 양귀비씨가 콕콕 박혀 있는 빵도 있다. 어느 날은 프레쩰도 있다. 프랑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빵에 베이글 자르듯 칼집을 낸다. 그리고 치즈와 부어스트라고 부르는 햄들을 담은 접시를 여러 개 만든다. 소피는 이것에도 정성을 담아 호텔 조식처럼 예쁘게 만들었다. 요거트와 뮈슬리, 크림치즈, 딸기와 블루베리를 포함한 여러 개의 잼들, 땅콩버터, 바질 페스토, 꿀, 누텔라, 버터 등의 뚜껑을 열어 야외의 긴 식탁에 늘어뜨린다. 가장 중요한 건 많은 양의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다. 문화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유를 많이 넣은 커피를 꼭 마셨다. 소피가 내게 진짜 커피라며 따로 한 잔을 주었을 때야, 이분들이 늘 마시는 커피는 전부 디카페인이라는 걸 알았다. 난 커피를 따라주고 요거트를 떠주고 스스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빵에 원하는 것을 발라서 접시에 담아 주기도 했다.
점심 시간까지 이어지는 여유로운 아침 식사 후에는 워커들의 회의 시간을 가졌다. 주로 나뭇잎 그림자가 넘실 거리는 네모난 나무 테이블에서 했다. 모기에 물리기도 했지만 새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 퍽 평화롭고 졸립기까지 한 회의 시간이었다. 졸린 건 어쩌면 들리는 언어가 독일어라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소피에게 받은 비타민을 입 안에서 굴리는 사이 다른 워커들은 각자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 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했다. 워커인 티나가 영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피는 내게만 영어로 필요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말할 차례가 왔다. 혼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해서 처음에는 그저 간단히 ‘괜찮다, 좋다’고 말했고, 그다음에는 꿋꿋이 내가 본 것을 말하거나 잠이 부족해 피곤하다고 말했다. 쿤터분의 일은 마치 집안일 같아서, 알아서 쉬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일은 스스로 끝나지 않는다. 꾸준히 좋은 마음을 내고 다른 이들을 잘 보살피기 위해서는 내가 쓰러지지 않게 조절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상태를 나눈 후 오후에 어떤 활동을 할지, 누가 어디에 갈지 정했다. 비슷한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며 하루에 한 가지씩 밖으로 나가는 활동을 넣었다. 이번 캠프에는 민속 박물관 가기, 호수 수영장 가기, 호수에서 배 타기, 알파카와 산책하기, 쇼핑하기를 비롯해 집에서 여유롭게 그림 그리고 영화 보기도 있었다. 시간 단위의 계획은 없었고, 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수영장도 가고 싶고, 사우나도 가고 싶어 고민을 할 때면 소피는 욕심을 내려놓고 무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신경썼다. 사람들이 피곤해지면 그건 더 이상 휴가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는 지보다 ‘즐겁게’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비어기트 할머니가 아침마다 여러 개의 팔찌를 늘어놓고 무엇을 찰 지 고를 때 서두르라고 독촉하지 않을 수 있었고, 케빈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하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를 수 있었다. 일터나 시설에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 이들은 큰 슈퍼마트에 가서 키링이나 인형 같은 것을 사고, 카페에 가서 스스로 음료를 주문해 마시는 것도 여행 같은 일이었다. 중간 중간 화장실에 데려가고, 간식을 먹고, 한 사람씩 원하는 것을 사려면 슈퍼에서 장보기만 해도 몇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 눈에 소피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리더였다. 그가 참가자들을 대하는 말투와 행동에서 소피가 이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지, 얼마나 이들을 존중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다정하고 성실한 그 사랑이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보였고 소피의 곁에는 그를 껴안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저녁 소피는 기꺼이 시간이 많이 드는 맛있는 요리를 준비했다. 재료를 살 때도 싼 것보다는 유기농으로 좋은 것을 샀다. 그런 소피 덕에 독일에서 여지껏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었던 케제 슈페츨레, 샐러드 파스타, 코코넛 커리를 맛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늘 누군가를 돕고 즐거운 하루를 만들려 애쓰는 것은 내 하루에도 도움이 됐다. 그들은 내가 독일어를 못한다고, 혹은 다르게 생겼다고 무시하지 않았고 내 도움을 순순히 받아줬다. 그 속에서 독일에서 만성적으로 느끼던 외로움이나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감각을 느낄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