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3)
이 단체의 모든 캠프는 무어나우라는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사람들을 태울 봉고차 세 대가 그곳 사무실에 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무어나우는 기차로 4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나는 캠프 전날 밤에 사무실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파보리테파크 역에서 S반을 타고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으로 간다. S반 역이 기숙사 코앞에 있는 탓에 기차가 오기 3분 전까지 작성하던 블로그에 열중하고, 빠르게 업로드 버튼을 누른 후 방에서 뛰쳐나왔다. 일주일의 여정을 위해 옷가지를 쑤셔 넣어 울퉁불퉁하게 크기가 커진 배낭 하나를 메고, 손에는 남은 뮈슬리를 몽땅 부은 요거트를 쥐고 있다. S반에 타서 가져온 쇠숟가락으로 요거트를 퍼먹었다. 점심을 못 먹기도 했고 돌아오면 상할 것 같은 음식을 처리하는 거였다. 독일에 온 후 야외나 공공장소에서 보여지는 나의 행동이 과격해진 경향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묘한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쇠숟가락으로 요거트 퍼먹고 휴지로 대충 닦아 가방에 넣기도 그런 종류였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고속열차 ICE를 타고 2시간쯤 가서 뮌헨 중앙역의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그곳은 상점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은 조용한 기차역이었다.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졌다. 쌀쌀해진 날씨에 팔을 쓰다듬으며 다음 기차를 기다렸다.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시던 한 할머니가 내게 여기에서 기차를 타는 게 맞는지 물었다. 독일어로 맞다고 대답하고 도착한 기차에 함께 올라탔다. 이 기차로는 단 50분 후면 무어나우에 도착이었다. 짜이츠 미술 여행을 갈 때 느꼈던, 내장까지 떨렸던 그 매슥매슥한 느낌을 떠올렸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무척 평온했다. 고향집을 갈 때만큼의 편안함은 아니지만 싱그러운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독일에서 일주일짜리 첫 출근을 하는데, 이 정도의 평온함이라니 뿌듯했다. 한번 지독하게 떨리는 걸 해내고 나면 그다음 일에는 조금 무던해질 수 있다. 출근이라는 말은 돈을 받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사실 릴리아가 말한 대로 정말 일당 80유로를 받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소피가 보내준 안내문과 계약서에는 워커는 자원봉사자이며 운영비가 남았을 시, 최대 80유로까지 제공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은주의 편지를 한 번 더 읽고, 텔레그램에 도착한 친구의 응원 메시지에 답장하는 동안 어디일지 모를 그곳과 가까워져 왔다. 모르는 곳으로 자꾸만 떠나는 것이 청춘같이 느껴졌다.
기차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 30분이었다. 소피가 동료 워커도 나와 같은 기차로 도착한다고 말했기에, 누가 나와 일하게 될 사람일지 궁금해 캐리어를 든 사람들을 유심히 보며 계단을 내려갔다. 알록달록한 색이 많다는 것 말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기차역 화장실에 들러 잠시 숨을 골랐다. 거울을 보며 내게 씩 웃어주고 나가는 문을 열자마자 소피와 눈이 마주쳤다. 단발 기장의 검은 머리에 작은 키, 환하게 웃으며 “알 유 하리?”라고 묻는 모습이 한눈에 봐도 소피였다. 눈에 띄게 아시아인인 나도 그에게 영락없이 하리로 보였을 것이다. 소피는 나를 안으며 친근하게 인사했다. 내 짐을 옮겨주려는 듯 의자 옆에 있던 낯선 캐리어 두 개에 시선을 던졌고, 나는 내가 든 배낭이 짐의 전부라고 말했다. 소피를 만나자 마음이 한층 놓였다.
역에 세워둔 소피의 차는 검은색의 큰 봉고차였다. 워커 티나는 커다란 캐리어 하나를 가지고 그곳에 서 있었다. 티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영어에 능숙한 소피에 비해 티나는 아주 짧은 문장도 어려워했다. 그래서 소피와 티나의 대화는 주로 독일어로 이어졌다. 알파카 팀의 참가자는 열 네명이며 일을 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라고 했다. 소피, 티나, 하리, 그리고 베라였는데 베라는 내일 아침에 온다고 했다. 생각보다 참가자는 많고 일하는 사람은 적어서 놀랐다. 내가 할 일이 없어 심심할 일은 없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일은 얼마라도 할 수 있으니 제발 독일어도 못하고 경험도 없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4층짜리 회색 건물 앞에 차가 섰다. 여러 단체의 사무실이 모여 있는 건물이었고, 그 중에 단체의 사무실은 2층에 마주보고 있는 큰 방 두 개였다. 4층에 있는 다락방과 지하 1층에 있는 창고도 이 단체의 차지였다. 사무실은 따뜻한 조명에 알록달록한 색이 많았다. 빨간 의자나 큰 화분들, 파란색 창틀, 벽에 크게 붙은 쿤터분트 여행의 사진들이 보였다. 한쪽 벽면에는 큰 쇼파가 있었고 매트리스도 여러개 쌓여있었다. 다른 하나의 방은 커다란 책상들이 있는 사무 공간이었는데, 그곳도 모든 곳에 물건이 있으며 알록달록 밝았다.
티나와 함께 방 하나에 짐을 내려놓고 캠프의 짐을 꾸리는 소피를 도우러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의 복도 끝, 왼쪽 면에 회색 철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자 영화에 나올 것 처럼 약간 어두운 조명에 모든 벽이 물건들로 꽉 차있는 복잡한 창고가 나왔다. 각종 파스타 소스들부터 그림 도구, 휴지와 같은 위생 용품, 초콜릿, 보드게임, 캠핑용품과 스키도구까지, 없는 게 없었다. 나는 소피가 챙기라고 한 그림 도구들을 찾아서 적당해 보이는 붓과 팔레트, 물감 같은 것들을 키스터(플라스틱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피가 담아 놓은 식재료들을 주차장에 세워놓은 봉고차 트렁크에 옮기는 일이 시작됐다. 호기롭게 들어보았던 첫 번째 키스터가 미친 듯이 무거워 ‘억’ 소리를 내며 내려놓았다. 한순간에 허리가 나갈 뻔했다. 소피는 무거운 걸 들 때 절대 허리를 숙이지 말고, 앉은 상태에서 스쿼트 자세로 일어나듯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자세를 잡은채 계단을 오르고, 주차장에서는 비를 맞으며 봉고차의 트렁크로 여러 개의 키스터를 옮겼다. 와인과 맥주, 각종 잼과 통조림들이 들어있어서 정말이지 무거웠다. 뻐근한 허리를 툭툭 치며 봉고차 트렁크에 앉았다. 밖으로는 검은 하늘에서 세찬 비가 내렸다. 도착한 날부터 이렇게 빡세게 일하게 될 줄 몰랐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침에 마저 옮길 것들을 한가득 문 앞에 세워놓고 사무실 바닥에 놓은 매트리스에서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