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에 던져지기

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1)

by 반하의 수필

내가 교환학생으로 간 교육 대학교는 독일에서 몇 안 되는 특수교육 학과가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친구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특수교육을 선택한 친구들은 대개 많은 현장 경험이 있었다. 전공을 선택하지 전에 1년 정도 특수학교에서 일을 해보았다거나 학교에 다니면서도 중간중간 실습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이 일이 자신에게 잘 맞는 것 같고, 즐거우며, 앞으로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과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늘 궁금해졌다. 특수교육은 어떤 걸까? 그 매력이 무엇일까?


미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같이 차를 타고 있던 릴리아에게도 물었다. 그도 특수교육 전공이었다. “왜 특수교사가 되고 싶어?” 릴리아는 답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리고 대학에 오기 전에 1년 동안 특수학교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정말 좋았거든.” 나는 그들이 한 경험이 부러웠다. 대체 뭐가 좋았길래, 얼마나 좋았길래 계속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었을까? 부러운 마음을 담아 릴리아에게 넋두리하듯 말했다. “나도 여기에서 특수교육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럴 때마다 어떻게 골랐냐고 물어보니, 경험을 꼽더라. 나는 사실 장애인과 관련된 경험을 해본 적이 없거든. 나도 그 경험을 했으면 원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 그때 릴리아는 예상치도 못한 답변을 건넸다. 그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의 링크를 보내며 “여기가 네게 그런 경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인데 대표님 번호도 보내줄 테니까 한번 연락해 봐. 아니면 내가 대신 물어봐 줄까?”라고 말했다. 나는 얼떨결에 어느 단체 대표님의 전화번호를 쥐고 “고마워, 내가 연락해 볼게”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독일에서의 큰 경험 중 하나인 ‘쿤터분트’를 만났다. 가끔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 필요가 있다. 그 이야기가 어떤 구체적인 경험을 가져올 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릴리아가 소개해 준 단체는 성인 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여행 캠프(Freizeit / vacation)를 제공하는 단체이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일주일, 혹은 2~3일 정도의 캠프가 일 년 동안 150개가 넘게 계획되어 있었다. 알파카랑 산에 가기, 호수 옆 오두막에서 일주일, 프랑스 여행, 춤 세미나, 음악과 어울리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진 캠프들이었다. 팀의 규모도 10명 이내부터 3-40명까지 다양했다. 릴리아와 같은 대학생들이나 성인들 누구나 이곳에 ‘워커(Betreuer/caretaker)’로 참여할 수 있었고, 워커는 참가자들을 돌보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좋은 휴가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워커가 되기 위한 신청 조건은 없었지만, 신청 페이지도 없었기 때문에 사이트에 있는 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단체 대표인 바바라에게 전화가 왔다.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다시 한번 나를 소개하며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독일어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조금 할 수 있다고 말하자, 바바라는 곧장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가지 질문에는 어설픈 독일어로 답했지만, 그의 설명이 길어지자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다급히 그의 말을 끊고 “나 못 알아들어! Ich kann nicht verstehen” 라고 외쳤다. 그는 내가 독일어를 하지 못한다면 워커로 올 수 없다고 했다. 릴리아 등의 독일 친구와 함께 오는 것은 괜찮지만 혼자서는 안 됐다. 참가자들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소통과 빠른 대처가 중요한 일이었다. 이해한다고, 그래도 한번 여쭤보기라도 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그 단체에서 메일이 하나 왔다. 바로 이틀 후 열리는 일주일간의 알파카 캠프에 갈 수 있겠냐는 거였다. 원래 가기로 한 워커가 아파서 갑작스럽게 사람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빠른 답변을 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마음은 혼란과 당황이었다. 가고 싶었던 곳에 갈 수 있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지만 ‘지금 이렇게 갑자기’ 가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캠프에 가게 된다면 놓쳐야 할 것들이 물밀듯이 떠올라 내 발목을 잡았다. 토요일에는 외부에서 열리는 스윙 댄스 워크숍과 파티, 일요일에는 한국 친구들의 버디와 언어 교환 파트너들을 모아 한국 음식을 나누어 먹는 파티, 월요일에는 새미와 슈투트가르트에서 축구 보기, 화요일에는 릴리아와 새미를 도와 전시를 준비하기, 수요일에는 새미 여자친구와의 만남 등이 계획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아쉬운 건 목요일이었는데, 그날은 내 그림이 전시에 걸리는 날이었다. 미술 학부의 주최로 파리 여행을 갔던 팀과 짜이츠 여행을 갔던 팀이 여행 동안 그린 그림들을 전시하는데, 목요일에 그것의 오프닝 행사(Vernissage)가 있었다. 내 친구인 새미와 릴리아가 행사 준비와 진행을 맡았기에 그들의 진행도 보고 싶었다. 금요일에는 교환학생들이 모두 공원에 모여서 하는 피크닉 행사가 있었고, 율리아와 아나벨과 함께 또 한 번의 자체 수채화 수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토요일에는 내 버디 사라와 함께 하일브론의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기로 했었다. 떠나지 않고도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반면 그 캠프는, 당장 이번 주여야 할 필요가 없었다. 캠프의 내용은 호수 근처의 오두막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알파카와 산책하기였고, 다른 캠프들에 비해 그것이 썩 욕심나지도 않았다. 이 경험이 내게 무척이나 커다란 일이 될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시를 놓치는 것이 싫었다. 다음에 또 나를 급하게 찾을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마지막 기회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거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순간, 무작정 릴리아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문자도 보내본 적 없는 사이였기에 무척 갑작스러웠을 통화에 릴리아는 곧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 캠프에 갈지, 말지 고민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캠프 경험이 많은 릴리아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릴리아는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며, 네게 이 상황이 너무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워서 어려울 것 같다면 거절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으면 가면 된다고 했다. 알파카 캠프에 가본 적은 없지만 무척 좋다고 들었다고, 자기 친구가 이번에 나와 같은 팀으로 간다면 미리 연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릴리아의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 캠프는 매번 우리를 아주 차가운 물에 던져. 준비되지 않았을 때 말이야. 늘 갑작스럽게 큰 일을 하게 돼. 근데 던져지고 나면, 늘 좋았어. 기꺼이 빠지고 나면 배우는 게 많았어. 너도 좋아할 거야. 다 잘될 거야.” 한창 전시 준비를 하는 릴리아이기에, 오프닝 행사를 놓치는 게 너무 아쉬우니 그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면 덜 아쉬울 것 같았다. 릴리아는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설명했다. 샴페인과 샴페인 잔이 놓일 거고, 그림이 걸려있을 거고 교수님의 말씀도 있을 거고 그림을 자유롭게 보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준비한 오프닝 멘트도 친히 들려줬다. “고마워, 캠프에 갈게”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일단 결정을 하고 나면, 그 결정을 왜 해야만 했는지가 차차 드러나기 마련이다. 기다리고 있던 많은 행사들을 포기하고도 캠프에 간다고 했다.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내게는 이 말이 모든 것의 이유였다. 나는 성장하고 싶었다. 그러니 내 존재의 달라짐을 기대할 수 있을 만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일상에서 내가 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들은 내가 온 존재로 뛰어들어야 하고 겪어내야 하는 경험이 아니라 친구들과 만드는 소중한 추억에 가까웠다. 그렇게 떨리고, 긴장되고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독일에서의 일 년이 단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예쁜 추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험을 통해 결국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하게 되길 바랐다. 그러려면 부담 없는 곳이 아니라 나를 키우는 곳으로, 선생이 많은 곳으로 부단히 노를 저어야 한다.

성장하고 싶은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의 비법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늘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것은 무엇보다 행복의 비법이다. 오늘만 빛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다른 모습으로 빛날 수 있다. 발전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저 조금씩 새로워 지고 싶다.






IMG_0690.JPG 내가 없는 동안 했던 친구들의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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