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음악 수업에서 받은 환대

슈테판, 플로린, 세다, 타니타,... 반한 사람과 만난 사람들

by 반하의 수필

통영의 한 카페에서 독일 학교의 수강신청 사이트에 들어갔다. 교육대학교이기에 예체능, 수학, 과학, 영어, 독일어를 포함한 모든 과목이 있었다. 나는 주로 예체능 과목을 들락날락 거리며 번역기를 돌려 듣고 싶은 강의를 찾았다. 한국의 내 전공과는 전혀 다른 과목들이 내 마음에 들었다. 수채화 수업, 영어 발음 수업, 독일어 말하기 수업 등이었다. 강의 방식도 다양했는데 가장 보편적인 건 일주일에 한 번 교실에서 1시간 30분씩 수업을 하는 것이고, 이외에는 콤펙트 세미나라는 이름으로 한두 번의 주말에 하루 종일 하는 수업이나 격주로 한 번씩 하는 수업 등도 있었다. 다만 많은 강의가 강의계획서랄 것도 없이 교수님 이름과 강의명, 주의사항 정도로 적혀 있었다. 체육 수업에는 주의사항으로 ‘임산부는 꼭 강사에게 미리 이야기해 주세요’라는 말이 붙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이 수업이 몸을 많이 움직이는 수업인가 보다 추측했다. 그림과 춤, 기타 등으로 가득 채워진 나의 수강 신청 목록을 본 동생은 대학 강의가 아니라 방과 후 수업을 고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차피 전공 학점을 못 받을 테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지, 하고 고른 수업들이었다. 그렇게 강제성이 제외된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을 때 내가 고르는 것은 예술과 언어뿐이다. 그때 골랐던 수업 중에 ‘리듬, 목소리, 그리고 즉흥연주’라는 강의명의 콤펙트 세미나가 있었다. 주말 이틀 동안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음악 학부의 수업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정말이지 뭣도 모르고 신청했던 그 수업에 가야 할 날이 실제로 도래했다.


전날에는 자넷, 그리고 새미와 슈투트가르트에서 축구 퍼블릭 뷰잉을 보러 갔었다. 새미의 여자친구 발레리와 새미 고향 친구들도 처음으로 만나 함께 맥주를 마시며 어울렸다. 나는 대체로 한 발짝 떨어져 축구에 열광하는 그들의 모습을 눈에 담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늘 그렇듯 그날도 새미는 가지 말라고 나를 잡았지만, 나는 다음 날 오전 9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냥 아프다고 하면 된다고, 무슨 토요일 아침에 수업을 가냐며 shit이라고 하던 새미가 기억난다. 그럼에도 나는 흥미로웠던 그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 늦게 잠에 들었다. 이 수업의 경우 미리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교환학생입니다. 독일어를 잘 못하는 데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보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교수님께 매우 다정한 답장이 왔다.




안녕 하리,

대부분 음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도 참여할 수 있어. 언어가 별로 필요하지 않거든. 내가 말할 때는 영어로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충분한 물과 쉬는 시간에 먹을 걸 가져와. 그리고 혹시 있다면 누울 수 있는 매트나 담요를 가져와. 곧 보자!






7로 시작하는 교실이 생소했다. 자주 가던 1번 건물이나 11번 건물이 아니기에 지도를 보며 그 건물을 찾았다. 도서관 뒤편으로 넘어가니 피아노소리가 들려오는 건물이 있었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건물의 2층 가장 끝에 있는 작은 방이 교실이었다. 문을 여니 책상 대신 동그랗게 놓인 의자가 7개 있었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고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긴 금발 머리의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왜인지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잘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 시간이 되고 학생들이 모두 도착하자마자,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마주 보고 간단한 게임을 했다. 마치 참참참 같은 느낌이었는데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서로 실수를 하며 깔깔 웃었다. 함께 게임을 한 아이는 슈테판이라는 남자였다. 그 애는 웃음을 곧잘 터트리고 말투가 다정해서 금세 마음이 열렸다.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가는 사라의 진행에 낯선 8명이 금세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섞였다. 나를 제외한 7명의 학생은 모두 음악 선생님이 될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다 함께 의자를 들고 건물 밖 잔디밭으로 나가 둥글게 앉았다. 의자를 두드리고 자신의 의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거나 간단한 손동작과 함께 노랫말을 배워 따라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음악 활동들이었다. 빠르게 흐르는 독일어를 다 따라 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Das ist ein Stuhl! (이건 의자야)”과 같은 말들을 들리는 대로 열심히 따라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의자에서 일어나 더 넓은 곳에 선 뒤 한 사람이 리듬에 맞춰 만든 동작을 함께 따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노랫말이나 음을 함께 따라 했다. 계속해서 진동하는 음악 속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 자주 눈을 맞췄고 손을 잡거나 어깨를 감싸기도 했다. 미술 수업과는 참 달랐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각자의 종이 위에 집중하는 시간이지만 음악은 각자의 목소리와 느낌이 어우러져 하나의 순간으로 모여드는 거였다. 거의 두 달을 함께한 미술 친구들보다 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음악 친구들과 훨씬 어울리기가 쉽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 활동을 하는 동안 선생님은 독일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했으며, 학생들이 의견을 말할 때나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나 한 명을 위해 영어를 사용했다. 이 정도로 많은 부분이 영어로 진행된 자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고, 감동했다. 대화가 독일어로 돌아가더라도 누군가가 다시 영어로 바꿔주었다. 나는 순간을 눈치채지 않을 없었고, 매 순간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플로린이라는 남자아이였는데, 그 애는 아시아 혼혈인 것 같았다. 나무 밑에 앉아서 맨발과 민머리를 드러내며 햇빛을 받고 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날렵한 두상에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마른 몸이었다. 싯다르타가 떠올랐다. 영적인 에너지가 뚝뚝 묻어났다.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눈에만 담았다. 드넓은 자연을 바라볼 때 미술관에 걸린 작품을 바라보는 것보다 좋고, 어떤 사람을 바라보며 매료됨을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귀하다.


내가 사랑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면, 모두 내가 진심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끼게끔 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따라 하고 싶은 멋짐과 아름다움 정확한 과녁으로 담는 것이다. 그때 기분 좋은 힘이 이미 내 안에 퍼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시간도 있었다. 둘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은 같은 음을 계속 낸다. 다른 한 사람은 눈을 감은 채 같은 음에서 시작하여 자유롭게 다양한 음을 연주한다. 세다와 함께 인적이 드문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우리는 마주 앉은 채 눈을 감았다. 같은 음으로 두- 하는 소리를 냈다. 평화로웠다. 안정적인 세다의 목소리를 기준 삼아서 나는 원하는 대로 음을 움직였다. 웅웅 거리는 날벌레 소리에 숲이 섞여 들어왔다. 우리의 목소리는 자연스러웠다. 아무런 악기도 없이 두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만으로 흐르는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황홀했다. 키스가 음악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몇 시간이고 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교실로 돌아와 타카티나라는 활동을 했다. 명상과 음악이 결합된 활동 같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동그란 원에서 리드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울리는 소리와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득 찬 곳에서 매트에 누웠다. 선생님은 누워있는 학생들 사이를 걸으며 싱잉볼 같은 악기를 연주했다. 온몸이 나른해졌다. 잠시 잠에 들었을까, 수업 시간이 끝났다. 오전 9시 반부터 저녁 5시까지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나 함께 몸을 움직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 순간에 머무는 방법은 참 다양하구나. 방에 돌아오니 영성이 충만해지고 내 몸이 깨끗해진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는 것도 크게 자극적인 활동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자극적인 것을 일체 하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주 깊은 사람의 향기를 느낀 것 같았다. 그 여운에 젖어 있을 뿐 외롭다는 감각도 없었다. 노곤 노곤 해질 만큼 따뜻한 환대의 감각이 온몸을 적셨다.

둘째 날에는 전날 숙제로 준비해 온 것을 한 명씩 발표했다. 노래 한 곡을 정해 바디프로케션이라고 몸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로 리듬을 맞춘 동작을 하는 것이다. 나는 리듬에 무척 약하기 때문에 정말 어려웠다. 아이들이 하나 둘 발표를 했고, 그들은 뛰어나게 잘했다. 하지만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는 것도 어려운 내게 그룹이 함께 할 수 있는 한 소절의 동작을 만드는 것은 별나라의 숙제였다. 나는 비틀즈의 렛잇비라는 노래로 고개를 한 바퀴 돌리고 손을 아래에서 위로 함께 올리는 등의 동작을 구상해 갔다. 하지만 내 차례가 되자 정말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었다. 수업 시연을 하는 것처럼 영어로 아이들에게 동작 시범을 보여주고 진행을 해야 했다. 내가 쭈뼛쭈뼛 한 차례 진행하자 아이들과 선생님은 제각기 조언을 주었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그냥 잘하는 척하라고, 네가 이 수업의 주인이라는, 웃으면서 눈빛을 똑바로 하고 목소리도 키우고 당당하게 하라는 거였다. 나는 다시 한번 해볼 기회를 받았고, 최대한 당당한 척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며 진행했다. 아이들은 자랑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봐주었고 그들의 따뜻한 눈빛에서 응원이 가득 느껴졌다. 그 속에서 나는 자신감을 배웠다. 자신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주변인들의 응원과 따뜻한 지지에서 비로소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 시간 20분 동안의 점심시간이 있었다. 도시락을 꺼내러 교실로 올라가려고 하는 참에 슈테판이 말을 걸었다. “하리, 너 음식 가지고 왔어? 우리 가지러 올라갈 건데.”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혼자 잔디밭에 누워 잤을 테지만, 친구들과 함께 돗자리에 앉는 편이 훨씬 좋았다. 슈테판, 세다, 유디드, 플로린, 타니타와 함께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엉덩이를 바깥에 조금 내어 놓은 채 모여 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나는 늘 일기장을 펴놓고 무언가를 그리거나 적는 사람이었고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 공책에 가득 찬 낯선 글자를 본 슈테판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글의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냐고도 물었다. 내 일기장에 자음과 모음을 적으며 “(ㄱ) 그, (ㄱ) 그, (ㅏ)아, (가)가” 따위를 설명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플로린이 말했다. “나는 한국어 몇 마디밖에 몰라.” 놀라 물었다. “몇 마디를 어떻게 알아?” 플로린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 하프 코리안이잖아.” 플로린과는 원래 친했던 슈테판도 항상 잊는 사실인 양 놀랐다. “Du?? (너??) 하프 코리안이라고?” 플로린은 여전히 담담한 말투로 자신이 엄마에게 들은 한국어 몇 문장을 말했다. “양말 신으세요. 잘 자. 고마워. 안녕.” 마침 그때 내가 틀어놓은 노래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됐다. 플로린에게 물었다. “Do you know 사랑해?” 알지 못한다는 플로린에게 그것이 I love you임을 말해주자 그는 잊었다는 듯, 엄마에게 물어봤었다며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인의 향기는 전혀 풍기고 있지 않은 그가 하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나는 반쯤은 같은 뿌리를 가진 그 애가 더 궁금해졌다. 플로린은 왜 이렇게 독일인 같을까? 하프 독일인, 하프 모로칸인 새미는 분위기나 성격까지 정말 딱 반-반이 잘 융합되어 있는 느낌인 반면 플로린에게는 한국인의 느낌이 전혀 없었다. 한국인인 플로린의 엄마는 어떤 분일까? 그분은 어떻게 독일에서 아이를 키웠을까? 한국말을 하지도 않고 한국 음식을 먹이지도 않았을까? 독일에서 아이를 키운 그 한국인 여성과 반쯤 한국인인 이 남자애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이틀 간의 수업이 끝났다. 아이들과 헤어지기가 아쉬워 혹시 함께 저녁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복도에서 얼쩡거렸다. 슈테판이 말했다. “우리 왓츠앱 그룹 방 만들었는데 하리 네가 없네. 전화번호 알려줄래? 그리고 우리 바 갈 건데 같이 갈래?” “가도 되면… 내가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너네만 괜찮으면 나는 좋아..” “당연하지!”


플로린의 차는 작고 낡은 빨간색 마티즈였다. 허리를 잔뜩 숙여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렇게 멋 부리지 않는 차를 타는 사람이 한국에는 별로 없는데, 독일은 흔했다. 다들 집안 창고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빌려온 모양새였다. 여전히 매력적인 플로린의 운전을 방해하며 큐브라는 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에게 여러 질문을 했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일본의 무술인 가라테를 어릴 적부터 배웠고, 지금은 도장에서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입이 떡 벌어지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쩐지 영적이고 몸이 좋더라… 안에 표범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눈빛이야..’ 나는 또 한 번 물었다. “한국에 가본 적 있어?”. 거의 20년 전인 7살 때 한 번밖에 없다고 한다. (헐, 그때의 한국은 지금의 한국과 다른 세계일걸..) 재작년에 엄마와 함께 가려고 했었는데 코로나로 가지 못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셔 이제는 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애가 언젠가 한국에 온다면 꼭 나를 만나줬으면 좋겠다고, 그 애의 한국인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드히스부르크에 있는 ‘큐브’라는 바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안을 둘러보지도 않고 야외 자리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야외에 앉는 것도 독일스러웠다. 담배를 피우기 위함이었는지 슈테판과 플로린은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슈테판과 플로린은 에스프레소 마티니를 주문했고,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도 같은 것을 주문했다. 처음 먹어본 에스프레소 마티니의 맛은 단순했다. 알코올향이 났고 커피맛이 썼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플로린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그 애는 베를린에 여자친구가 있으며 음악 작업을 하러 베를린에 자주 간다. 역시 매력적인 애들은 다 멋진 애인이 있지! 그 애와 애인이 베를린의 힙한 예술가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섯 명이서 앉아 있으니 대화가 한 곳으로 모이기 어려웠다. 가방 안에는 꺼내기를 주저하고 있는 대화 카드 상자가 있었다. 독일 친구들과 해보는 날을 고대하며 한국에서부터 가져왔고 미술 여행에도 가져갔었지만 아직 한 번도 같이 하자며 꺼내보지 못했었다. 내가 이 아이들에게 묻고 이야기해보고 싶은 수많은 질문들이 이 안에 있었고 이 아이들이 모여 있지만 이것을 하지 않고 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혼자 만지작 거리던 대화 카드를 꺼내며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이거… 내가 가져왔는데… 해볼래? 대화 카드야..” 아이들이 무척 흥미로워하는 동안 나는 차분한 척 카드를 6개의 테마로 고르게 정렬했고, 어떻게 하는지 설명했다. 성공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고, 나도 독일에 와서 어땠는 지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어는 서툴렀지만 잘 들어주는 아이들이 있으니 끝까지 말해보려 노력했다. 부담을 가질까 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고 외로웠다는 이야기는 줄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다 함께 동그랗게 서서 어깨동무하듯 단체 허그를 하며 헤어졌다. 이 친구들이 항상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헤어질 때 하는 단체 허그라니 정말 따뜻하고 귀엽다고 생각했다.

방에 돌아오니 9시쯤 되어 날이 어둑해졌다. 일기장을 펴놓고 앉아 시간을 흘려보냈다. 휴대폰에는 슈테판이 만들어 둔 ‘독일 인디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내 휴대폰을 꽤 오래 붙잡고 있더니 37곡이나 들어있었다. 모르는 노래가 두둑하니 아이들과는 헤어졌지만 다 끝나지는 않은 느낌이라 안도가 되었다. Chat GPT를 돌려 독일어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같이 시간 보내서 좋았고 새로운 한 주 잘 시작하길 바란다고. 나는 슈테판이 준 독일 인디음악 들으면서 쉰다고 너네도 잘 쉬라고.


Es war ein unglaublich warmer Tag. Es war schön, Zeit mit euch verbringen. Vielen Dank für alles. Jetzt werde ich mich entspannen und die Deutsche Indie-Musik hören, die Stefan mir gegeben hat! Ich hoffe, ihr erholt euch gut und startet guy in die neue Woche! (Mit chat GPT).


그랬더니 슈테판은 제일 중요한 밴드들을 잊은 게 생각났다며 아쉬워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I just remembered, I forgot to add some of the most important bands to that playlist!


그 왓츠앱 방에서 유일한 영어 메시지였다.


이다지도 좋은 음악 수업과 음악 학부 친구들이라니. 2학기 때는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 수업으로 조금 더 발을 뻗어볼까 싶었지만, 동시에 나의 능력이 얼마나 부치는지 느꼈기에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전공을 하는 아이들과 같이 내가 가장 못 하는 ‘박자’ 안에 들어가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싶으며 어떤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이다. 수업을 따라가기 벅차 눈치가 보일 수 있지만, 그러면서 음악을 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으며 그중에 내가 가장 못할지라도 나는 무언가 배울 수 있다는 게 확실하다.

일기장에 적었다.

내가 겪은 모든 것이 예상하지 못한 거였다면 인생은 예상하고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보다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좋은 것이 예상하지 못한 거였으니까. 독일에서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하다. 오늘 같은 우연이 많이 주어지고 내가 잘 찾아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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