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달려가기

by 반하의 수필

목적지는 프랑크푸르트 원불교 교당이다. 부모님의 인연으로 알게 된 그곳에 자주 머물면서 교무님과도 친한 사이가 됐다. 그곳에 가면 고아시아에서 파는 포장된 김치가 아니라 한인 마트를 하시는 교도님이 직접 담근 김치나 한국 반찬들을 먹을 수 있었고, 매번 미역국이나 육개장 같은 것을 맛있게 끓여주시는 부교무님도 계셨다. 밥을 많이 얻어먹었으니 부를 때는 가야 하는 법, 교당에서 하는 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표를 끊었다. 오늘은 그 교당을 매개로 친해진 친구 예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토요일 오전에 함께 교당으로 갈 계획이다.


S반을 타고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 갔다. 플릭스 기차(Flix Train)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갈 것이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기차역까지 겅중겅중 뛰었는데, 내가 가는 길이 다 맞았다. 1유로를 내고 화장실에 갔다가 8번 플랫폼으로 가서 15:26분에 올 Flix10을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주변에는 단체로 움직이는 어린 학생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기차는 거의 제시간에 왔다. 1시간도 쉽게 늦어지는 독일의 기차이기에 5분 늦은 것쯤은 정시 간 도착이다. 왠지 모르게 6호차 앞에 서 있던 나는 다시 내 자리를 확인하고 3호차로 뛰어갔다. 다른 독일 기차와 달리 플릭스 기차는 자리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아도 티켓에 좌석 표시가 되어 있다. 내 자리는 창가 쪽인 9A였고 검은 반팔티를 입은 여성이 9B에 앉아 있다. “Halo”라고 말을 붙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분은 자기가 창가 쪽으로 들어갔다. 내 창가 자리를 차지한 그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용서하고 9B 자리에 앉았다. 무사히 출발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가고 있다. 30분 넘게 움직이지 않는 기차에 앉아 있는 것도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창문과 에어컨이 없는 기차 안은 너무 더웠다. 공기는 탁하고 땀이 줄줄 났다. 창밖의 풍경은 한 시골의 정차역으로 정지 상태였고 빠르게 스치는 풍경 대신 더위 먹은 사람들의 얼굴만 천천히 등장했다. 기차가 멈춘 것의 이유는 나를 제외하고도 모두가 모르는 듯했다. 분명 독일어로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명확한 이유는 없는 듯했다. 옆 사람이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halb Stunde(30분) 서 있다고 Keine Ahnung(I have no idea)이라고 했다. 너무 더워서 스멀스멀 욕이 나왔다. 진득한 땀냄새가 가득 찬 기차 칸이었다. 여름에 얼굴을 데우는 햇빛과 어지러운 냄새도 포함이었지. 누가 여름이 공짜랬냐!

기차는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출발했다. 베를린까지 가는 기차이기에 혹시 내가 제때 내리지 못할까 봐 옆자리 분도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시는 지 묻기로 했다. ‘Are you going to Frankfurt?’라는 영어가 먼저 떠올랐지만 독일어를 써보기로 했다. ‘Geshst du nach Frankfurt?’ 아니, 존칭을 써서 공손하게 해야겠다. ‘Gehen Sie nach Frankfurt?’ 아니, 우리는 걸어가는 게 아니라 기차를 타고 있으니까 ‘Fahren Sie nach Frankfurt?’ 이렇게 여러 단계를 거쳐 문장 하나를 뱉었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에게 하기에는 “귀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시나요?” 정도로 격식 있었던 문장인 듯하다.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한 번에 알아 들어서 다행이었다. 오전에 친구들과 갔던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할 때도 영어를 썼기에 독일어로 이렇게 간단한 말을 뱉고도 뿌듯했다.

한 시간 정도 멈췄던 기차 때문에 예원과의 저녁 약속도 늦어지고 있었다. 급한 마음으로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기차에서 내렸다. 교당이 있는 방향이자 예원의 집 방향으로 가는 U3를 기다렸다. 그것이 15분이나 남아 있음을 깨닫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오는 열차를 아무거나 탄 다음 한 정거장 앞에 있는 시내로 갔다. 부모님도 계시는 집에 가는 거였기에 손에 뭐라도 들고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구글맵에서 본 빵집에서 케이크를 사기 위해 달렸다. 허겁지겁 들어간 빵집에서 독일어로 빠르게 산딸기 케이크 두 조각을 주문했다. Ich hätte gerne zwei Stück Himbeeren Kunchen bitte. Mit Karte bitte. Danke schön! Schönen Abend noch. 일련의 외국어 대사를 마치고 시간 안에 우반을 타러 뛰었다. 금요일 저녁 시간임에도 프랑크푸르트 시내에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이리저리 사람들을 피하며 뛰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대충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확연히 아시아인이 많다는 것이 느껴졌다. 프랑크푸르트는 많은 이민자가 살고 있는 도시이고 특히 한국인 커뮤니티가 크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확연히 내가 살고 있는 루드비 히스부르크나 슈투트가르트에 비하면 백인이 아닌 사람이 많았다. 지하철역에 앉아 숨을 고른다. 짧은 호흡으로 내뱉는 숨, 빠르게 도는 피에 괜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자유로움을 느꼈다. 낯선 도시를 쭈뼛쭈뼛 방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갈 곳이 있는 사람이 되어 지하철을 기다리고, 우다다 뛰어 친구집에 가져갈 케이크를 사는 나는 마치 도시를 활보하는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낯선 도시를 쭈볏쭈볏 구경하는 이방인이 아니라 내 하루를 위해서 바쁘게 이 도시를 이용하는 기분이 괜히 짜릿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내게 이미 익숙한 도시였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는 항상 교당이 있는 오버우어젤로 갔기에 이 일련의 이동의 과정 또한 익숙했다. 내가 일상을 보내던 곳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다른 도시에 왔다고, 나의 기숙사와 학교 생활, 새미와 아나벨 같은 친구들이 있는 그곳이 아주 먼 삶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여러 곳에 자아를 뿌리고 다니는 느낌이다. U3를 타고, 교당이 있는 곳을 그저 환승역으로 지나쳐 구불구불 산길을 오르는 버스를 타고 친구의 집에 갔다. 무릎 위에 올려둔 산딸기 케이크 두 조각은 얇은 종이봉투를 조금씩 적신다. 오늘 밤은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입꼬리에 자꾸만 웃음이 걸린다. 태리라는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서 있는 친구가 보인다. 재밌다. 언제나, 낯설고 무서웠던 곳이라도 하나 둘 익숙함이 생기고 마음을 의지할 만큼 좋은 것들도 생긴다. 그것을 믿고 나는 작은 것들에도 뿌듯해하며 자꾸만 나를 보여주고 최선의 내가 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지혜 작가의 책 <쉬운 천국>에는 여름이 공짜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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