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 번째 손

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 (7)

by 반하의 수필


IMG_1227.jpg


나무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이동식 달구지처럼 생긴 방 하나가 있었다. 야외 식사 테이블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빗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리고, 폭풍이 오면 날아갈 것 같은 그 방에서, 마리아는 매일 평안한 아침을 맞이했다. 큰 키의 그녀가 허리를 구부리며 방 밖으로 나오면, 짧은 사다리를 이용해 곧바로 풀밭을 밟을 수 있었다.


그날은 마리아가 처음으로 젊은 아시아인과 샤워하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갈아입을 옷과 수건, 목욕용품들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 두고 야외 테이블의 의자에 앉았다. “후베아트를 방에 데려다주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요!” 완벽하지 않은 문법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 젊은 아시아인 여자, 내가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와 나는 샤워부스가 있는 작은 화장실로 들어간다. 짐짓 태연해 보이는 난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


머리 감기부터 몸까지 다 직접 씻겨줘야 한다고? 샤워하는 걸 보기나 했지 직접 샤워를 시켜준 적은 없는데 괜찮을까? 내가 서툴고 답답해서 마리아가 싫어하면 어쩌지? 그런 와중에 마리아는 신발부터 속옷까지 훌렁훌렁 옷을 벗는다. 내던져진 마리아의 허물을 젖지 않는 곳에 모아두고, 마리아를 샤워부스 안으로 안내한다. 마리아보다 키와 몸집이 한참 작았으므로 샤워부스의 턱에 올라 까치발을 들고, 샤워기를 든 팔을 높이 뻗어 마리아의 머리칼을 적셨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일부는 내 팔을 타고 흘러내려 옷이 축축해졌다. ‘뒤로 돌아주세요. 좀만 더 옆으로 돌아봐요. 가까이 와 봐요. 살짝 숙여봐요.’와 같은 말들이 절실했다. 그 자리를 이리저리로 파닥이는 손짓과 으으!하는 소리로 채우며 우리는 샤워를 해나갔다.


작은 공간은 금세 따뜻한 김으로 들어찼고, 마리아는 나를 흘겨보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그는 “머리 먼저. 그다음에 몸. 차가워. 뜨거워. 이제 헹궈. 끝.” 이런 말들을 했다. 눈치로 알아들은 말들은 내 입으로 옮겨져 물의 온도나 그녀의 상태를 묻는 데 사용됐다. 머리 감기를 무사히 마치자, 마리아는 몸은 스스로 하겠다며 바디워시가 가득 묻은 손으로 몸을 대충 비볐다. 그것이 한참 모자랐기 때문에 그의 몸이 도로 내게 맡겨졌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 아래, 옆구리, 사타구니, 발목 등을 지났다.


울룩불룩한 성인의 몸을 미끈거리는 손으로 이곳저곳 문지르는 건 분명 낯선 일이었지만 특별한 감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리아는 5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그건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했을 그 많은 샤워에 매일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는 뜻이다. 고작 일주일 동안 그 자리에 내 손을 두는 일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오줌이 뭍은 기저귀를 버리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똥을 닦아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예쁘지 않아도 매일 필요한 일이었다. 마리아와의 두 번째 샤워 때는 옷을 적시지 않기 위해 속옷만 남기고 옷을 벗어뒀다. 어쩐지 더 능숙하고 자신 있어진 나였다.


쿤터분트에서 일을 하며 어느 때에는 내가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다가도, 아무도 이 일을 부러워하지 않을 거라고 느끼기도 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3D 노동과 블루칼라 노동에 가까웠다. 우리의 우아함은 잘 다려진 블라우스가 아니라 반복해 선택하는 다정에 있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그런 것이다. 멋지지만 고단한 일. 당연하게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것들을 포함한다. 내가 혼자이기를 원하는 순간에 그들은 그 모습을 다 들켜버리기 때문이다. 공허함이 남지 않았다. 그곳에는 꾸밈 없는 진짜만 있었으니까.

keyword
이전 20화(애정하는) 후베아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