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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l 20. 2022

항상성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지식인은 '생명'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류는 문명이 태동한 이래로 지금까지도 생명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생명의 본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희망 섞인 기대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만큼이나 요원한 상황이다.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전문 분야별로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이 벌어졌다는 것이 오히려 정확한 표현이다.


천문학, 양자역학, 진화생물학 간 차이는 물론이고 철학, 심리학, 사회학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정의는 각각 다르다. 구글과 애플이 바라보는 생명의 본질도 분명히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름은 당연하다.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는 말처럼 진실에 다가가고 싶은 염원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는 수소(H)와 헬륨(He)이다. 두 가지 원소가 우주의 97%(질량비)를 차지한다. 한편 지구의 지각을 구성하는 원소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산소(O), 규소(Si)이며 인간은 산소(O)와 탄소(C)이다. 지구를 비롯해 그 안에서 있는 대부분의 존재는 비슷한 분자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구성 성분으로 생명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행히 이렇게 치열한 (생명의 정의를 향한) 탐구의 성과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정의는 아직 미완으로 남았지만 '생명의 특성'은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 고양이와 뒷산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구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물이 무생물과 구별되는 일반적인 특징은 1) 자기 증식 능력, 2) 에너지 변환 능력, 3) 항상성 유지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외부 환경이 변하더라도 체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항상성'은 생명체만의 숭고하고 고유한 특성이다. 물리적인 항상성도 생명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중요하지만, 형이상학적인 항상성도 인간이 삶을 이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인간도 코스모스에 거주하고 있는 여타의 존재들처럼 유한한 생명력을 가졌다. 아무리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하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매 순간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연상한다는 것은 매우 슬프고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가능하면 죽음을 외면하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 아닌 것처럼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죽음과 절망 모두 '수용'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해야만 절망과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외면하고 무시할수록 번민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우리가 삶을 힘겨워하는 이유의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진지한 수용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탁월한 방법이 있다. 그저 다시 시작하면 된다.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려 복잡한 추리를 이어 나가기보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사랑하는 연인과 소홀해졌다면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사랑에 빠져보자. 분명 둘의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책을 읽었는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그저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쳐보면 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글이 써지지 않는다면 고민하지 말고 한 줄이라도 좋으니 그저 다시 글을 써보자. 수백 페이지의 글쓰기 교본보다 탁월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명체는 혹독하고 변화무쌍한 외부 환경을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항상성을 선택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형이상학적인 항상성이라는 말을 쉽게 풀어보면 '그저 다시 시작하라'라는 말이 된다. 우리는 모두 고난과 역경을 만날 때 고민에 빠진다. 좌절의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지만, 그 깊이가 너무 깊으면 포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칠흑 같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중에 매우 효과적인 것이 바로 '다시 시작하기'다. 그저 다시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예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로마를 이끌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지만 결국 인간이라는 한계를 극복할  없었다. 그는 쇠락하는 제국을 바라보며 매일 아침을 자기 연민으로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마르쿠스가 로마의 오현제  가장 지적이고, 철인 통치의 이상을 실현한 황제로 평가받는 이유는 형이상학적인 항상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절망에 빠질 때마다 그는 그저 다시 시작했다. 로마 황제는 이런 생각을 글로 써서 다시 보면서 항상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간단하지만 강력한 방법, 생명체가 선택한 항상성을 형이상학적으로 구현하는 확실한 방법, 매력적인 황제의 지혜를 따라 그저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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