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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Aug 03. 2022

먼지가 되어

미국의 전설적인 작사가 이프 하버그(Yip Harburg, 1896~1981)는 노래의 위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말을 들으면 무언가를 생각하고, 음악적 선율을 들으면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러나 노래를 들으면 생각을 느낀다."

『엔드 오브 타임』·브라이언 그린


우리가 사랑하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는 생각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곡일 뿐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노래를 듣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안긴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리메이크곡임에도 불구하고 김광석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 안에 있던 쓸쓸한 외로움도 지적인 고독으로 바뀐다. 소박한 포크 기타의 선율 위에 담백하지만 진실성 있는 그의 목소리가 얹어지는 순간, 심연에 침잠해 있던 우리의 감성은 새 생명을 얻은 듯 살아난다. 특히 잔잔한 듯 격정적인 가사는 따뜻한 토닥임과 함께 모두의 가슴에 애잔한 향수를 남긴다.


노래의 제목에서   있듯이 '먼지'  노래가 가진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미지이자,  노래의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따라서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가사가 노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있다. 어떤 사정인지는 정확히   없으나, 지금 곁에 없는 사람에게   있다면 '먼지' 되는 것까지 기꺼이 감수한다니 대단히 이타적인 낭만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가사를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지 모르겠다. 사람이 정말로 먼지가   있을까? 갑자기 서정적인 분위기를 깨는  같아 미안하지만 '과학의 발전은 용감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격언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해볼  있는 질문이다. 인간과 먼지의 관계, 엉뚱하지만 용감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물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해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우선 원자(Atom) 대해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이다. 그 어원은 '더 이상 나뉠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a-tomos'에서 온 것으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당시의 여건상 추측에 의한 관념적인 개념에 머물며 크게 부각되지는 못했다. 2천 년 동안 철학적 용어로 머물러 있던 원자를 주류 학설로 끌어올린 사람은 영국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존 돌턴(John Dalton, 1766~1844)이다. 그는 원자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정립하며 원자론을 주창했다. 현대에 이르러 원자도 쪼개질 수 있음이 밝혀져 그 어원의 의미가 퇴색하긴 했지만, 원자는 '화학적 원소로서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입자'라는 정의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한편 원자의 구조는 (+) 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과 이러한 원자핵 주변에 구름처럼 확률로 존재하는 (-) 전하를 띤 전자로 되어있다. 그리고 전자는 원자핵에 가까울수록 발견될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집중할 것은 원자의 크기인데, 전자가 원자핵 주변에 정해진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확률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히 그 크기를 측정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원자의 크기를 전자의 발견 확률이 90% 이상인 범위의 오비탈(원자핵 주위 전자가 발견될 확률을 나타내거나 전자가 어느 공간을 차지하는지를 보여주는 함수)로 표현한다. 쉽게 말해 전자가 일정 수준 이상까지 발견될 범위를 원자의 크기로 하자고 약속한 것이다.


이제 가장 단순한 수소 원자의 크기를 살펴보자. 원자핵 주위에 전자가 하나 존재하는 수소 원자의 지름은 25 피코 미터(picometer = 1/1조 미터)이다. 즉, 수소 원자 1억 개를 한 줄로 세워야 1cm가 된다. 원자 안에 있는 원자핵은 약 10 펨코 미터(femcometer = 1/1000조 미터)이며 전자는 약 1 아토 미터(attometer = 1/100경 미터)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숫자의 나열은 언제나 우리를 주눅 들게 만든다. 인간이 인식할만한 크기로 바꿔서 말해보자. 만약 원자를 지구의 크기만큼 늘려보면 원자핵은 축구장 정도의 크기, 전자는 야구공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원자의 구성요소인 원자핵과 전자를 제외한 공간이다. 지구에서 축구장과 야구공을 제외한 공간엔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만, 원자 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허공만이 있을 뿐이다.


부피를 비교해 보면, 원자핵과 전자를 합해도 원자 전체의 부피의 약 1,000조 분의 1에 불과하다. 결국 원자 내에는 상대적으로 1,000조에서 1을 뺀 숫자만큼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 몸의 99.99999…% 는 물질이 아니라 공간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인간도 결국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은 텅텅 빈 공간으로 구성됐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만약 원자들의 이런 텅 빈 공간을 전부 없앤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의 몸이 약 30조 개의 세포로 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남는 물질의 크기는 먼지보다 작다.


인간은 먼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먼지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자기 내면을 인식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의 세계를 관찰하고, 광활한 코스모스의 질서를 탐구한다는 사실은 한편으론 경외감을 자아낸다. 먼지가 되어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가사는 상상력을 조금 보태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 된다. 물질보다 공간이 훨씬 많은 존재이기에 그토록 인간은 ‘만남과 소유’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먼지가 되어>를 들으며 느끼는 감동에는 먼지 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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