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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ul 30. 2022

양질전화의 법칙


변증법 입문서에 자주 나오는 ‘양질 전화量質轉化의 법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물이 끓어 수증기가 되듯이 양적인 축적이 있어야 질적인 도약이 이루어진다는 뜻이지요.

『책 먹는 법』·김이경(유유, 2015)


만약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용어에 특허가 있다면 누구에게 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아마 많은 사람이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가 '최초 사용'이라면 특허권에 관한 성급한 판단은 잠시 보류할 것을 권한다.


예상한 대로 원래 진화라는 용어는 다원의 것이 아니었다. 진화라는 용어는 빅토리아 시대에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기도 했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가 다윈의 이론을 소개하면서 유행시킨 용어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 초판부터 5판까지는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전문용어를 줄곧 사용했다. 이후 진화라는 용어가 훨씬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마지막 판인 1872년 출간된 6판에서야 전면적으로 수용한다. 사실 다윈은 자신의 진화 개념이 '진보' 개념과 혼용되는 것을 극도로 회피했다. 진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전개(unfolding)’로 해석되길 기대했다.


찰스 다원이 지금과 같은 찬란한 평가를 받는 이유가 '진화론의 창시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윈에게는 문명 발달에 엄청난 진보를 가져온 것이라 평가받는 탁월한 두 가지 업적이 따로 있다. 우선 첫 번째는 '자연선택'이 진화의 주요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밝힌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메커니즘으로 종이 진화하는 패턴을 '생명의 나무'로 설명했다는 점이다.


생태계에 생존하도록 적응된 현재의 모습(형질)은 한순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유리한 형질이 조금씩 쌓여서 변화된 것이다. 각성이나 급변은 자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생물의 다양성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다원은 이러한 과정을 과학자답게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요약했다. 찰스 다윈의 생각을 지지한다면 생명체의 진화를 관장하는 원리마저 일정한 '양(量)'의 증가가 '질(質)'의 변화를 가져오는 현상, 즉 양질 전화의 법칙을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독서에서도 이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무작정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한 가지 책을 깊이 있게 정독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본능 독서』(카시오페아, 2018)에서 이태화 작가는 이 둘을 각각 발산하는 ‘양의 독서’와 수렴하는 ‘질의 독서’라고 표현하면서, 두 가지 독서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테마 독서법’을 제안한다.


테마 독서법이란 내게 끌림이 있는 주제를 정해 관련 독서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목표로 설정해서 독서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선정한 테마에 관한 전문성을 얻게 되고 이를 토대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테마 독서법을 실행하기에 앞서 '어떤 독서가 더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독서량이 있을 때 가능한 질문이다. 어떠한 양적 투자도 없이 질적 향상을 바란다면, 이는 생명의 원리를 거스르는 불경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이 부정했던 양자역학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지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절대 무너지지 않을 물리학 법칙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을 선택한다. 열역학 제2 법칙은 현재의 우주에서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유사하게 양질 전화의 법칙은 코스모스를 가로지르는 절대 법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극적인 변화는 없다. 다만 일정한 양적 축적의 결과인 질적 전화만 있을 뿐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문인 홍자성은 채근담(菜根譚)에서 "문장이 경지에 이르면 별다른 기발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적절할 뿐이고, 인품이 경지에 이르면 별다른 특이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연스러울 뿐이다."라고 했다. 극단적인 방법보다 자연스러운 노력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질서에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방법, 바로 꾸준한 노력이다. 같은 맥락에서 실력은 결국 양질 전화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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