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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Sep 30. 2022

재미는 독서도 습관으로 만든다

책을 읽는 습관

●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 괴괴한 방 안에서 기대와 다르게 리듬감 없이 울리는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 소리는 음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중간중간 경쾌한 박자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때문에 주변의 지겨운 공기는 금세 흩어져 버린다. 희뿌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안경 너머의 눈동자는 단순히 집중한다는 의미를 넘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딸깍딸깍 타다닥! 이어지는 적막한 고요함, 이런 고단한 반복은 결국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입대를 앞둔 K는 담배처럼 시간도 태워 없애야 직성이 풀렸다.


밤새 주인에게 짓눌린 의자는 최선을 다해 버텼지만, 인내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는 주인도 정말 지쳤는지 손가락을 멈추고 기지개를 켜본다. 의지와 다르게 피곤한 외마디가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표정만은 뿌듯해 보인다. 벌컥! 방문이 열리고 뚜벅뚜벅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무 말 없이 모니터로 다가간다. 한참을 수그려 모니터를 쳐다보던 친구가 허리를 펴며 내뱉은 말 "야! 너 이 게임 밤새 한 거야? 대단하다..."


필자(K)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들춰내며 하려는 이야기는 '재미의 본질'이다. 사실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잠을 자는 것보다 침침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것이 훨씬 어렵고 고된 일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수면욕을 거부하면서까지 게임에 집착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 게임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재미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공부의 목적은 친구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라는 우울한 현실을 느끼던 필자에게 <슬램덩크>는 로망 그 자체였다. 주변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는지 농구의 인기는 모든 이슈를 뒤덮었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면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농구를 할 때면 10초보다 빨리 지나갔다. 당연히 다음 수업을 정상적으로 듣기란 불가능했다.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좋았다. 벌써 다음 쉬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한여름의 뙤약볕도, 한겨울의 쓸쓸함도 그리고 선생님의 무시무시한 회초리도 농구의 재미를 넘어설 수 없었다. 이같이 아무리 고된 일도 재미가 있으면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떠한 일을 꾸준히 하는데 재미보다 강력한 동기는 없다. 특히, 재미를 '스스로' 느낄 때 그 재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만약 독서에서 이런 재미를 찾는 일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어렵고 하기 싫은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계속할 수밖에 없는 독서, 꿈같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꾸준함의 원천은 재미다. 다시 말해 독서 습관은 책 읽는 것에서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기를 수 있다. 독서에서 재미를 느껴야 오래, 다양하게,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단순해진다. 우리가 독서를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독서에서 스스로 느끼는 재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읽는 것에서 스스로 재미를 느낄 때 독서는 습관이 된다.


질문이 먼저다


서울대가 추천하는 교양서적들을 뒤적여 봐도 재미는 없다.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주변을 아무리 서성거려 봐도 역시 재미는 없다(이미 재미를 찾은 독자라면 여기서 멈춰도 된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겹고 무료할 뿐 재미없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오스카를 들어 올렸다. 한국 영화계 전체의 축복이자 성공이라는 의례적인 평가보다 빛났던 것은 그의 감독상 수상 소감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재미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재미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질문'이 먼저다. 당신이 '관심'을 가져야 재미도 찾을 수 있다. 요리, 연예, 자동차, 컴퓨터, 여행, 주식, 직업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있는 주제를 기웃기웃 돌아다녀야 자신의 취향도 알 수 있고 재미도 찾게 된다. 결과적으로 독서 습관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끝이 보이는 책


끝이 보이지 않는 여행이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 그런 여행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또 다른 일상이다.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는 감성 넘치는 문장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다만, 끝이 보이지 않는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적절한 비유를 찾다 보니 여행이 생각난 것뿐이다. 어쨌든 완독 할 수 있는 책이 재미를 느끼기에 더 쉽다는 말이다. 글보다 그림이 많은 책, 라면 받침으로 쓰기에도 걱정될 정도로 얇은 책, 글자가 너무 커서 서너 문장으로 한 페이지가 꽉 차는 책, 무엇이든 상관없다. 당신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책이면 된다.


재미는 책을 읽을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의 재미도 무시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느낌은 그냥 재미가 아니라 보람됨이나 뿌듯함에 가까운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다 읽은 책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느끼는 재미는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꾸준한 독서가 곧 독서 습관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끝까지 볼 수 있는 책을 고르자.


같이 읽기


습관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좋아하면 습관이 된다. 또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 일을 독서라고 예측한 당신, 이 글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행복과 사랑처럼 책을 읽는 재미도 나눌수록 커진다. 독서 습관을 말할 때 독서 모임에 참여하기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독서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가족, 친구, 애인과 나누는 독서를 추천한다.


책을 고를 때 누구와 같이 읽으면 좋을지 상상하면서 고르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동기부여도 된다. 이미 말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책을 읽을 때 재미는 저절로 따라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문장에 대한 다른 생각을 나누며 대화의 깊이는 더해진다. 책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객체가 아니라 당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혼자라면 생각도 안 해봤을 의견을 접하면서 당신의 사유는 확장하고 발전한다. 독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행복한 습관이 된다.



잠시라도 재미없으면 별다른 고민 없이 ‘뒤로 가기 가볍게 누른다. 콘텐츠는 넘쳐나니 재미는 다시 찾으면 그만인 세상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이를 즉자적(卽自的, an sich)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사전적 의미에서 즉자적이란 '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 말한다(사전적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철학에서 즉자적 성향이란 주관적이고 감각적이고 고립적인 성향을 뜻한다. 다시 말해 오직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어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동물적 수준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에 대비된 개념으로 대자적(對自的, fur sich)이라는 용어가 있으며 '어떤 것을 위해서'라는 뜻으로 쓰인다. 즉, 대자적 성향이란 자기 자신까지도 거리를 두어 객관화시켜 반성하고 관찰하고 인식하는 경지를 의미하며 인간이 본능만 있는 동물과 구분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해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극단적인 유흥을 좇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는 재미는 어디까지나 대자적 재미임을 밝힌다. 자신이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소화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독서는 대자적 독서이지 즉자적 독서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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