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습관
● 이번에는 독서 습관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철학이라는 말에서 답답함과 고지식함을 느낄 수 있지만, 철학(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ία, 지혜에 대한 사랑)에서 유래했다. 쉽게 말해 철학도 사랑이다. 철학(哲學)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보다 '지혜의 사랑'이라고 했다면, 철학은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학문이 됐을지 모른다. 일본을 통해 대부분의 서양 학문을 받아들였다는 역사적 한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렇기는 해도 철학은 여전히 매력적인 분야다. 미디어의 끝없는 팽창, 빛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정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콘텐츠는 인간 소외라는 결과를 낳았다. 잠깐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중의 다른 이름은 빅 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로 정체 모를 독재자)라고 할 수 있으며 개인을 철저하게 억압하고 무시한다.
이런 처참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서는 경중을 가릴 줄 아는 안목, 완급을 조절할 줄 아는 혜안, 선후를 파악할 줄 아는 식견 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사유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지혜를 사랑한다면 닿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철학을 통해 단순한 인식의 수준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습관은 매일 조금씩
관심
OOO 과장 말이야, 저번 독일 업체랑 협업할 때 창구 역할 제대로 했었나 봐. 독일어 능력이 결정적이었지. 이번 진급에서도 그 이야기 나오니 아무도 토를 못 달더라. 역시 외국어 하나는 할 줄 알아야 밥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지. 나도 빨리해야 하는데...
목표
좋아! 올해는 꼭, 반드시 영어 회화의 고수가 된다.
실패
2주일 후. 일단 급한 일부터 해야지, 영어 회화 수업은 다음에 할 수밖에 없겠다. 며칠 빠진다고 문제없겠지?
자책
한 달 후. 나는 원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재능이 없었지.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내가 그렇지 뭐. 오늘은 뭐 재밌는 거 없나?
관심 - 목표 - 실패 - 자책, 단순하게 분석한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실패할 때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정이다. 각 단계마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집중할 것은 '목표'다. 습관을 기르는 데 너무 커다란 목표 설정은 언제나 커다란 걸림돌이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단순할수록, 명확할수록 그리고 작을수록 달성하기 쉽다. 만약 위의 화자가 목표를 '하루에 한(회화에 자주 나오는) 단어 외우기'로 설정했으면 훨씬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일이든 긴 시간에 걸쳐 작은 성공을 반복하면 그 일은 습관이 된다.
독서 습관도 다를 바 없다. 추상같은 의지와 단호한 결정은 그 의미만 화려할 뿐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항상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소박해 보일 순 있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책을 읽는 것이 독서 습관 형성에 더 중요하다. 아울러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많은 사람은 달콤한 '결과'를 상상하며 목표를 설정하지, 씁쓸한 '과정'을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가 꿈같은 목표를 자꾸만 세우는 원인이다.
'올해 100권을 기필코 읽고야 말겠다.'라는 목표는 너무 우악스럽다. 이런 원대한 포부는 앞서 살펴본 대로 자기 자신에게 실망만을 안길 뿐이다. 차라리 '매일 25분은 독서에 투자하겠다.'가 훨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독자들에겐 이것도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하루에 10페이지를 읽는 것도 좋다. 중요한 것은 쉽게 달성할 수 있어야 하며, 반복해서 실행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라야 한다.
매일 조금씩 성공하다 보면 독서 습관을 기르기 위한 기초 체력은 저절로 다질 수 있다. 물에 발도 담근 적 없는 사람을 수영 시합에 출전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그런 사람에게 무조건 자유형을 가르쳐봐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물에 익숙해질 시간과 기초 체력이 필요하다. 매한가지로 처음부터 600페이지가 넘는 고전을 독서 초보자에게 던져 줘 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증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매일 조금씩 책과 친구가 되겠다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 단 '매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 작은 성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두껍고 어려운 책에 도전할 용기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책 읽는 정체성
당신이 반복적으로 하는 일,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에서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열정과 의지는 습관을 기르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아무리 독서를 해야 한다고 굳게 다짐한다고 해도 한 번 책을 펼치는 것만 못하다. 그렇지만 이럴 때 다짐의 방향을 살짝 바꾸면 매일 책을 읽는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 방향을 책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 즉, '책을 읽어야지, 독서를 꾸준히 해야지, 책을 사러 가야지'가 아니라 '나는 독서가로서 책을 읽으며 평생 살아가고 싶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전환은 의외로 효과가 좋다.
명료한 삼단논법으로 증명까지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당신이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이다. 바꿔 말하면 습관은 당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나타낸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에 '독서'를 담는다면 그것이 바로 독서 습관이다. 예컨대 공을 잘 차기 위해서 트래핑 연습을 하는 습관을 기른다고 할 때, '매일 1시간씩 연습해야지.'라는 다짐보다는 '축구 선수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 습관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다짐의 방향을 공에서 축구 선수라는 정체성으로 전환함으로써 습관은 쉽게 완성된다. 아마 그 선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매일 책 읽는 습관을 기르고 싶다면 우선 당신의 정체성에 독서를 추가하자. 책 읽는 사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분명히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정체성 덕분에 장소와 시간은 더 이상 독서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책을 읽을 기회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 생각 없이 책을 펼치고, 특별한 일이 없어도 서점을 찾는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친구를 만나도 책 이야기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반복해서 하는 일,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의 강을 건너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독서 습관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남겼을 리 없겠지만, 역시 탁월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가 책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인류가 독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몰랐을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책 읽기를 매일 반복하는 당신, 그것이 바로 독서 습관이다.
독서도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철학은 결국 다르게 바라보기다. 독서도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다르게 볼 수 있다. 책을 꾸준히 읽는 일, 다시 말해 독서 습관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철학자만큼 독서 습관이 몸에 밴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 철학도 없었을 것이다. 철학자들의 광활하고 아득한 사유는 대부분 책에서 출발하며 그들이 남긴 책에서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찰하면 매일 책을 읽는 지겨운 일도 애정 어린 습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