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전자기학, 고귀한 공학도의 꿈을 '나는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라는 처참한 후회로 바꾼 과목이었다. 육체적 고문과 다를 바 없었던 '암기'를 벗어나 철저한 '이해'가 필요한 합리적인 과목일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무한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법칙과 수식, 발음도 하기 힘든 정의와 용어,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기호와 상수는 이해와는 동떨어진 암기 그 자체였다. 실제로 달달 외운 공식과 수없이 반복해서 썼던 법칙이 시험을 치르는 데 훨씬 유용했다.
전자기학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극소수의 천재들이나 가능한 일로 필자 같은 범인은 그저 반복해서 외우는 일이 최선이었다. 한 청년의 파랗디파랗게 빛나던 미래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하게 외운 것 중에 지금까지 간신히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직렬연결과 병렬연결의 차이와 특징이다. 열정 넘치는 학기 초반에 등장하기도 하고, 매우 기초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어려운 이론적 배경(키르히호프의 법칙)은 무시하고 쉽게 기억하기 위해 '직렬: 전류 일정, 병렬: 전압 일정'이라고 단순하게 외웠다. 당연히 이렇게 공부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명제를 확실히 암기하고 나면 '연상작용'을 이용해 이어지는 또 다른 명제들을 추가로 알 수 있다. 직렬연결은 전류가 일정하기 때문에 저항에 인가된 전압은 저항값에 비례한다. 따라서 저항을 직렬로 연결할수록 저항값은 증가한다. 반대로 병렬연결은 전압이 일정하기 때문에 각 저항에 흐르는 전류는 저항에 반비례한다. 따라서 저항을 병렬로 연결할수록 저항값은 감소한다(옴의 법칙, 전압 = 전류 x 저항). 최종적으로 저항은 직렬로 연결할수록 증가하며 병렬로 연결할수록 감소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병렬연결로 저항이 추가될수록 저항이 감소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전기적 특성은 인간의 사고 과정과 유사한 점이 많다. 뇌의 특성상 전기적 신호 전달이 중요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여, 직렬식 사고방식과 병렬식 사고방식이라는 말도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독서에서도 직렬과 병렬은 존재한다. 직렬식 독서는 직선적이고 순차적인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목차에 표기된 순서대로 읽는다. 그리고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음 책을 읽는다. 이런 독서 방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에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반면에 병렬식 독서는 평행적이고 동시적인 읽기다. 책의 목차는 참조 사항일 뿐 내가 원하는 순서로 읽는다. 또한 여러 권의 책을 병행해서 읽어도 된다. 이런 병렬식 독서는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인가 불안하고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병렬연결로 저항이 추가될수록 오히려 저항이 감소하는 것처럼 병렬식 독서는 책이 추가될수록 독서의 어려움이 감소한다. 반대로 직렬식 독서는 책이 추가될수록 독서의 어려움은 고스란히 증가한다. 그렇다면 병렬식 독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비교 독서
책을 읽는 목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중에 모르던 것을 알기 위해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궁금한 것을 정확히 이해하려는 행동은 호모 사피엔스가 열악한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문명을 이룩하는 데 꼭 필요한 본능이었다. 다시 말해 알고 싶은 정보는 생존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일 수 있다. 만약 그 정보가 잘못된 것이라면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교차 검증'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독서가 생존과 직결됐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편중된 관점, 가치관, 사고는 분명히 문제가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 알기 위해 책을 선택할 때는 최소한 다른 관점에서 쓰인 두 권을 동시에 읽을 것을 권장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읽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다.
발췌 독서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 안에 있던 정보와 지혜를 온전히 체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독자가 염원하는 완벽한 독서가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책 속의 문장이나 데이터를 인용할 때 특히 문제가 된다. 따라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찾기 위해 책 한 권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을 참조할 경우에는 발췌해서 읽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병렬식 독서는 이렇게 책을 추가할수록 독서의 어려움(저항)을 감소시킨다.
병행 독서
일의 강도와 근무하는 환경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온종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과 다양한 일을 섞어가며 하는 사람이 중에 누가 더 힘들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연히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사람이 더 쉽게 지치고 효율도 떨어진다. 병행 독서는 말 그대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이 방법을 어려운 책을 읽을 때 주로 사용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섞어서 읽으면 난해한 책을 끝까지 읽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책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독서의 출발이 바로 병행 독서이다. 절망적인 부피와 밀도 때문에 읽기를 망설이고 있는 책이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현재 읽은 책과 연관된 주제의 책을 이어서 읽으면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다.
테마 독서
병행 독서의 발전된 형태가 테마 독서라고 할 수 있다. 『본능 독서』(카시오페아, 2018)에서 이태화 작가는 "테마 독서란 내게 끌림이 있는 주제를 정해 관련 도서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목표로 설정해서 독서를 이어 나가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선정한 테마에 관한 전문성을 얻게 되고 이를 토대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엽적인 '정보'만을 외운 단편적인 지식은 금세 휘발해 버린다. 단순한 정보를 장기기억화 하기 위해서는 궁금한 점을 자기 자신에게 질문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하고, 해답을 찾으려는 방법을 계획하며, 이렇게 선별된 지식은 반복을 통해 체계화해야 진정한 의미의 지식이 된다. 이러한 의도에 가장 적합한 독서법이 바로 테마 독서다. 또한 선택한 목록의 책들을 읽어나가는 내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여유가 생기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책을 바라볼 수 있다.
병렬식 독서는 책이 추가될수록 독서의 어려움이 감소한다.
이번 챕터에서는 책을 읽는 이유에 이어서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해 같이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마무리 지으려 한다(아래 Remind 참조). 사실 꼭 따라야만 하는 독서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완전무결한 책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독서법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격, 배경지식, 취향, 환경, 나이, 성별 등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독서법은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기서 소개한 독서 방법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독서법을 개발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방법은 방법을 아는 것에서 멈출 때가 아니라 습관으로 실천할 때 빛을 발한다. 따라서 다음에 다룰 주제는 '책을 읽는 습관'이다. 습관은 생각보다 우리의 무의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의식적으로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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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는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최적의 도구이자 방법이다.
2. 독서는 개인 능력 발달의 전제조건이다.
3. 독서는 변화와 탐색의 선순환 구조에 최적화된 도구이다.
4. 지적 허영심과 독서를 통한 공감은 다시 치유와 위로로 이어진다.
5. 독서는 '나'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6.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1.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일은 성공적인 독서의 선행조건이다.
2. 완벽한 독서는 없다. 다만, 완벽한 독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3. 책은 사유를 넓힐 수 있는 도구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4. 독서에 있어서 우리는 속독과 다독보다 숙독(熟讀)을 지향해야 한다.
5. 상상력을 동원하면 책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6. 병렬식 독서는 책이 추가될수록 독서의 어려움이 감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