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 『숨결이 바람 될 때』·폴 칼라니티(흐름출판, 2016)는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폐암에 걸려 어린 딸과 그와 똑같이 의사인 아내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신경외과 의사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암을 치료하기 위해 투병 중인 상황에서 집필되었다. 암이라는 불행에 맞서 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치열하고도 우아한 투병기이자, 항상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의사였던 저자가 환자로 역할이 바뀌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 회고록이다.
특히, 위의 인용문은 저자가 자기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으로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지적이다. 게다가 우리가 주목할만한 수학적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유용하기까지 하다. 어떠한 용어의 정의를 명확하게 이해하면 그 용어가 사용된 문장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살펴볼 용어는 '점근선'이다.
점근선(漸近線, Asymptote)이란 곡선에 점점 가까이 가는 직선이다. 한없이 계속되는 곡선에서, 동점(動點)이 곡선에 따라 원점에서 멀어질 때, 그 점에서 한 정직선(定直線)에 이르는 거리가 0에 가까워질 때의 정직선을 말한다. (출처: Oxford Languages)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점점(漸) 가까워지는(近) 선(線)이라는 뜻에서 그 직선을 해당 곡선의 점근선(漸近線)이라 한다.
여기서 Asymptote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계속 가는, 그러나 만나지는 않는 것'이라는 뜻이 있다. 다시 말해 점근선은 어떤 함수가 특정한 방향으로 진행하면서 가까워지는 선을 의미한다. 점근선이 생기는 대표적인 함수는 유리함수, 지수함수, 로그함수, 탄젠트 함수 등이 있고, 이차곡선 중에서는 쌍곡선이 대표적이다.
'모든 진리는 결국 통한다.'는 말처럼 '완벽함'과 '점근선'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함수의 입장에서 가까이 다가갈 순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점근선처럼 인간은 완벽함을 추구할 순 있지만 영원히 그것에 닿을 수는 없다. 단지, 완벽하다고 착각할 뿐이다. 다음으로 점근선의 실체를 볼 수 없는 것처럼(X축과 Y축이 있는 좌표는 가상의 공간일 뿐 실체가 아니다) 완벽함의 실체도 우리는 볼 수 없다. 마치 플라톤이 설명했던 이데아론의 이데아(Idea)처럼 우리들의 관념 속에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점근선과 완벽함이란 개념과 정의는 존재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완벽함도 점근선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해진다. 곡선을 무한히 점근선에 접근시키면 결국 직선(점근선은 직선이다)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곡선의 오래된 로망은 직선이었을지 모른다. 인간도 오랫동안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무엇인가 채우고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이 완벽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완벽한 독서'의 의미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벽한 독서는 없다. 다만, 완벽한 독서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독서를 완벽함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시키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 읽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한 공공도서관은 대전광역시 한밭도서관으로 도서 수는 약 86만 권에 달한다. 2위는 부산광역 시립 시민도서관 76만여 권이다. 한밭도서관 기준 하루에 한 권씩 읽는다고 해도 그곳의 책을 모두 읽으려면 약 2356년이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알다시피 1년에 100권 읽기도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읽는 책의 양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에 비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책만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2356년이라는 숫자가 확연하게 말해준다. 따라서 읽다가 나와 맞지 않는 책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접고 다른 책을 펼쳐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책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 나에게 맞는 책을 선별하는 일, 완벽한 독서의 시작이다.
독서는 등산처럼
소심한 완벽주의자(필자도 여기에 속한다)들은 공통적으로 모든 일을 한 번에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도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작가의 사상을 담은 하나의 소우주라고 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사유와 퇴고를 거친 저자의 정신적 집합체를 단 한 번의 독서로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산의 정상에 한 번 올랐다고 그 산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니다. 여러 번 같은 산을 걸으며 그 안에 있던 나무, 돌, 계곡, 바람을 느껴야 제대로 된 등산인 것처럼 책도 이리저리 다르게 여러 번 읽어야만 완벽한 독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순서대로 읽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책을 순서대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필자도 그랬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것이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권장 사항일 뿐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사항은 아니다. 어려운 책일수록 관심이 있거나 재미있을 것 같은 챕터를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한다. 그래야 그 책에 흥미도 쉽게 느낄 수 있고, 끝까지 읽을 가능성도 커진다. 책의 뒷부분을 미리 읽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와 앞부분을 읽을 때 그 이해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기도 한다.
모르는 단어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보이면 사전을 찾아서 그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추천할 만한 일이다. 이것은 어휘력을 자연스럽게 키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사전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정작 책을 읽는 시간보다 많은 것은 문제가 있다. 모든 단어를 이해하며 책을 읽고야 말겠다는 고집은 내려놓아야 한다. 문맥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모르는 단어를 그런 맥락과 행간 안에서 추측해 보는 것은 독해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보다 책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 완벽한 독서에 더 가깝다.
한 권, 하나의 실천
지식인이 가슴에 간직해야 할 단 하나의 격언이 있다면 '아는 만큼 실천하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읽어서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말은 믿을 만하지만, 그 책으로 나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말은 믿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소중하고 작은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여 큰 변화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한 권의 책에서 하나의 실천할 거리를 발견했으면 충분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완벽한 정답은 얻을 수 없다. 다만 완벽한 정답을 찾을 기회가 있을 뿐이다.
완벽한 독서는 없다.
다만, 완벽한 독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앞서 우리는 점근선과 완벽함의 공통점을 살펴봤다. 이제 마지막으로 둘의 차이점을 언급하려고 한다. 점근선은 수학적 개념으로 관찰하거나 분석하는 '수동적 개념'이지만 완벽함은 인간이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주체적 실천'이다. '완벽하다'란 말이 무척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주관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완벽한 독서의 실체도 볼 수 없고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무엇이 완벽한 독서인지 정의하기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렵고 막막하다고 우리가 그 완벽함에 다가갈 의지마저 져버리는 순간, '정체와 위축'은 어김없이 내게 손을 내민다. 그 손길의 나른한 감촉은 한 번 잡으면 뿌리칠 기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