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L 대리의 출근길
● 수요일 오전 7시 38분, 출근 전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는 기어코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시간에 맞춰서 주룩주룩 비를 뿌리고 있다. 투박한 외모에 비해 날렵한 손동작이 눈에 띄는 L 대리는 의료영상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이미지 프로세싱 개발 2팀에서 근무한다. 오른손에 든 안타까운 우산으로 빗물은 기운 없이 후드득 흘러내렸다. 읽을 책 때문에 평소보다 무거워진 가방끈은 그의 어깨에 무심히 걸려있다.
이런 날씨를 비웃듯이 주차장에서 서 있던 구안이(L 대리의 자동차 별명)가 생각난다. 짜증을 넘어 자기 차를 끌고 나오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하는 중이다. 한 달 전부터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운전(늦은 퇴근 시간의 고단함도 감각적인 시티팝과 함께하는 야심한 밤의 강변북로 드라이브라면 견딜 만했다)도 뒤로 미루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했다.
얼마 전 일이다. 프로젝트 진행 현황을 보고하던 회의 자리에서 J 사원이 우스꽝스럽게 우는 시늉까지 하며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일주일 동안 작업했던 코드를 결국 제외하기로 했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모두가 웃길래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솔직히 '읍참마속'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과 출신답게(?) 회의가 끝나자마자 바로 구글링 해봤다. '삼국지? 제갈량? 마속? 가정 전투?' 문맥상 어떤 말인지 감은 왔지만, 모르는 것투성이다. 스스로 인문학적 수준이 처참하다고 느꼈다. 그것도 새파란 신입보다 못한 수준이라니 절망적이다. 그래서 지금 가방 안에는 『삼국지』가 들어있다. 이제는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드는 일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라는 것보다 어색하지만은 않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대로 독서에 재미도 붙이고 있다.
『삼국지』는 지겨운 꼰대들의 옛날이야기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묘한 구석이 있는 책이다. 어제 읽은 마지막 장면이 마침 제갈량의 권유로 유비가 마속을 부하로 맞이하는 부분이었다. 혹시 잊어버릴지 몰라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다. 재미있거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편하게 찾을 수 있게 별표까지 해놨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말씀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은 소리를 내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물론 상·중·하 세 권으로 된 『삼국지』를 읽는다고 나의 인문학적 지식이 높아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독서가 즐거울 수 있다는 깨달음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반강제로 시작한 독서지만 이제는 K 사원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오전 8시 45분 회사 도착, 적당한 출근 시간이다. 제시간에 도착해서인지 아니면 아까 읽은 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창밖으로 흐르는 비가 이제는 왠지 운치 있어 보인다.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눈치챘겠지만, 사람이 책을 읽을 때 어떤지 자세히 살펴보면 왜 독서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지 알 수 있다는 취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평범한 L 대리의 출근길을 상상으로 따라가 봤다.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어야 타인과의 관계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마다 책에 밑줄 치는 곳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밑줄 친 문장을 다시 확인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열망하는 것, 싫어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불안해하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결국 독서는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아를 확인하고, 확장하고, 인정하는 수단이 된다. 책을 읽는 순간 인간은 고독과 대면하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사유를 시작한다.
L 대리는 독서하면서 중요한 부분에 자기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하고, 밑줄을 쳤다. 정말 마음에 드는 문장은 필사까지 했을지 모를 일이다. 나의 밑줄과 메모가 켜켜이 쌓인 책은 세상에 한 권밖에 없는 ‘내 책’이다. 이것도 부족하면 별도의 공간에 독서 기록을 주기적으로 해서 자기가 읽은 책들을 분류하고 정보를 체계화한다.
이뿐 아니라 소설을 읽을 때면 주인공에게 동화되어 같이 울고 웃는다. 멋진 대사가 나오면 소리 내 읽어보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책이나 싫어하는 책이 생긴다. 이처럼 책을 읽을 때의 '나'의 모습은 자신을 파악해가는 과정이다. 역설적이지만 재미있는 것이 책을 거부했던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나를 아는 일'이 바로 독서다. 생각해보면 독서만큼 자신에게 몰입하는 행위도 없다.
'나'의 정신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나를 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독서는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개인 능력 발달의 전제조건이다. 또 독서는 변화와 탐색의 도구이자 치유와 위로로 이어진다. 게다가 독서는 '나'를 지키는 일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독서의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글을 쓰는 사람의 기본 소양도 나를 잘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서 타인과 소통할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도단이자 자기모순이다. '아는 만큼 실천하라'라는 말처럼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큰 노력도 필요 없다. 하루에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 이 정도도 투자하지 못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믿는다. 독서는 얼굴을 씻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옷을 입고, 운동을 하고, 산책하고,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가고, 물을 마시는 일상처럼 쉬운 일이다.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읽는 사람만큼 다양할 수 있다. '책을 왜 읽는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나름의 이유를 사색하며 '같이 생각해 보자'는 의도가 담긴 권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숙제나 과제처럼 계획한 독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작정 끝까지 읽으려 하기 전에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지?'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자아를 대면할 수 있는 진정한 독서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봤다. 무엇인가 실천에 앞서 '왜'에 대해 탄탄한 논리적 근거를 견고하게 다지는 것은 중요하다. 동기부여의 의미뿐 아니라 꾸준한 실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지금까지 알아본 책을 읽는 이유를 정리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아래 Remind 참조). 이제 본격적으로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알아보자. 드디어 책을 대면하는 설레는 순간이다. 하지만 책을 만나기 전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여행하는 순간보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하는 일, 여행을 준비하며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는 일, 여행에서 돌아오며 소복이 쌓인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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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는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는 최적의 도구이자 방법이다.
2. 독서는 개인 능력 발달의 전제조건이다.
3. 독서는 변화와 탐색의 선순환 구조에 최적화된 도구이다.
4. 지적 허영심과 독서를 통한 공감은 다시 치유와 위로로 이어진다.
5. 독서는 '나'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6.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