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23전 23승 0패. 풍전등화 같았던 조선의 운명을 300년 이상 연장시켰다는 지엽적인 평가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 질서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역사적 평가만으로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가히 영웅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많은 전쟁사 전문가들은 한산도 해전(1592)을 살라미스 해전(BC 480), 칼레 해전(1588), 트라팔가르 해전(1805)에 이어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세계 4대 해전으로 꼽는 데 이견이 없다.
이런 세계사적 평가는 제쳐두고라도 23전 23승이라는 숫자 자체만으로도 이순신 장군은 이미 성웅(聖雄)이다. 가위바위보를 23번 연속으로 이기는 것도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하지만 충무공은 해냈다. 중간에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이렇게 한글로 글까지 쓸 수 있다). 역사적, 세계사적 그리고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후세의 사람들은 그가 남긴 『난중일기』를 자세히 살펴보며 그 비밀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영웅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이자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자식이었다. 또한 성공을 꿈꾸는 성실한 공무원이었으며 수군 내에서는 부하들을 관리해야 하는 상관이었고 전쟁을 치르는 장군이기도 했다. 정이 많아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이웃들의 아픔을 나눌 줄 아는 훌륭한 어른이었다.
이처럼 『난중일기』 곳곳에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충무공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와 매우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업적은 더욱 위대하고 존경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늘 스스로 성찰하고 기록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특히,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은 이순신 장군의 시그니처 전술이자 전투에 임하는 기본 원칙이었다.
선승구전(先勝求戰)!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전투를 벌인다’는 의미다. 즉 승전고를 울리는 군대는 이길 수 있는 구조를 미리 짜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해 놓고 그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 반면 지는 군대는 일단 전투를 시작한 뒤 그때부터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다. 따라서 유능한 장수는 전투 전에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순신 장군은 바로 그런 전략가였다. 23전 23승 0패라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비밀은 여기에 있다.
이 격언은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주제(책을 읽는 방법)에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이기는 전투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인 독서(독서에 성공은 없지만 '성공적인' 독서가 있다면)를 하려면 본격적인 독서에 앞서 적절한 대비가 필요하다. 독서에서 대비 혹은 준비란 바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책을 찾는 일, 자신에게 맞는 책을 선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책을 잘 고르는 일은 독서의 시작이자 성공적인 독서에 반드시 필요한 선행조건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어울리는 책, 나에게 맞는 책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일은 성공적인 독서의 선행조건이다.
온/오프라인의 조화
최근 인터넷 온라인 서점들은 소비자가 책을 고르고 구매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서지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잘 구축돼 있어 장르, 출판사, 작가, 출판 연도 등 자신에게 필요한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 서점은 책을 선택하기 위한 정보를 얻기에 적합하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서점이나 도서관을 방문해서 책을 직접 만져보고 할 것을 추천한다. 책은 완벽하게 디지털화할 수 없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다. 표지 디자인을 눈으로 직접 보고, 책장을 손으로 넘겨보고, 고유의 책 향기를 맡아봐야 나와 어울리는 책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보 습득은 온라인, 최종 결정은 오프라인.
첫인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이 중요한 것처럼 책을 선택할 때도 첫인상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도서 외모지상주의(?)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제목과 겉표지가 마음에 들어야 읽을 마음도 생긴다. 취향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선택 기준을 말하긴 어렵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제일이다. 나와 어울리는 제목, 내가 선호하는 이미지와 색상을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내면의 나와 대면한다. 독서는 이렇게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목차를 확인한다
책을 펼치면 대부분 목차(서문이 먼저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가 등장한다. 목차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독자가 많은 데 책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목차만 한 것이 없다. 해당 챕터에서 저자의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차다. 따라서 책의 전체 맥락을 놓치지 않고 독서를 이어 나가려면 수시로 목차를 다시 확인하며 읽으면 된다. 나에게 맞는 책을 선택할 때도 목차는 유용하다. 만약 목차를 대강 훑어봤는데도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것 같거나, 읽고 싶은 챕터 제목이 있다면 나에게 맞는 책일 가능성이 높다. 소설의 경우 목차가 없거나 은유적일 수 있다. 이런 경우 다음 단계인 서문이나 프롤로그를 곧바로 확인한다.
서문으로 재확인
서문도 목차만큼 중요하다. 목차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책이 전개될지 예상했다면 서문을 읽으면서 그 예상이 과연 맞는지 재확인한다. 목차에서 예상했던 내용과 서문의 내용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면 그 책은 자신에게 잘 맞을 확률이 매우 높다. 서문은 책의 앞부분에 있지만 대부분 작가는 서문을 제일 마지막에 작성한다. 잘 조각된 책일수록 서문에는 저자의 저술 의도, 책의 핵심 사항, 전체 내용 요약 등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때 꼭 필요한 요소가 담겨있다. 이렇게 목차와 서문을 통해 책 전체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했으니 건설적인 독서, 성공적인 독서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문단만 읽어보자
앞에서 목차를 살펴보면서(혹은 목차가 없더라도) 가장 눈에 띄는 혹은 제일 마음에 드는 챕터가 있다면 그 책은 자신과 잘 맞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챕터로 가서 한 문단 정도를 가볍게 읽어보자. 그리고 그 문단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 책은 당신에게 읽히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설명하는 데 설명하는 방법까지 나에게 맞는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를 만났을 때나 느낄 만한 반가움이다. 또한 책을 잘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므로 저자의 문체와 나의 독해력이 잘 어울린다는 의미도 된다. 책의 문체는 그 책을 집필한 사람의 또 다른 내면이기 때문에 독자와 저자의 정서적 교감은 더욱 활발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위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두 가지 정도의 기준만 통과해도 꽤 나와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책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독서보다 나쁜 독서는 없다. 이미 이기고 시작하는 전투와 전투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길 방법을 찾는 것의 차이만큼 나쁘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거나 멍을 때리며 뇌에 휴식을 선사하는 게 훨씬 이롭다. 책을 고르는 안목은 아무런 노력 없이 거저 생기지 않는다.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도적으로 도전해야만 쓸만한 안목을 만들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을 다르게 표현하면 결국 책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 위에서 제시한 책을 선택하는 요소와 요령들을 자주 접하면 자연스럽게 책을 고르는 안목도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