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괜찮다! 해도 된다. 아무 상관없고,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능률적인 독서를 장려한다는 의미에선 권장할만한 일이다. 문학 작품을 읽다가 괴로움과 서글픔에 젖어 고독한 방에서 훌쩍이는 주인공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면 그 장면이 있는 문단 옆 공간에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고 써도 된다. 심지어 주인공을 괴롭히는 인물에게 심한 욕(자기만 알아볼 수 있게 쓰면 더욱더 효과적이다)을 쓰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없다. 우리는 그동안 책을 필요 이상으로 아껴왔다.
문학 작품 이외의 실용서 등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해가 안 되거나, 알고 있던 사실과 다른 설명이 나와서 작가에게 따지고 싶다면 빨간색으로 '왜 이렇게 설명하는 거죠? 내가 아는 것이랑 다른데...'라고 냉소적인 멘트를 남겨도 된다.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고마웠다면 '감사합니다.'라고 짧게 적어도 좋다. 또 책을 읽기 싫다면 끄적끄적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 거지?'라고 써도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필기도구가 없어 적을 수 없다면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찢어서 지갑에 간직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책은 나의 사유를 넓힐 수 있는 도구이지 존경과 숭상의 대상이 절대 아니다.
물론 친구에게 빌린 책,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 서점에서 구매하기 전인 책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그리고 영업을 방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책을 조심해서 다루는 것이지 책 자체가 숭고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대상은 그러한 글을 조각한 저자이지 책이 아니다. 나아가 본받아야 할 것은 그 책에 담긴 바른 생각과 사상이지 표면적인 책이 아니다.
"내가 퇴계 이황 선생의 25대손이요."라고 자랑스레 말해봤자 아무도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다면 퇴계 선생과의 생물학적 연관성을 자랑할 게 아니라 '내가 퇴계 선생만큼 훌륭한 인격과 올곧은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를 스스로 돌이켜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책에 낙서해도 아무 문제없다. 오히려 너무 깨끗하게 읽는 것에 신경 쓰다가 독서 후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더 문제다. 신정철 작가는 『메모 독서법』(위즈덤하우스, 2019)에서 "깨끗하게 눈으로만 읽으면 깨끗하게 잊어버린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책을 사유 확장의 도구로 잘 활용하는 방법이자 책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책은 사유를 넓힐 수 있는 도구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밑줄
책을 읽다가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면 필자는 우선 반갑고 고맙다. 연애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문장을 읽으려고 그토록 책을 읽었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어려운 책을 읽느라 꾸벅꾸벅 졸았던 순간부터, 지금 읽는 책을 소개해준 책까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렇게 귀한 글귀를 그냥 읽고만 지나간다는 것은 연기가 무의미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져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 진다. 그러면 펜을 들고 그 문장을 다시 한번 읊조리며 정성껏 밑줄을 긋는다. 꾹꾹 눌러 '오래 기억하자.'라는 기원도 담는다(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왠지 이렇게 하면 오래 기억할 것 같은 기분이다).
밑줄은 그 부분만 빠르게 다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그 책을 만났을 때, 책을 다 읽고 정리할 때, 참조할 내용을 찾을 때 특히 유용하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은 이처럼 독서를 효과적으로 하려는 자연스럽고 쉬운 방법이다. 밑줄의 종류를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구분하여 적용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세 가지로 구분한다(색깔로 구분). 당연히 이 기준은 정답이 아니다. 이를 참조해서 나만의 밑줄 구분 기준을 만들어 보자.
창작에 활용하기
에세이, 서평, 독서 기록 등의 글을 쓸 때 인용하고 싶은 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의 주제에 적절한 사례로 들 수 있는 문장, 문단, 서사를 저장한다는 의미다. 책의 저자가 언급한 다른 책들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서 긋는 밑줄도 여기에 속한다.
해당 책의 이해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긋는 밑줄이다. 저자의 의도를 잘 나타내는 문장, 책의 핵심 키워드와 용어, 각 챕터나 책 전체의 요약 등이 여기에 속한다.
나를 찾아서
활용과 이해와는 별개로 나의 취향과 어울리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독서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 도움을 줄 만한 문장이라고 판단되면 밑줄을 긋는다.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 취향, 가치관과 부합하거나 부합하지 않는 문장이다.
메모
책을 읽을 때마다 억지로 빼곡하게 메모를 남길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밑줄 정도로 충분하다. 하지만 읽은 책이 계속 쌓이다 보면 밑줄만으론 답답한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문장이 중요해서 표시해 놨을 텐데 '왜' 표시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그 밑줄 주변 여백에 메모하면 된다. 절대로 필요보다 기능이 앞서서는 안 된다.
메모 내용에 대해 하나만 짚고 넘어가고 싶다. 간단히 핵심 단어만 적어 두는 것도 좋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그 문장을 재해석해보길 추천한다. 무엇인가 잘 이해했다는 사실은 그 내용을 타인에게 설명해보면 안다.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가르치는 경험을 해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에게 납득할 만큼 설명한다고 가정하고 적어둔다면 그 메모는 더 오래 기억하고, 더 잘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약
모든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해결할 때마다 떠올려야 할 고전적인 접근 방법이 있다. Divide & Conquer, 우리말로 하면 분할 정복법 혹은 분할 정복 알고리즘 정도로 해석한다. 이는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기도 한데 쉽게 말해 '아무리 복잡한 일도 최대한 잘게 쪼개면 된다. 하나씩 이루면 못 이룰 것도 없다.'라는 말이다.
책 한 권을 통째로 이해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챕터만 이해하는 것은 이보다 쉽고, 한 문단만 이해하는 것은 더욱더 쉽다. 따라서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당 챕터를 요약하면서 읽는다(책에서 챕터가 끝나는 곳은 대부분 여유 공간이 많다). 이것도 부담된다면 한 문단을 읽고 그 문단의 핵심 내용을 옆에 적으면서 읽어나간다. 책 전체의 요약은 선후관계만 따져서 그동안 했던 챕터별 요약을 취합하면 된다. 참고로 문학 작품의 경우 챕터별 요약보다는 인물관계도를 파악하는 게 효과적이다.
독서 기록 앱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특수한(친구에게 빌린, 도서관에서 대여한, 서점에서 구매 전인) 경우 밑줄, 메모, 요약을 책에다 직접 할 수 없다. 이럴 때는 디지털 독서 기록 앱을 활용하면 된다. 이런 앱들은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스크랩 기능'만 잘 활용해도 충분하다. 스마트 폰의 사진 촬영 기능을 이용해서 원하는 페이지를 발췌해서 밑줄도 긋고, 메모도 남길 수 있으며 원한다면 책 전체의 요약도 기록해 둘 수 있다. 내용은 위에 설명한 그대로고 방법만 디지털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사용했던 것 중에 괜찮았던 앱들을 소개해 본다. 선택 기준은 가격 무료, 짧은 업데이트 주기, 많은 이용자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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