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습관
● 새로운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동경은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구를 사용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디자인에 끌리며,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도입할 수 있었기에 인류는 지금까지 생존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을 창조했을 때,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한다. 창조성이란 결국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잘 쓴 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는 친구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에서 '책은 인간의 메마른 감수성을 깨는 도끼'라고 말한다. 짧은 표현이지만 독자가 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작가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가 모두 담겼다. 이 문장 하나로 글을 대하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란 무엇인지 강렬하게 각인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만큼 인간은 창조적인 것을 동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습에 찌든 눅눅한 사고를 깰 수 있을 정도의 책(글)이라야 인간은 비로소 존경을 표시한다.
인간의 이러한 창조적 본능을 습관과 연결할 수만 있다면 생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행위가 힘겨운 절제와 부단한 노력이 아니라 본능에 따랐을 뿐인데 습관이 된다면 어떨까?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이보다 가성비 높은 것도 없다. 당신은 그저 책을 읽으며 남겼던 흔적(밑줄, 메모, 요약)을 창의력 넘치게 한 곳에 모으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완성된 흔적들의 모음은 '독서 기록'이라는 훌륭한 창작품으로 재탄생한다. 창조적 본능과 독서 습관의 연결, 바로 독서 기록이다.
독서 기록을 쓴다고 해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그곳에 남겼던 자기 생각을 다시 돌이켜보면 그것이 바로 독서 기록이다. 책에 끄적거린 나의 흔적은 나만의 언어로 쓰인 나만의 글이다. 소중한 당신의 글을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밖으로 끄집어내서 새로운 결과물로 완성해보자. 당신의 DNA에 각인된 창조적 본능도 분명히 동의할 것이다. 이같이 창조적 본능에 따르려면 기록도 자주 해야 하고, 그러려면 어쩔 수 없이 독서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반복은 곧 습관이다. 결국, 독서 습관을 기르는 길은 독서 기록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으로 독서 기록을 하는 방법이다.
독서 노트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효과적이다. 마음에 쏙 드는 필기구와 노트를 마련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적어 나간다. 노트 이름을 '슈뢰딩거'라고 지어서 평생 함께할 친구처럼 대한다면 더욱더 효과적이다. 시작은 쉬울수록 좋다. 책을 다 읽었다면 간단한 서지정보(제목, 저자, 출판 연도, 출판사)를 적고 그 아래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을 한두 개 필사한다. 그 문장 밑에 자기 생각을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나만의 별점 기준을 정해서 점수를 매기고 한 줄 서평(절대 길게 쓰지 말 것)을 남기는 것도 추천한다. 그림에 자신 있다면, 맨 밑에는 책이 주는 느낌이나 기억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연도 그렇지만 습관에도 비약은 없다. 한 장 두장, 독서 기록이 쌓여갈수록 당연히 더 잘 쓰고 싶어 진다. 이렇게 창조적 본능에 응답하라고 말하는 자기 내면과 대면했다면, 이제 한 줄 서평을 두 줄 서평으로 바꾸고, 한두 문장 필사했던 것을 서너 문장 필사하는 것으로 늘린다. 지긋지긋한 독후감 숙제는 없다. 오직 독서 습관에 집중한다.
Notion
방법은 앞서 말한 '독서 노트'와 비슷하다. 다만 도구만 디지털로 바뀌었다. Evernote, OneNote, Google Keep, Apple Notes 등 클라우드 기반의 메모 앱은 셀 수 없이 많다. 필자도 그동안 많은 앱을 독서 노트로 활용해 봤지만, 최근에 정착한 것은 Notion이다.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 친화적 UI(User Interface) 덕분에 사용하기도 편하다.
특히, 유용한 템플릿(양식)을 많이 제공해서 초보 사용자의 진입 장벽도 낮은 편이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템플릿을 복제해서 조금만 손보면 나만의 디지털 서재를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비용을 지불하면 확장된 기능을 쓸 수 있지만 개인이 쓰기에는 무료로 제공하는 기능만으로 충분하다. 끝으로 필자가 사용 중인 독서 노트 템플릿을 공유한다. 템플릿은 어디까지나 템플릿, 참조 용도로만 사용하길 권한다.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1. Notion 설치
2. 위 링크에 접속
3. 우측 상단에 복제를 클릭
4. 자신의 Notion에서 복제한 템플릿을 확인
5. 자세한 기능은 템플릿에 있는 설명 참조
SNS
인스타그램에서 #책스타그램 이나 #북스타그램 을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SNS에 책 읽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 독서 습관을 기르는 데 유용하다는 사실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이다. 독서 노트와 다르게 책 사진을 직접 찍어서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공들일 필요 없이 작성한 독서 노트를 참조해 사진 아래에 간략한 의견을 적으면 그게 바로 도서 리뷰다.
더불어 결과물이 다양할수록 책에 대한 기억도 오래 남는다. 즐겁게 리뷰를 남기면 창작물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할 뿐 아니라, 넘쳐나는 도서 리뷰를 보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 '독서 자극'도 받는다. 인스타그램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SNS에 도서 리뷰를 남겨 보자. 분명 독서 습관을 기르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록의 대화
드디어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일을 실제로 현실에 구현할 시간이다. 친구, 가족, 애인에게 당신이 읽은 책에 관해 설명해 보자. 하지만 무턱대고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해 말하면 '재수 없게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에 십상이다.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경청이 우선이다. 그러다가 당신이 읽은 책과 연결되는 소재가 등장하면 '얼마 전에 OOO이라는 책에서 읽었는데...'라고 가볍게 운을 뗀 뒤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나 난관이 하나 더 있다. 막상 말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책에 대해 기억하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렇지만 상대방에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했다면 반은 성공이다. 나머지 반은 다음에 읽을 책으로 채우면 된다. 문자가 아니라 '말'로 읽은 책을 반추하는 것은 결과물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익하다.
반복은 곧 습관, 독서 습관을 기르는 길은 독서 기록에 있다.
독서 기록도 연습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완성된 형태로 기록해서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독서 기록은 완성했던 경험이 많아야 요령도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습관은 기록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누적시키는 방법이다. 기록하면 할수록 기록하는 기술은 정교해지고 읽고 싶은 책도 많아진다. 그러면 독서 습관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많이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말했다.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많이 생각하라(多想量). 독서 기록을 성실히 남기면 다작은 저절로 할 수 있다. 너무 진부한 답변 같아서 말하기 두렵지만, 특별한 훈련을 한다고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책을 읽고, 낯선 생각을 해보고, 그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곧 작가 수업이다. 그럴 때 독서 기록은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하나의 창작물이 된다. 마침내, 결론에 다다랐다. 창조는 습관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