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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Oct 06. 2022

뇌과학이 필요해

책을 읽는 습관

●        물리학에서는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하위 단계의 작은 요소로 쪼개서 관찰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얼음에 열을 가하면 액체로 바뀌고 온도를 더 올리면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은 물이 산소와 수소가 결합한 화학 물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참고로 물질의 원리가 결국 원소의 특별한 구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이러한 견해를 환원주의(還元主義, reductionism)라고 말한다. 철학에서도 복잡하고 높은 단계의 개념을 하위 단계의 요소로 세분화하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비슷하게 인간의 행동을 환원주의에 근거해 설명하면 뇌 가소성(뇌의 기능이나 구조가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 변화하는 특성, 출처: 박수원. (2016). 뇌 가소성에 대한 이해와 교육적 시사점. 교원교육)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잊었다고 생각한 옛 연인의 전화번호가 비 오는 날 더 생각나는 이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같이 먹고 싶었던 가족에게 '나중에 꼭 같이 먹자'라고 말하는 이유,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나도 모르게 피식대는 이유는 결국 뇌 가소성 때문이다. 당신이 성장하면서 경험한 감정, 이해, 판단, 환경, 결정, 관계 등이 고스란히 뇌에 남아있다.


일정한 패턴을 반복하는 습관도 당신의 뇌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독서 습관도 마찬가지다. 책을 집어 드는 행동이 어색할 수도 있고 익숙할 수도 있지만, 그 차이는 뇌가 그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뇌의 입장에서 독서를 불편하고 해로운 행동으로 인식한다면 당연히 거부반응을 보인다. 차라리 음식을 섭취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생명 연장에 훨씬 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가 독서를 편안하고 이로운 행동으로 인식한다면 무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더 자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까지 한다. 책을 읽고 '도파민'이 분비되는 행복한 경험을 해본 뇌는 그 상황을 또다시 구현하려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그 행동(독서)은 자주 되풀이되고 결국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미엘린


인간의 두뇌에는 대뇌피질에만 약 100억 개의 뉴런(Neuron, 신경세포)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뉴런은 말 그대로 신경계를 구성하는 세포이다. 인접한 다른 뉴런과는 시냅스(Synapse)라는 구조를 통해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출처: Wikipedia) 시냅스 연결이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뇌의 기능은 뛰어나며 이 구조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자극이 필요하다. 인간이 다양한 경험을 지혜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연결(시냅스 구조)보다 뇌의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밝혀졌는데 바로 미엘린(Myelin)이다.


미엘린은 '전선의 플라스틱 피복'과 마찬가지로 신경세포를 둘러싸는 백색 지방질 물질로, 뉴런을 통해 전달되는 신호가 누출되지 않게 보호한다. 신호가 많이 발사될수록 미엘린은 더 두꺼워지며, 미엘린 층이 두꺼워질수록 신호는 더 빨리 전달된다. 저널리스트이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대니얼 코일은 『탤런트 코드』(웅진지식하우스, 2021)에서 "스킬은 신경 회로를 감싸고 있는 절연층이며, 그것은 특정한 신호에 반응할 때 두꺼워진다. 스킬 및 재능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미엘린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한 신호에 반응하는 것이란 '제대로 된 연습과 반복'을 의미한다.


이야기가 복잡해졌지만 '효과적인 뇌는 미엘린이 두꺼우며 이를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만 파악해도 충분하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독서 습관이다. 독서 습관을 기른다는 말은 (뇌의 입장에서는) 독서 관련된 미엘린을 두껍게 만든다는 말과 같다. 책 읽는 것과 연관된 미엘린의 두께를 두껍게 만드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미지 출처 doopedia.co.kr


심적 표상


『1만 시간의 재발견』(비즈니스북스, 2016)으로 재능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아준 안데르스 에릭슨은 책에서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s)이란 개념을 설명한다. "심적 표상이란 사물, 관념, 정보 이외에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을 의미한다." 심적 표상이 중요한 이유는 연습 때문이다. 얼마 전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통해 우승하며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건반 위를 노련하게 춤추는 그의 손가락은 대가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한편 피아니스트에게 연습이란 음악적 생명력과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자신의 연습이 잘못된 것인지 잘 된 것인지 판단할 기준이 모호하다면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심적 표상이다. '완벽한 연주'에 관한 심적 표상을 구체적으로 가진 피아니스트일수록 연습의 성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 대가들의 연주를 모방하고, 실패의 원인을 파악하며, 다시 완벽한 연주에 다가간다. 남은 것은 반복과 숙달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심적 표상은 정확한 피드백을 제공한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심적 표상은 더욱더 구체적으로 발전한다. 팬으로서 임윤찬의 심적 표상이 몹시 궁금하다.


독서 습관을 위한 심적 표상이란 좋아하는(혹은 존경하는) 작가의 책에 담긴 문장과 생각이다. 선호하는 작가의 책을 자꾸 읽을수록 관련된 미엘린은 두꺼워진다. 완벽한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당신이 가진 심적 표상을 강화하고 발전시킨다. 성숙한 심적 표상은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찾게 한다. 이런 선순환 고리에 빠지면 반복의 속도와 횟수는 더욱더 증가한다. 결국, 반복은 습관으로 이어진다. 독서 습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미엘린과 심적 표상의 문제다. 당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하는 작가를 찾아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독서 습관을 뇌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독서 습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미엘린과 심적 표상의 문제다.


보상이 습관이다


'Love Yourself'가 성경에만 있는 말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에도 있고, 철학과 소설에도 있으며 우리들의 뇌에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관심사인 독서 습관에도 'Love Yourself'는 있다. 필자는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습관처럼 하는 게 있다.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는 차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한다. 말하자면 책을 끝까지 읽는 경험과 도파민이 분비되는 행복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사랑과 열정이 담긴 선물을 주는 일, 다시 말해 보상은 뇌에 각인되어 자꾸만 다시 책을 읽으라고 우리를 재촉한다. 뇌는 책을 펼치는 일이 즐겁고 유익한 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보상을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조금 더 효과적이다. 한 챕터를 읽었을 때, 한 권을 읽었을 때, 한 달 동안 읽은 책을 확인할 때, 1년 동안 읽은 책을 확인할 때를 각각 구분하여 보상의 수준을 달리한다. 한 달 동안 목표로 잡은 책을 다 읽었다면(사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친구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며 그동안 읽은 책 이야기를 섞는다. 1년 동안 책 읽느라 고생한 나를 위해 2박 3일의 여행을 선물하는 것도 좋다.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들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보상은 미엘린을 강화하고 소소한 재미도 있으며 독서 동기부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독서 습관을 기르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바꿔 말하면 독서 습관은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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