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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Oct 17. 2023

톨스토이의 다짐

⟪안나 카레니나⟫•레프 톨스토이

1.

작가들의 작가이자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9세기 러시아 귀족들의 사교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리얼리즘의 진수이자 러시아 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책의 제목만 보면 안나의 이야기가 전부일 것 같지만, 그녀의 운명만큼이나 모순과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산 또 하나의 인물이 바로 레빈이다. 두 인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물리학에서 정의한 양전하와 음전하로 비유할 수 있겠다. 둘은 양극단에 있어 서로에게 절대 다가설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시대를 사는 또 다른 인간일 뿐이다. 안나와 레빈은 그래서 다르지만 같다. 즉, 1870년대 러시아를 사는 귀족계층이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은 서로 다르다.


작품의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야기의 두 축인 레빈(콘스탄친 드미트리치 레빈)과 키티(카체리나 알렉산드로브나)의 관계 그리고 안나(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의 관계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레빈과 키티는 결별과 후회에서 만남과 결실로 바뀌고 안나와 브론스키는 유혹과 관능에서 후회와 갈등으로 바뀐다. 어찌 보면 조잡한 통속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인물 관계와 서사 구조가 조금은 속물처럼 느껴져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 보정을 감안하더라도 필자에겐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이런 흐름이 흥미롭고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감정에 쉽게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안나의 불안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다).


또 한 가지, 레빈의 철학과 생활방식 그리고 가치관은 저자인 톨스토이의 아바타 같다고 느껴졌다. 19세기, 서유럽은 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런 발전 과정은 심도 있는 연구를 거쳐 일반법칙을 도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다. 또한 사회주의의 출현과 함께 대두된 이데올로기적 로드맵도 당시 러시아의 상황과 맞지 않았다. 러시아의 참혹한 상황에 대한 레빈의 문제의식,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안과 노력은 톨스토이의 고뇌를 잘 드러낸다. 이에 반해 안나의 물리적 일탈과 정신적 갈등은 톨스토이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같이하게 되었다. 레빈과 안나의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인생은 우리에게 삶은 무엇인지,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안나 카레니나⟫에 담겨있는 톨스토이 특유의 문체도 이 책을 읽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일정한 톤은 유지하되,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 가치관, 심리상태에 따라 변주되는 문체는 이 작품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만든다. 안나뿐만이 아니라 요동치는 레빈의 질투, 용서와 복수에서 갈등하는 알렉세이 등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동화되어, 19세기 러시아 사교계를 직접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한편 톨스토이는 인물의 감정을 문장으로 직접 전하지 않고 인물의 행동이나 습관으로 보여준다. 저자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세련된 방법이다. 이런 기법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적대감과 호감 사이에 있는) 감정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안나가 기차 플랫폼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왜 그녀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질문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 그랬을까? 톨스토이는 안나가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집요하게 그녀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이러한 집요함은 그녀의 우울한 선택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안나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독자들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소설 속 서사의 철칙인 ‘구차하게 설명하지 말고, 직접 보여줘라.’라는 격언의 가장 적절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톨스토이가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다. 인간의 삶을 비롯해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따르는 제1 원리는 무엇인가? 레프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를 살았던 안나와 레빈,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인생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전하고 있다. 저자의 삶이 투영된 인물로 레빈을 많이 언급한다. 하지만 레빈이 곧 톨스토이의 전부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나의 집착과 욕망, 브론스키의 허영과 낭만, 스티바의 세속적 삶 그리고 알렉세이의 우유부단함 등 톨스토이의 여러 단면이 각각의 등장인물에 조금씩 투영됐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간 군상들의 생각과 결정이 모여 ⟪안나 카레니나⟫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2.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 누군가의 운명을 예언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문장은 책을 처음 펼친 독자를 낯선 19세기 러시아의 풍경 속으로 초대한다. 게다가 이 문장은 행복과 불행에 관한 원리이자 모든 인간이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삶의 원칙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이 문장을 법칙으로까지 발전시켰다.



그러자 그 불면의 밤에 레빈의 마음을 휘저어 놓은 모든 것, 그가 내린 모든 결심,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는 농사꾼의 딸과 결혼을 하려 했던 자신의 공상을 떠올리며 혐오감을 느꼈다. 요사이 그를 그토록 괴롭게 짓누르던 삶의 수수께끼가 풀릴 가능성은 오직 그곳에, 맞은편 길로 빠르게 멀어져 가는 그 마차 안에 있었던 것이다.


▶︎ 현실을 직접 목격하기 전에는 자기 객관화란 상상의 영역일 뿐이다. 비루한 현실도 관념 안에서는 숭고한 인내로 비칠 수 있다. 레빈의 꿈꾸는 순수의 세계도 그녀(키티)의 단 한 번의 등장으로 허물어졌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고민하지 말고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저렇게 구부러진 텅 빈 가슴만…….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떠한 이유로 일어날지도 알지 못하는 난…….'


▶︎ 구부러진 텅 빈 가슴… 이보다 더 가혹한 표현이 있을까? 레빈은 형에게 연민보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다. 텅 빈 가슴은 형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모습 같았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 죽음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해야만 한다. 형도 나도 모두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역설적으로 안나가 아니라 레빈의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톨스토이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구성이다. 왜 레빈의 다짐으로 이 책은 마무리되었을지 추측하는 것이 곧 이 책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3.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의 운명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러시아 문학을 제대로 음미하고 싶은 분

톨스토이의 문장을 만나고 싶은 분

밤새워 읽을 책이 필요한 분


안나 카레니나

저자 : 레프 톨스토이
번역 : 연진희
출판 : 민음사(2009)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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