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 Oct 16. 2023

모순이 위로인 이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1.

이념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개인이라는 존재는 이념(이데올로기)의 존재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는 정말 무거운가 가벼운가? 사랑은 인간의 삶보다 무거운 존재일까? 현재를 사는 나는 과연 나의 삶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괴로운가 아니면 너무 가볍기 때문에 힘들어하는가? 이 책을 읽은 내내 저자인 밀란 쿤데라의 끝없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꾸 나에게 무엇인가 물어본다. 특히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는 집착에 가깝게 물고 늘어진다. 존재의 가벼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의 진심은 무엇인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어본다.


이 소설은 제목과 내용 모두에서 ‘모순’을 이야기한다. 참을 수 없는 무게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 머리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토마시는 어떤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자유주의자'이다. 연인과의 관계에도 비슷한 입장을 견지한다. 운명처럼 다가온 연인 테레사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만, 토마시의 자유로운 영혼은 본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지한 사랑과 격정적인 섹스 중에 무엇이 더 우월한지 토마시 자신도 알지 못한다. 우리도 둘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모른다. 무거움과 가벼움 중에 무엇이 긍정적인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모순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너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를 예고도 없이 시작해 버렸다. 한숨 쉬어가는 의미에서, 저자인 밀란 쿤데라의 삶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1968년 봄 체코는 민주화 운동에 성공하지만, 바로 그해 여름 또다시 소련의 침공을 받아 우울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속으로 침잠한다. 이를 통상적으로 '프라하의 봄'이라고 칭하는데, 이런 혼돈과 광풍의 역사에 온전히 몸을 담갔던 작가가 바로 밀란 쿤데라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소련 침공 이후 정부에 의해 철저하게 고립된다. 정확히 이해하긴 힘들지 모르겠으나, 왜 그토록 모순에 천착했는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한 해도 버티지 못하는 이념보다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개인의 삶과 사랑이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고전만의 특징이 하나 있다.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지만,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역시 이런 특징에 충실히 기여한다. 물론 필자도 제목은 입으로 흥얼거릴 정도로 익숙했지만, 정작 어떤 책인지는 인제야 알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고전의 가치를 제대로 지닌 책이었다. 대중과 개인의 관계 혹은 공동체와 거기에 소속된 '나'와의 대립은 21세기인 지금도 첨예한 문제다. 90년대 초반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이 하나둘 몰락하면서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개인의 삶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슷한 화두가 다시 떠올랐다. 이러한 흐름에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분명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 책을 깊이 이해하려면 쿤데라의 삶과 체코의 역사를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체코의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삭막한 사실들의 나열을 암기하는 것보다 프라하의 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훨씬 유리할 것이라 장담한다. 덤으로 애절한 연애 이야기까지 있으니 재미 면에서도 우월할 것이 분명하다. (연애소설을 극도로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따지는 것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자꾸 '선과 악' 혹은 '긍정과 부정'을 구분하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 자동차, 음식, 장소 심지어 마음에서도 경중을 따지려고 한다.


저자인 밀란 쿤테라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모순에서 인간의 실존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인생은 모순 그 자체라고 말한다. 사랑과 섹스, 농담과 진지함, 자유와 의무,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세계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항상 이분법 사이를 헤맨다. 둘 사이를 저울질하며 무엇이 더 우월한지 평가하고 결정하려 한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모순’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작품을 읽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가벼움과 무거움 중 무엇이 더 긍정적인 것인지와 같은) 고민을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똑같이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그녀(사비나)가 어깨에 짐처럼 느꼈던 배신의 부채감은 결코 무거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 짐의 무게를 그토록 버티기 힘들었던 이유는 오히려 ‘존재의 가벼움’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늘 우리를 괴롭힌다. 무겁다는 착각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 삶의 명분을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난 것은 바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무지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 자신을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의 숭고함을 지키려 맹인의 길, 속죄의 길을 선택했다. 그때는 몰랐다는 말 뒤에는 자신과 현실의 문제사이에 커다란 벽을 쌓고 싶은 유치한 의지가 숨어있다. 무지의 대한 속죄는 스스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지막 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도 또 계속될 것이다.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로 변할 것이다. 키치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 ‘키치’는 존재와 망각 사이의 환승역. 키치라는 용어, 단어의 다양한 정의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만큼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떠난 지금(소설의 시점상) 키치의 정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운명과 연결된다. 존재와 망각, 무거움과 가벼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 바로 키치가 아닐까?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 정말 그렇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언제나...


3.

부조리한 역사에 던져진 사랑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진지한 연애 소설을 찾는 분

프라하 여행을 준비하는 분

고전을 읽고 싶은 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 밀란 쿤데라
번역 : 이재룡
출판 : 민음사(2018, 1쇄 1999)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전 14화 톨스토이의 다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