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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Jan 17. 2022

시집을 읽다

⟪시와 산책⟫•한정원

1.

잔잔한 단어와 문장 그리고 문단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아름다운 시와 산책이라는 ‘선물’이 된다. ⟪시와 산책⟫은 생각의 흐름 출판사가 진행 중인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저자인 한정원 작가가 좋아하는 시를 읽고 고독한 산책을 즐기며 삶의 의미에 대한 자기 생각을 시처럼 쓴 산문집이다. 스물일곱 개로 이루어진 산문에는 저자 내면의 단아함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시집을 정말 오래전에 읽었다(읽은 적이 있던가?). 그리고 이번에는 시집 같은 에세이를 읽었다. ⟪시와 산책⟫은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전형적인 ‘시의 표상’과 서사가 있는 ‘산문의 표상’을 연결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념적, 은유적, 중의적, 난해함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시의 표상이었다. 확실한 편견이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명확해졌다. 시는 산책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것이며, 저자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서 ‘감동’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 책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일하며 대략 열 개의 도시를 거쳤다. 사람과 공간을 여의는 것이 이력이 됐다.' 책의 맨 앞에 있는 작가 소개를 방심하고 읽다가 벌써 한번 울컥했다. 시인은 자기소개도 시처럼 하기 때문일까, 마음속에 작지만 긴 파장이 일었다. 담백한 목차와 서문을 지나 첫 장을 읽어 나간다.


분명 에세이인데 시를 읽는 것처럼 계속 청명하고 아름다운 시상들이 마음속에 핀다. 산문이 시처럼 읽힌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단어와 문장들의 향연.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1 쪽 1 감동'을 보여주는 책이다. 페이지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하다. 시인의 일상은 참 따뜻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의 소박한 삶 앞에서 내가 가진 게 많아 부끄러웠다. 강과 바다. 하얀 포말로 가득 찬 해안가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바다가 친근해져 마음속 비밀들을 하나둘 털어놓게 된다. 이 책도 그렇다.




책을 읽고 있지만 내 고민을 들어주는 것 같아 저자에게 마음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진다. 시멘트 같은 충고나 툭툭 던지는 친구가 아니라 어설퍼도 곁에 있어주고 싶은 친구처럼 저자에게 삶을 그리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한 시인과 시집을 알고 싶어 진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저자와 함께 산책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글귀마다 담긴 작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우리들의 냉랭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시와 일상이 일치된 사람의 글은 이런 것일까? 어려운 것 같은 데 문득 좋다. 산책에 담긴 아름다움과 순수함과 안온함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글귀 말고도 정말 마음에 새겨둘 문장들이 많이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책. 오랫동안 곁에 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너무 좋지만 아련하게 남는 글귀가 아까워서 차마 책꽂이 꽂아두기가 망설여진다. 시를 쓰고 싶게 만들고, 읽고 싶게 만들며, 나를 겨울 밖으로 내딛게 만드는 글이 넘쳐난다. 한 번만 읽기에는 아까워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댔다. 조용하고 느릿하게 저자와 함께 걸으면 나를 치유하고 함께 걷는 이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감사했다.


사실 이 책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을 때 더욱 감명 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에 적당한 고독함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큼 청아한 것도 없다. 그 소리를 어떤 의성어로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시와 산책⟫을 읽을 때 정확히 그 소리였다. 한적한 산책길을 걸을 때 생각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찾고 있다면,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공들여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과묵한 강과 달리, 바다는 우선 떠들썩했다. 자꾸 내 앞으로 달려와 발목을 잡았다. 강이 나를 따돌리는 친구였다면, 바다는 내가 시큰둥해도 거듭 다가와 말을 거는 속없이 다정한 친구 같았다.


▶︎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다. 저자에게 이런 문장은 어떻게 조각하는지 꼭 묻고 싶다. 바다 같은 친구, 강 같은 친구 둘 다 우리에겐 소중하다.



산책의 마지막 기쁨은 돌아가는 길을 얼마나 순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산책자이면서 수집자이다. 아니, 수집보다는 ‘줍줍’이라는 사전에 없는 낱말이 더 어울리겠다. (걷다가) 줍(고) (걷다가 또) 줍(고).


▶︎ 인터넷에 떠도는 유행어도 한정원 시인을 만나면 작품이 된다. 관찰력과 새로운 시선은 읽을만한 글을 쓰고 싶은 모든 작가의 영원한 숙제다.



문학은 결국 문과 창문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나 보다. 단단한 벽을 뚫어 통로를 내고, 거기 무엇을 드나들게 하고, 때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살피는 일.


▶︎ 문학 작품을 써보지 못한 필자에게 어떤 수업보다 문학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 문장이다. 나와 너 우리와 너희 사이에 놓여있는 벽에 창문을 내는 일이 곧 문학이다. 공감할 수밖에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런 공감은 위로로 연결된다.


3.

산책하며 읽는 시 같은 에세이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시집 읽기가 두려운 분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분

좋은 문장을 만나고 싶은 분


시와 산책

저자 : 한정원
출판 : 시간의흐름(2020)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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