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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Oct 01. 2023

비참한 경고

⟪1984⟫•조지 오웰

1.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동물농장을 읽고 느낀 암울 하지만 날카로운 풍자는 저자인 조지 오웰을 더 알고 싶다는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의 대표 저서인 『1984』를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명료한 문체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1949년에 출판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유명한 소설이다. 게다가 현재도 개인과 전체 사이의 문제는 여전히 뜨겁게 논의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디스토피아(dystopia) 또는 안티 유토피아(anti-utopia)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공동체 또는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사회는 주로 전체주의적인 정부에 의해 억압받고 통제받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단어는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 쓰인 단어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그리스어 지식을 바탕으로 이것이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했는데, 이것은 dys(나쁜)와 topos(장소)가 결합한 단어이다. 이 책은 전체주의에 소속된 지배계급에 의해 개인의 인간성이 파괴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1984년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출간한 1949년에서 바라보면 『1984』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의 지도자 빅 브라더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의 존재와 빅 브라더의 존재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책에서 빅 브라더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미디어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보일 뿐이다. 디스토피아 즉 전체주의를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어설픈 희망 따위는 없는 매우 현실적인 1949년에 상상한 1984년의 이야기다. 결말은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끝난다고? 설마!' 아쉬움과 미련 같은 소소한 감정을 사치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적이고 확실한 결말이기 때문에 소름 끼치고 무섭기까지 했다.




조지 오웰이 말한 미래 사회는 ‘전체주의’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지배층의 권력을 위해 존재했고, 그래야만 했다. 역사(과거)도 전쟁(폭력)도 그리고 사랑(인간성)과 자신의 존재도 철저히 부정할 때 전체주의는 유지된다. 여타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 책의 서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체주의가 개인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하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정도다. ‘철저하게 처참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조지 오웰은 우리를 인간 의식의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똑바로 바라보라고 한다. 그 심연에는 열정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단지 생존만이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삶의 모든 기준을 생존에 둔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는 물론, 나와의 관계도 모두 부정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파괴는 단지 물리적인 손실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롯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파괴다. 책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배반하는 것도, 부조리한 사회를 반항하는 것도 전체주의 앞에서는 어렵지 않았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속성은 인간 파괴에 있다. 2023년 우리는 전체주의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은연중에 전체주의를 옹호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그도 존재하나요?”

“자네는 존재하지 않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서도 전체주의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필자도 전체의 이로움을 위해 소수의 피해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다.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경고를 무시할 때 전체주의는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한편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기 쉽다. 조지 오웰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 세세하게 보여주는 『1984』는 미래 후손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불의(不義) 보다 비열한 것은 ‘정의로운 척’이다. 정의(正義)의 반대편에 불의가 있고 그러한 몰상식과 악행 너머에 ‘정의로운 척’이 있다.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2.

종이쪽지는 그 맨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펴보았다. 거기에는 멋없이 커다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1984』를 읽다 보면 작품 전체와 어울리지 않게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 종종 있다. 그 부분을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린다. 바로 윈스턴이 종이쪽지를 받고 확인하는 장면이 그렇다. 연애의 시작은 민주주의든 전체주의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1984』와 가장, 매우 어울리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치적인 글’을 쓸 때 가장 창조적이었다는 조지 오웰, 연애를 다룰 때도 충분히 창조적이다.



"줄리아한테 하세요! 줄리아한테!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도, 살갗을 벗겨 뼈를 발라내도 말에요. 저는 안 돼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저는 안 됩니다!”


▶︎ 윈스턴은 그동안 줄리아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것은 아닐까? 진정 그가 원했던 것은 이성을 향한 욕망의 해소였던가? 아니면 오브라이언의 권력에 대한 욕망 앞에 무릎 꿇은 것일까? 개인의 정신을 파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이든 부정하게 하면 된다. 자신의 존경도, 사랑도, 삶도, 마지막엔 자기 자신도 부정하는 것이 곧 자기 파괴의 마지막 단계다. ‘전체주의’에서 정신의 파괴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권력 확장과 연속이 있을 뿐이다. 그 파괴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장려되기까지 한다. 윈스턴은 예전처럼 줄리아를 다시 볼 수 있을까…



A 어군은 먹고 마시고 일하고 옷 입고 계단을 오르내리고 차를 타고 정원을 가꾸고 요리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어휘들로 구성되어 있다.


▶︎ 『1984』의 신어 체계는 특이하다. 신어로 미국 독립선언문을 번역하면 'crimethink'라는 사상죄라는 단어로 해석된다. 전체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독립선언서와 같은 창조적인 글을 작성할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작성해서도 안 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며, 사고는 개인의 행동을 지배한다. 그러므로, 사상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미국 독립선언문을 번역하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다.


3.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조지 오웰의 글을 좋아하는 분

전체주의의 폐단이 궁금하신 분

고전을 읽고 싶은 분


1984

저자 : 조지 오웰
번역 : 정회성
출판 : 민음사(2007, 1쇄 2003)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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