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다의 냄새

이순신과 테미스토클레스

by CO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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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최후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의 성분은 완전히 달랐다.


1598년 겨울, 노량 앞바다. 매캐한 화약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렸고, 차가운 겨울 파도 위로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7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을 끝내는 마지막 북소리가 둥, 둥, 둥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 노장이 갑판 위에 쓰러졌다. 붉은 갑옷 위로 식어가는 체온이 느껴졌지만, 그의 눈빛만은 바다보다 깊고 서늘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아군의 사기를 떨어뜨릴까 염려하여 방패로 앞을 가리라고 명했다. 마지막 숨결에는 오직 시스템의 안녕, 즉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고요한 결기만 서려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전장의 흐름을 통제하려 한 사람. 조선의 통제사, 이순신이다.


시간을 거슬러 기원전 459년, 페르시아의 마그네시아. 이곳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지만, 피 냄새가 아니라 고급 포도주와 향유가 뒤섞인 나른한 냄새였다. 한때 아테네를 구했던 영웅은 이제 적국의 옷을 입고, 적국의 왕이 하사한 영지에서 호의호식하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버림받았고, 살기 위해 어제의 적이었던 페르시아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조국을 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약을 마셨다고도 하고, 단순히 병으로 죽었다고도 한다. 분명한 건 하나다.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눈을 감았다. 아테네의 영웅이자 배신자, 테미스토클레스다.


두 사람의 운명은 놀랍도록 닮았다. 둘 다 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멸망 직전의 나라를 구한 구원자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는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사라졌고, 이순신이 없었다면 조선은 지도에서 지워졌다. 국가라는 시스템이 치명적인 오류를 일으켰을 때 등장한 최고의 해결사들이다.


하지만 입력값이 같다고 해서 결괏값이 같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두 영웅이 시스템을 대하는 방식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 명은 시스템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신화가 되었고, 한 명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살아남으려다 역사 속을 떠도는 유령이 되었다. (한 명은 PPT를 잘 만들었고, 한 명은 실적을 냈다고 해도 될까.) 무엇이 이토록 다른 결말을 만들었을까.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건 재능의 크기가 아니다. 부조리한 세상과 마주했을 때 작동하는 마음의 알고리즘, 그 설계 방식이 달랐다. 우리는 흔히 이 차이를 애국심이나 도덕성의 잣대로 재단하려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윤리가 아니라 통제권에 있었다.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 위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파도에 맞춰 배의 방향을 끊임없이 바꾸는 유능한 표류자였고, 이순신은 파도가 어떻게 치든 상관없이 자신이 정한 항로로 배를 밀고 나가는 고집스러운 항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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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의 관점에서 볼 때, 테미스토클레스는 탁월한 해커였다. 나쁜 뜻이 아니다. 시스템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하고, 비효율적인 규칙을 뛰어넘어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그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정공법 대신 변수를 해킹하는 쪽을 택했다. 세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조국이 내일의 감옥이 된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존재로 설정했다.


살라미스 해전은 그의 해킹 능력이 정점에 달한 무대였다. 당시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 대군에 비해 전력상 절대 열세였다. 정상적인 계산법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전장의 물리적 조건 대신, 적장 크세르크세스의 심리라는 소프트웨어를 공격하기로 했다. 자신의 충실한 하인 시킨누스를 적진으로 몰래 보냈다. 그리고 그리스 연합군이 겁을 먹고 도망치려 하니,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적의 욕망을 자극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전형적인 사회 공학적 해킹 기법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이 정보를 철석같이 믿고, 좁고 물살이 거친 살라미스 해협으로 거대한 함대를 무리하게 밀어 넣었다. 동시에 테미스토클레스는 두려움에 떠는 아군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퇴로를 끊어버렸다. 적에게는 거짓 희망을, 아군에게는 절박한 공포를 주입해 판을 흔들었다.


그의 승리 방식은 철저한 확률 게임이었다. 적이 속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51퍼센트의 가능성에 자신의 목숨과 조국의 운명을 걸었다. 위기 상황에서 번뜩이는 기지로 판을 흔드는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고위험, 고수익의 도박과도 같았다. 승리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에 베팅했고, 다행히 그 베팅은 적중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의 알고리즘은 생존을 최우선으로 돌아갔다. 아테네 시민들이 그의 똑똑함을 시기해 도편추방을 명령했을 때, 그는 억울해하며 죽음을 택하는 대신 미련 없이 플랫폼을 갈아탔다. 어제의 적국인 페르시아로 넘어가 왕의 조언자가 되었다. 그는 페르시아 왕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아버지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준 사람이지만, 이제는 당신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만든 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원했을 뿐이다. 조국이라는 서버가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오류를 뿜어낼 때, 그는 자신의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백업 서버로 이동했을 뿐이다. 철저히 나를 위해 시스템을 이용했다. (요즘 말로 하면 '손절 타이밍'을 정확히 안 사람이다.) 그 덕분에 비참한 죽음 대신, 페르시아의 영주로서 풍요로운 노후를 얻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증명했다. 시스템이 썩었을 때는 적당히 해킹하고 우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걸.


그러나 자신을 변수로 설정한 대가는 컸다.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뀌어야 했다. 아테네 시민들이 그를 버리자, 그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수정했다. 그리스의 영웅에서 페르시아의 신하로. 생존을 위해 세상에 자신을 완벽하게 호환시켰다.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그는 최고 효율의 인터페이스다. 어디에 꽂아도 작동한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고유한 값이 없다. 상황에 따라 값이 변하는 변수는 결국 외부 환경에 종속된다. 그는 살았으되, 자기 자신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를 살린 건 능력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의 자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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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순신은 지독한 아키텍트, 즉 설계자였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상수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흔히 이순신을 23전 23승의 신화적 인물이라고 부르지만,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이 숫자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이다. 가위바위보를 스물세 번 연속해서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즉, 이순신은 확률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의 승리는 운이나 기적이 아니다. 애초에 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놓은 결과다.


그는 선승구전, 즉 이겨놓고 싸웠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이미 책상 위에서 승리를 완성했다. 울돌목의 회오리치는 물길, 판옥선의 단단한 내구도, 화포의 사거리, 병사들의 훈련 상태까지. 통제 가능한 모든 물리적 데이터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테미스토클레스처럼 적을 속이는 심리전에 골몰하기보다, 적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갈 수 없는 물리적 구조를 짜는 데 집중했다.


그의 설계도에서 우연한 변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적이 언제 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촘촘한 정찰망을 가동했고, 아군이 겁을 먹고 도망칠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군율을 세웠다. 명량 해전에서 13척으로 133척을 막아낸 건 기적이나 정신력이 아니다. 좁은 길목과 조류의 흐름, 대자연의 힘을 자신의 무기로 바꾼 치밀한 설계 덕분이다.


이순신에게 진짜 위기는 적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선조라는 시스템의 관리자는 무능하고 질투가 많았다. 신하가 너무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자, 왕은 자신의 권위가 위협받을까 두려워 그를 의심하고 핍박했다. 전쟁 영웅을 잡아다 고문하고, 직위를 박탈해 백의종군을 시켰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 테미스토클레스였다면 이 시점에서 시스템을 버렸을 것이다. 이따위 회사는 때려치우겠다며 사표를 던지거나, 적군에게 정보를 팔아넘겼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나라도 그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그러지 않았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한 충성심의 표현이 아니다. 자신이 설계한 승리의 구조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전문가의 확신이다. 그에게 전쟁은 반드시 끝내야 할 프로젝트였고, 자신은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유일한 코어였다.


그가 상수가 될 수 있었던 건, 외부 환경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이 고문을 해도, 직위를 박탈하고 백의종군을 시켜도, 조선을 지키는 군인이라는 그의 고윳값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말은 숫자를 센 게 아니다. 배가 열두 척뿐이라도, 왕이 나를 버려도, 나는 나다라는 독립 선언이다.


세상이 그를 흔들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스템의 지원 없이도 스스로 시스템이 되었다. 비효율의 극치다. 융통성 없이 부딪히니 몸이 부서지고 마음이 타들어 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았다. 죽는 순간까지 자기 삶의, 그리고 전장의 완벽한 주인이었다. 마지막 노량 해전에서 갑옷을 벗지 않고 북을 두드렸다. 자신의 죽음조차 승리를 위한 데이터로 쓰이길 바랐다. 그는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았다. 스스로 시스템 그 자체가 되었다.


당신은 훗날 어떤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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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은 달랐지만, 테미스토클레스와 이순신은 본질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육지에서는 답이 없다고 깨달은 선구자다. 당시 아테네와 조선의 조정은 육군에 집착하거나 패배주의에 젖어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영웅은 보이지 않는 바다의 가능성을 보았다. 남들이 바다는 위험하다고 말할 때, 그들은 바다야말로 우리가 살길이라며 방향키를 돌렸다.


또한 두 사람은 고독한 설득자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라우리온 은광에서 나온 수익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함대를 만들자고 끈질기게 설득해야 했고, 이순신은 이제 그만 포기하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라며 항변해야 했다. 눈앞의 공포에 질린 대중과 권력자들 사이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그들의 시선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결국 그들은 증명해 냈다. 해커의 기지든, 설계자의 원칙이든, 포기하지 않고 바다로 나간 자만이 시스템을 구한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는 사라졌고, 이순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


테미스토클레스와 이순신. 두 사람은 우리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두 가지 욕망을 대변한다. 하나는 테미스토클레스처럼 유연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다. 눈치껏 줄을 서고, 상황에 맞춰 가면을 바꿔 쓰며, 어떻게든 살아남아 달콤한 열매를 맛보고 싶다. 비난할 일이 아니다. 거친 세상에서 생존은 그 자체로 과업이니까. 하지만 우리 가슴 한구석에는 이순신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있다. 비록 손해를 보고 깨지더라도, 비굴하게 세상에 나를 맞추지 않고 이게 나야라고 외치며 버티고 싶은 자존심. 상황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내 원칙대로 삶을 밀고 나가고 싶은 그 단단한 결기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테미스토클레스처럼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이순신을 꿈꾼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처세를 가르쳐주지만, 이순신은 존엄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확률에 기대어 요행을 바라는 삶은 불안하다. 언제든 변수가 뒤집어버린다. 그러나 스스로 상수가 되어 필연을 만드는 삶은 고단하지만 두려움이 없다.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 어떤 파도도 나를 뒤집을 수 없다.


도덕책을 덮고 현실의 모니터를 켜보자. 지금 당신이 몸담은 조직과 세상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그리고 당신은 어떤 알고리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위기를 만난다. 때로는 테미스토클레스처럼 기민하게 변수를 활용해 생존 확률을 높여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이순신처럼 묵묵히 원칙을 고수하며 필승의 구조를 쌓아야 할 때가 있다.


당신은 지금 세상이라는 변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라는 상수를 지키며 항해하고 있는가. 살아남는 것과 살아있는 것. 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불확실한 파도에 베팅하는 도박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파도도 무너뜨릴 수 없는 방파제를 쌓는 설계자가 될 것인가. 진짜 실력은 위기 상황에서 운을 바라는 게 아니라, 운조차 필요 없는 압도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바다 냄새가 난다. 한쪽은 향수 섞인 비겁함이고, 한쪽은 땀과 피 섞인 숭고함이다. 당신은 훗날 어떤 향기로 기억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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