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익은 상태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by CO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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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출출함을 달래려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우유를 꺼냈다. 습관적으로 팩 상단에 찍힌 날짜부터 확인하니 어제가 마감일이다. 뚜껑을 열어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시큼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컵에 조금 따라 맛을 본다. 맛도 멀쩡하다. 하지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싱크대에 우유를 콸콸 쏟아버린다. 찝찝하기 때문이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저 검은 숫자가 엄중히 경고하는 듯하다. 이건 먹으면 탈 난다고.


빈 우유 팩을 찌그러뜨려 분리수거함에 던져 넣고 돌아서는 순간, 거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과 마주친다. 푸석한 피부, 눈가에 자리 잡은 잔주름, 어느새 염색 없이는 감당 안 되는 흰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방금 버려진 저 우유 신세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스친다. (우유는 10일, 나는..... 단위만 다를 뿐이다.)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심심찮게 자조 섞인 글들이 올라온다. "개발자는 마흔 넘으면 치킨집 차려야 한다던데", "지금 이직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닌가요?", "머리 굳어서 새로운 언어 배우기가 겁납니다." 비단 개발자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마치 대형 마트 진열대에 놓인 신선 식품처럼 취급한다. 보이지 않는 '적령기'라는 도장이 붉게 이마에 찍혀 있다. 취업 적령기, 결혼 적령기, 이직 적령기, 출산 적령기.


우리는 그 숫자가 다가오면 초조해하고, 그 숫자를 넘기는 순간 자신을 폐기 직전의 악성 재고로 분류한다. 어제까지는 멀쩡했던 사람이, 해가 바뀌어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급격히 위축된다. 기능은 멀쩡한데 단지 날짜 때문에 버려지는 우유처럼, 우리의 열정과 능력도 나이라는 숫자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왜 자신의 몸 상태나 마음의 신선도보다 포장지에 적힌 숫자를 더 두려워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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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그 날짜, 유통기한의 정체를 파헤쳐 보자.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볼 때 유통기한은 제품의 수명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판매자를 위한 안전 마진이다.


제조사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제품이 실제로 상하는 시점보다 훨씬 앞당겨 날짜를 찍는다. "이 날짜까지 유통된 제품에 대해서만 품질을 보증하겠다"는 시장의 약속일 뿐, "이 날짜가 지나면 못 먹는다"는 생물학적 사망 선고가 아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본질이 아니라, 유통의 편의를 위해 설정된 상업적 데드라인에 불과하다.


산업 디자인 분야에는 계획적 구식화라는 개념이 있다. 멀쩡한 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구형으로 보이게 하거나, 고의적으로 수명을 단축해 소비자가 새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전략이다. 스마트폰이 2년만 지나면 느려지는 것도, 옷이 한 철만 지나면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모두 기업이 의도한 전략이다. 시장은 영원한 내구성을 원하지 않는다. 빠른 순환과 폐기, 그리고 재구매를 원한다.


우리 인생에 찍힌 날짜들도 이와 비슷하다. "서른 전에는 취업해야지", "마흔 전에는 집을 사야지." 세상이 떠드는 이 기준들은 사회라는 거대한 마트가 구성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배치하기 위해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사회는 우리를 빨리 소모하고, 빨리 교체하길 원한다. 그래야 시스템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내가 늙어서가 아니다. 시장에서 제값 받고 팔리지 않을까 봐 겁이 나서다. 나 역시 그랬다. 13년 차를 넘기면서 밤잠을 설쳤다. 최신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고물이 되어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밀려날까 봐. (새벽 3시에 링크드인을 뒤적이며 '나보다 어린 CTO' 프로필을 세던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만 자라고.) 나의 경험과 통찰이 무르익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신상이 아니라는 사실에만 집착했다. 내가 나를 인격체가 아닌 상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건 단지 진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가치가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상은 나를 판매하지 못할지 몰라도, 나는 나를 사용할 수 있다. 팔리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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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선을 바꿔 소비기한을 보자. 이것이야말로 사용자를 위한 진짜 시간이다. 소비기한은 제품을 개봉하지 않고 보관했을 때, 실제로 섭취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최종 시한을 말한다.


놀랍게도 우유의 유통기한은 10일 안팎이지만 소비기한은 50일에 달한다. 두부나 식빵도 마찬가지다. 포장지에 적힌 날짜가 지났어도 실제로는 한참을 더 버틴다. 냉장 보관만 잘했다면 요거트는 20일, 달걀은 25일이나 더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그 긴 사용 가능한 시간을, 단지 판매용 날짜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바로 레거시 시스템이다. 사람들은 레거시라고 하면 낡고 오래된 것이라며 폄하한다. 하지만 거대한 금융망이나 통신망을 지탱하는 건 오늘 나온 최신 유행 언어로 짠 코드가 아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오류를 수정하며 단단해진 레거시 시스템이다. (나도 레거시다. 최신 유행 프레임워크는 모르지만, 야근 없이 버그 잡는 법은 안다.)


신규 시스템은 화려하지만 검증 안 된 버그를 품고 있다. 반면 레거시 시스템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온갖 예외 상황을 처리해 본 경험이 코드 한 줄 한 줄에 녹아 있다. 이를 엔지니어링에서는 안정화라고 부른다. 낡은 것이 아니라 단단해진 것이다.


사람에게 적용하면 소비기한은 건강 수명이자 현역 수명이다. 세상이 정한 정년이 지났어도 내 체력이 버티고 내 호기심이 살아있다면 나의 소비기한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존재들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한다. 김치, 치즈, 와인을 보라. 이것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함을 잃는 대신 발효와 숙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입는다.


갓 담근 겉절이의 아삭함도 훌륭하지만, 3년 묵은 묵은지의 깊은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묵은지에는 겉절이가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밀도가 있다. 와인 역시 오래된 빈티지일수록 그 향과 깊이가 더해진다. 우리는 왜 자신을 자꾸 겉절이와 비교하며 시들어감을 한탄하는가. 우리는 썩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젊음이라는 물성은 변했을지 몰라도, 연륜이라는 풍미는 이제 막 뚜껑을 열었을 뿐이다. 나이 듦은 낡음이 아니라 깊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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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과 소비기한. 이 둘의 차이는 결국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다. 유통기한은 세상이라는 판매자가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고, 소비기한은 나라는 사용자가 나를 증명하는 기준이다.


세상이 내 이마에 "유통기한 만료"라는 도장을 찍으려 할 때, 주눅 드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상했는가?" 내 머리는 굳었는가, 내 가슴은 식었는가. 아직 뛸 수 있고, 아직 배울 수 있고, 아직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멀쩡하다. 아니, 어설픈 신제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성능을 낼 준비가 되어 있다.


불안은 무지에서 온다. 내 상태를 정확히 안다면 숫자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세상의 시계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걷는다. 나이 듦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태도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위해 진열대에 앉아 있는 상품이 아니다. 스스로의 삶을 요리해 먹기 위해 태어난 주체다. 남이 나를 사가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나를 쓰면 되니까. 세상이 당신을 한물갔다고 말할 때, 그저 한번 웃어주자. 그건 당신의 가치를 알아볼 안목이 없거나, 당신을 감당할 그릇이 안 되는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유통기한은 지났어도 소비기한은 한참 남았다.

아니, 어쩌면 당신은 아직 뚜껑도 따지 않은 최고급 빈티지 와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스스로를 함부로 폐기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지금, 가장 잘 익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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