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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Sep 26. 2024

꿈 속에서도 만나고 싶지 않은 아버지

-  이제는 우리 얘기 좀 해요.

내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였다.

가족들을 때리는 것 빼고는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나쁜 행동들을 모두 했다. 아마 가족들을 때리지 않은 건 그가 가진 최소한의 양심을 남겨두어서가 아닐것이다. 그건 가족들이 그에 대한 기대가 없어 그 어떤 요구나 타박도 하지 않아서이다. 그가 그렇게 나쁜 아버지가 된 것은 '그래도 자식이니까, 그래도 남편이니까, 그래도 아버지니까' 하는 모질지 못한 가족들의 그 마음때문일 거다. 가족들이 너무도 착한 사람들이어서 그랬던 걸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그에게 ' 아비로서 그렇게 살면 안된다' 라고 가르쳤어야 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무책임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 못살겠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나의 형제들은 ' 아버지가 너무 부끄럽다' 고 면전에 대고 고백을 했었어야 했다. 그걸 하지 않아서 내 아버지는 가족에게 더욱 더 무책임했고, 뻔뻔했던 것이다. 애초에 그가 나빠서가 아니라 관계는 상호작용이므로 그를 둘러싼 가족들이 그가 그렇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준 셈이니까. 그가 한없이 무책임하고 뻔뻔해도 어머니는 돌아온 그에게 항상 정갈한 밥상을 차려주었으니 그는 그 어떤 의무나 책임을 지지 않고 살아도 되는... 그래도 되는 인간이라고 착각 했을 것이다.


내 아버지는 무책임한 한량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밖으로 돌았고, 돈이 떨어지거나 명절에 그리고 집에 중요한 대소사가 있을때만 돌아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일들이 끝나면 집을 나갔다. 원래 집은 따로 있는 양 친척집을 다녀가듯 그렇게 언제나 손님처럼 굴었고, 내 기억에 아버지는 집에 언제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오래 머무는 드문 경우에는 언제 집을 나가나 궁금해지기에 이르렀다. 나갈때는 인사도 없이 양복을 곱게 차려입고 엄마의 지갑을 뒤져 돈을 가져갔다. 내가 버젓이 보고 있는데도.


내 아버지는 나를 밖에서 낳았다.

가족들에게 나쁜 아버지의 정점을 찍은 일이 하필 나와 얽혀있담. 빌어먹을.....

그렇게 밖으로 도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싶다. 그런데 왜 하필...그게 나의 탄생이었을까? 난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를 지은 사람이 되었다. 난 태어나서 미안해야 했다. 내 존재가 가족에게는 죄를 짓는 일이었다. 막내로서 집안의 축복이 되거나 복덩이는 커녕, 난 아버지 없는 집에 혼자 남아 그의 '과오의 증거'로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집에 들어온 날을 두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큰언니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전쟁이라고 났으면 했어'라고 말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큰언니가 그렇게 말했는데...더 이상 다른 사람들 얘기는 들어보나마나다. 물론 언니는 뒤에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아버지도 너도 미웠는데, 어린 네가 무슨 잘못인가 싶어 네가 너무 가엾더라' 그랬다. 언니는 그런 마음으로 가족들 나에게 가장 따듯했던 사람이다. 유년이 나마 슬프고 인생이 완전 망가지지 않은 아마 언니의 '동정심어린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대체 그는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을까 수백번 수천번 생각했다. 그저 가정을 돌보지 않은 것으로 모자라 할아버지가 모은 놓은 재산을 하나씩 내다 팔고, 도박을 하고, 사기범으로 몰려 감옥에 수감되고, 외도를 하고는 혼외자를 낳았다.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에는 어떤 소란으로 눈을 뜨게 되었는데, 엄청 우악스러운 성질을 가진 여편네가 꼭두새벽부터 집을 찾아와 동네가 떠나가라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상황이 어리둥절했고 또한 무서웠다. 그 여자가 엄마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두려워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순간 황당하게도 드는 생각이 '혹시 저 여자가 내 친엄마인가?' 싶었다. 자세히 그 여자의 모습에서 나와 닮은 것들을 찾았다. 저런 여자가 진짜 생모일까봐, 나를 보고 같이 가자고 할까봐 무서웠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 여자는 내 생모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던 여자는 집에서 달려온 할머니의 다독임에 난동을 멈추고는 아버지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푸념을 늘어놓고는 돌아갔다. 도대체 아버지는 어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였기에 꼭두새벽 저 여자가 악에 받쳐 온 동네를 깨어 놓도록 소리를 지르게 하는 것일까?


18년 전에 내 아버지는 죽었다.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난 아버지라는 과거의 유령에 사로잡혀 그가 몹시도 밉다. 그도 그것을 아는지 꿈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언감생심....어딜 감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죽어서도 사과 한마디 없는 걸 보면 여전히 죽어서도 자신의 과오들을 직면하지 못하는 영혼이 된 게 분명하다.


내아버지는 가족의 수치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딱 한 사람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꺼이꺼이 우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게 오히려 너무도 이상해서 외숙모가 아버지 영정 앞에서 처연히 울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찌된 연유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버지의 먼 친척인데, 어머니에게는 올캐가 되어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친척이라고 했다. 아마 외숙모에게는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나보다. 아버지가 남편이 형제가 죽었는데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장례식장이라니....그래도 장례식장답게 아버지를 위해 울어주는 단 한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아버지가 죽었을때 나는 통쾌했다.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은 것이 벌을 받아서라고 생각했다. 사실 통쾌했을뿐 아니라 홀가분했다. 본인 친 사고 수습을 나서서 하느라 곤란하고 힘들었던  나이차가 많았던 내 형제들 그리고 '과오의 증거'로 살아야했던 나는 '이제는 끝났다'는 안도감을 먼저 느꼈다. 그런 우리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차마 입밖에 낼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는 암묵적인 공범처럼 부끄러워해야 했다.


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때 아버지는 용감하게 내꿈에 나타났다. 직접 나타날 수는 차마 없었는지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가졌다면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란 나는 아무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고 귀를 씻었다. 그게 끝이었다. 나의 냉대에 그 뒤로 아버지는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꿈에서도 아버지 목소리를 듣고 질겁을 했을까. 사실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리고 투병을 하던 중에 몇달간 내게 계속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바빴기도 했고, 받기도 싫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혹시 이제 언니 오빠도 모자라 이제 겨우 돈을 벌기 시작한 내게 빌 붙어 볼까하는 심산인 전화인가 싶어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성 메세지 하나가 남겨 있었다. 왜 전화를 안받냐고 타박을 들을까 미리 짜증스러워 정말 확인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체 무슨 용건이길래 계속 전화를 하나 궁금해서 음성 메세지를 들었다. 돈달라는 전화기만 해봐라. 빨리 죽어버려라 말해줄테다! 단단히 벼르며...


"아빠야..

전화를 계속 안 받네.

옷 한벌 사줄까?"


뜬금없이 옷을 왜 사준다고 할까 싶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아버지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만큼 내 마음은 오로지 슬픔과 분노와 원망뿐이었다. 그깟 옷 한벌로 이제까지 내게 준 슬픔과 고통을 '퉁'치는가 싶어 더 화가 났다. 그냥 살던대로 살다 죽어버렸으면 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밖에는 살수 없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라면....

어땠을까....

만약...

지금의 나라면 말이다.


"그래요. 사줘요. 옷...

그리고 우리 밥도 먹어요.  

술 한잔도 할래요?

둘 사이에 어색함 대신 술잔을 놓고

이제는 우리 얘기 좀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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