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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선생 Sep 22. 2024

프롤로그. 나를 키운 건 8할이 슬픔과 분노

- 충분히 슬퍼해야 떠나보낼 수 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아비는 종이 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처럼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 정 주 <자화상>


고등학교 때 문제집을 풀다가 발견한 이 시를 한 참을 들여다본 그때가 선명하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이 부분을 얼마나 되뇌고 읊조렸는지 그리고 그 이후 사는 내내 이 한 줄만큼 내 마음을 잘 표현하는 글을 여태 찾지 못했다.


뭔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

시원하다기보단 추운 바람

맨 몸으로 맞서기엔 너무 강한 바람

이리 불었다 저리 불었다 헷갈리는 바람


어린 나는 이런 바람들이 오가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비었고 넓기만 한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듯한 마음으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가족들이 들으면 놀람과 서운함을 넘어 어쩌면 괘씸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기껏 받아줬더니, 기껏 키워줬더니 은혜를 모른다'고 할지 모른다. 정말로 가족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아닐지는 정확히 모른다. 살면서 가족들에게 내 마음을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으니까. 다만 그런 말을 들을까 봐 미리 두려워하며 비극을 그리고 있는지도. 하지만 어쩌면 그게 진실일 가능성이 농후한... 그래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그 수많은 일들. 내가 겪어야 했던 고통보다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큰 고통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응당 행복하지 않은 가족들이 그렇듯 어쩌면 나의 원가족들은 그저 별일만 없기를 바라면서 살았는지 모른다. 실제 각자가 가족 구성원으로서 행복한가 서로에게 위안받는가 보다는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를 더 신경 썼는지 모른다. 아니면 밖에서 보는 시선 따위조차 사치였을지도. 그저 하루하루 생존과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사는 게 더 바빴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저 반듯해 보이면 충분했을지도. 그리고 실제로 우리 가족은 단 한 사람만 빼고는 반듯한 사람들이었고 그렇게 살았다. 나 역시 그래야 했다.


하지만 난 적당히 비뚤어지고 적당히 반듯한 그런 사람이었다. 적당히 비뚤어진 것은 타고난 기질 탓인지 아니면 내가 겪은 환경의 영향 탓이겠고, 적당히 반듯했던 것은 그렇지 않으면 심한 비난과 눈총을 넘어서 존재를 부정당할까 두려워해서일 거다. 여하튼 그렇게 나조차 내가 누군지 모를 무척이나 헷갈리는 사람이 되어갔다.


내가 느끼는 감정조차도 검열하고 부정을 했다. 급기야는 감정 스위치를 꺼버리고 그 어떤 상상의 나라로 도피하는 일들을 반복했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었을 거다. 현실의 나를 보기 싫었을 거다. 아무도 날 반기지 않고 아무도 날 애틋하게 바라보지 않는 현실을. 그저 밥만 먹여줘도 감사했어야 하는 나의 처지를 차마 마음의 눈을 똑바로 뜨고 지금처럼 바라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럴 수 있는 아이는 세상에 없으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이유를 알기엔 난 너무도 어렸다.


지금도 역시 그 모든 일들의 이유를 알만큼 어마어마하게 지혜롭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조금 더 분명히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내 삶이 왜 그렇게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찼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을 피해 상상의 나라로 도피하던 생존 습관 덕에 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불똥이 튀는 것이 두려워 매일 사람들의 안색을 살펴 사람들의 속을 잘 아는 눈치 빠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있었던 일들이 이해가 된다고 해서 슬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상상력이 풍부하고 민감한 사람이 된 것이 자랑스럽지도 더더욱 기쁘지 않다.


다만 특유의 상상력으로 유니크함을 갖게 되었고, 타인의 향한 눈치를 걷어들이고 나에게 집중하면서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내 삶이 표류하는 것을 그냥 두지 않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인에게 절실히 원했던 이해와 관심과 존중을 나 스스로에게 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내게 벌어진 어린 시절의 일들은 '비극'이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너무도 좋았을 일이지만 운이 없던 나는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다. 내 탓은 물론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사실상 없다. 내가 겪지 않아도 될, 내 탓이 아닌 일들로 내 삶은 슬펐고,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틀어졌던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몫은 온전히 내 책임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 지금은 완전히 해방되어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노라고.... 그러니 당신들도 힘내면 좋겠다고 말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드라마틱하고 환타스틱 하고 뷰티풀하게 변화되는 일은 현실에 별로 없다. 애초에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면 인생을 아주 고장나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다만....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중이다. 그것도 아주 운이 좋아서.

36개월간의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나와 직면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엄마가 되어주는 상담 선생님 덕에 그 시절에 머물고 있는 어린 나를 재양육하는 중이다.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엄살을 부리고 싶지 않다. 이미 살아온 시간이, 현실에서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내겐 더 큰 고통이었으므로. 폐허가 된 채 봉인되었던 내 마음을 보는 일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려한다.

내게 일어난 일을 인정하는 것이 그 시작일터.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이라고

여전히 원망하고 여전히 부정하는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하는 것부터.

충분히 더 슬퍼하고 더 분노할 것이며 때론 더 크게 원망할 것이다.


그래도 된다.

나는 언제나 내 편이어야 하므로...



충분히 슬퍼해야
충분히 분노해야
나의 가엾은 유년을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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