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주제의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몇의 사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 것을 각색하여 재구성한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4학년 시후는 무척 바쁜 아이다. 시후는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판타지 요소가 들어간 책을 좋아하는 것은 보통 아이들의 공통점이라 이상한 것은 없다. 그런데 시후는 '판타지'만 좋아한다는 것이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책을 무척 지루해하고 조금이라도 진지한 책을 읽으면 그 진지함을 못 견뎌했다. 시후가 판타지를 읽고 있을 때면 아이 주변에 투명 장막이 쳐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 판타지 세계 안으로 들어가 버린 시후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고책에 집중했다.
시후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주인공이 슬픈 처지에 있게 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순간 '허튼소리'를 해서 그 분위기를 흐트러뜨렸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이 너무 불쌍한데 그게 너무 보기 힘들어서였다. 공감은 되는데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야기하는 게 익숙지 않은 아이라 이상한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후는 지금 이 상황이 화가 나는구나''주인공이 안됬다는 생각이 드는구나'라고 대신 시후의 감정을 읽어주었다. 그러면 시후는 그렇다고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공감은 잘하는데 그 감정을 내뱉지 못하는 아이에게 유일한 친구는 판타지 이야기밖에는 없다.
시후처럼 하루에 평균 3개씩 스케줄을 소화하는 경우가 너무도 흔하다. 거의 매일 하교 후에 학원을 가는데 하루1개는 아주 양호하고 다른 학원을 연달아 2-3개씩 이어서 가는 경우가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일상이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 특히 학습에 대한 높은 기대와 불안으로 많은 학원을 도는 아이들도 많지만, 보통 시후같은 스케줄을 가진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하는 부모는 퇴근전까지 아이를 맡길 곳으로 학원을 선택한다. 저학년들 경우는 영어와 예체능 학원을 다니고, 고학년들은 거기에 수학이 추가가 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런 친구들은 놀 시간이 없으니 친구와 놀면서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는 경험이 적어질수 밖에 없다. 또는 엄마 아빠가 야근이 잦을 경우나 따로 떨어져 살아 주말에만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아이는 감정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대화 욕구인데, 이런 아이들은 그런 대화의 기회가 친구들과도 가족들과도 적어지게 된다. 늦게 퇴근하고 돌아 온 부모는 급한 마음에 아이와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숙제 점점하기 바쁘고 아이와 실강이를 벌이다 잠들기 일쑤다.
오랫동안 이런 하루하루가 쌓이게 되면 아이는 어떻게 친구들과 놀아야 하는지, 감정을 공유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한다. 물론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도 무뎌지고 감정 표현을 잘 안하는 아이가 되버린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는 놀고 싶은 마음을 장난을 걸거나 시비를 거는 식이다. 그러니 더욱 친구가 없게 되고 그럴 때마다 위안이 되는 것을 찾게 되는데, 그래서 요즘은 스마트 폰이 이런 아이들의 최고의 친구다. 정말 찰떡궁합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24시간 나에게 열려있는 재밌고 상처받지 않는 안식처다.
그런데 시후의 경우 스마트 폰이 없어 판타지 책이 그것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스마트 폰에 과몰입해서 부모와 늘 갈등하는 것보다야 무척 바람직해 보인다. 책이 아이의 휴식이 되어주고 심심함을 달래줄 도피처가 되는 것은 근사해보이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사회 환경은 녹녹치 않다. 즉각적이고 빠른 쾌락들이 넘치고, 느리고 깊은 즐거움은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환경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책이라는 매체에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느끼려면 '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책을 읽는 능력은 지속적인 반복적인 훈련으로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하는 훈련은 아이 스스로 훈련인 줄 모르게 재밌기까지 해야한다.
지속적이며 올바른 책 읽기 능력을 갖춘다면야 자신의 결핍을 좋은 쪽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학창시절 친구가 없어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는데, 그것이 나중에 자신의 삶과 일의 자산이 되어 높은 성취를 이룬 유명인들의 사례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른다.
4학년 서연이는 책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그런 아이다. 그리고 책이 읽고 싶어서 늦게까지 잠을 안 자는 아이이기도 했다. 책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는 작가가 되는 꿈이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는 이 아이는 안타깝게 속독을 하고 있었다. 많이 읽다 보니 저절로 빨라진 상태면 괜찮은데 서연이의 경우에는 애매했다. 많이 읽다가 빨라진 것은 맞는데 정독하는 습관 없이 많이만 읽은 상태처럼 보였다. 학습만화만 보는 아이도 아닌데도 책을 지나치게 빨리 읽어치우기 바빴다. 나는 아이가 왜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 파악하려고 애썼다.
4학년 서연이는 친구가 없다. 이유는 자기랑 비슷한 친구가 없어서다. 자기처럼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좋아하는 책이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서 친구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서연이에게 유일한 친구가 책이다. 서연이는 책을 읽으면서 언제 가는 자신에게 딱 맞는 친구나 나타나길 기대하면서 외로움을 달랜다. 현실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을 책으로 달래던 서연이는 그렇게 책 읽는 아이가 되었고, 책 읽는 게 행복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친구가 그리운 아이였다.
아이들은 책을 읽고 있으면 어른들에게서 기분 좋은 칭찬들을 듣게 된다. 하물며 잘 모르는 어른들도 아이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기특한 웃음을 보이며 지나간다. 그러니 책을 읽는 일이 꽤 뿌듯하고 자부심이 생긴다.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이 꽤 괜찮은 아이가 된 것 같고, 거기서 더 나아가 책 한자 읽지 않는 아이들에 비해 우월감도 느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모습을 자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책 읽기는 놀기 싫은 아이들을 피하거나 친한 친구의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는 용도로 이용된다. '나 지금 책 읽고 있잖아' 이 한디로 문제는 해결되지만 아이는 고립되어 간다. 사람들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보통 생각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책보다는 친구랑 노는 게 100배는 재밌고 즐겁다. 책을 읽고 있다가도 친구가 하자는 놀이를 하는 게 우선인 게 아이들이다. 그런데 서연이는 특이한 우월의식을 가진 터라 '아무나'하고 어울리기를 스스로 거부했고, 그렇게 책이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이 읽게 되었고, 자신이 속독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빨리 읽으며 많은 것들을 놓치며 읽고 있었다. 그래도 워낙 책을 많이 읽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좋았고 배경지식들은 꽤 충실이 쌓여있었다. 서연이는 책을 천천히 읽는 것의 장점을 설명하는 내 말이 귀를 기울였고, 빠르게 속독하는 습관을 고쳤다. 무엇을 지적했을 때 그렇게 빠르게 교정되는 경우는 드물기에 서연이가 기특했다.
그래서 나의 조언을 잘 받아들여 속독을 정독하는 습관으로 바꾼 서연이와 나는 책을 읽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올바르게 해석하는 법을 천천히 가르쳤다. 책도 피상적으로 읽으면 안 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도 피상적으로 보면 안 된다. 깊이 보아야 친구가 된다. 서연이가 부디 그걸 배워갔으면 하는 마음을 보태서.
시후나 서연이와 같이 책이 현실의 친구를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책 읽기를 권하는 직업이지만 이런 경우는 좀 걱정스럽다. 아무리 책 읽기가 좋다 하고 권장할 만한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현실을 살아가고 책도 그 현실을 잘 살아가기 위해 읽는 것이지, 책 읽기가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책 읽기나 공부만큼 현실에서의 친구와의 관계 중요하다. 친구와의 교류와 놀이를 통해 책이 채워주지 못하고 어른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또래 집단만의 공감대와 응원으로 아이들은 힘을 얻는다. 사실 어른들의 칭찬을 무척 강조하며 중요성을 얘기한다. 그래서 어른들의 칭찬은 가끔은 진짜 잘해서가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시키기 위해 날리는 뻥카도 있으며, 일의 성과에 비해 과한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잘못된 칭찬은 괜한 근자감만 불러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오염된 칭찬에 자주 노출되다 보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칭찬은 힘을 잃고 아무런 동력이 되어 주지 않는다. 그냥 '으레 하는 말'로 들어버린다.
하지만 친구이자 경쟁자인 또래 아이들은 상대가 진짜 잘해야 칭찬한다. 아직 자기 중심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이라 세상 자신이 제일 잘났다. 그런 또래 아이들이 '멋지다' '대단해' '좋겠다' '잘한다'라는 응원들은 아이 입장에서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에 굉장한 자신감을 얻는다. 아이들은 그런 진정한 '인싸'가 되길 원한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또래와의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아이들과 놀 시간이 없는 시후와 같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이 태생적으로 힘든 아이들도 꽤 많다. 그리고 드물게 스스로 만든 높은 기준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서연이 같은 특이한 케이스도 있다. 각자 다른 이유로 현실의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꽤 많이 만난다. 이런 아이들은 겉보기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분류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강화된다. 아이들의 외로운 속내는 모른 채 그저 책을 읽는 것은 무조건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더 책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런 경우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진짜 현실 친구와 대화하고 노는 것이다. 서로의 자랑거리를 구경하고 서로 비교하며 때론 경쟁을 하고 돕기도 하며 자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 사귀기가 원활하지 않는다면 참 곤란하다. 그렇다고 책이 도피처인 아이들에게 당장 책을 뺏을 수는 없다. 책에서 나와 아이가 마주할 현실은 바쁘고 외로운 일상이니.
그럼 이렇게 책을 도피처를 삼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책을 읽으면서 현실의 친구도 사귈 수 있을까? 유아기도 아닌 이상 이 아이들에게 부모가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없고, 부모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부모는 애초에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가 책을 놓고 현실의 친구를 사귀어 외로움도 해결되고, 책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읽을 수 있을까?
무책임하게도.... 나 역시 이것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 스케줄이 바빠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는 덜 바빠지길 바라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높은 기준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아이는 언젠가는 비슷한 아이를 만나게 되거나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기준을 낮추지 않을까 하고 바랄뿐. 태생적으로 친구 사귀는 것이 어려운 아이는 전문가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아이들이 책을 도피처로 삼는 일을 해결하는 것은 선생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듯 보인다. 다만 책을 천천히 읽으며 책에서 많은 것들을 읽어내면 아이들에게 책이 진짜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정독을 가르칠 필요를 느낀다. 그런 진짜 책 읽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 스스로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를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마음에는 언제나 내편인 '선한 안내자'가 살고 있다. 그 안내자가 길을 잘 찾아가도록 책이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