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익숙한 리터니

by 책선생

# 이 주제의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몇의 사례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 것을 각색하여 재구성한 인물임을 알려드립니다#


동원이는 초등 2학년 여름방학 때 수업을 시작한 리터니 남자 아이다. 아이를 수학 공부방에 보냈던 어머니는 수학 선생님이 책 읽기를 권유해 내게 오게 되었다. 수업을 시작하고 난 왜 수학선생님이 동원이에게 책 읽기를 권했는지 금방 알게 되었다. 수학 문제를 읽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아마 수학 선생님이 문제를 해석해줘야 겨우 문제를 풀었을 거라 추측되었다.


동원이는 아빠가 주재원으로 가면서 7.8세때 미국에서 만2년 정도 머물렀다. 나를 만날 당시 한국에 들어온 지 6개월 정도 된 상태였다. 그런데 동원이는 모국어 읽기가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미국에 나가 영어로 생활하게 되었고, 심지어 동원이의 어머니는 2년 동안 아이에게 한국책을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 기간 동안 온전히 영어에만 집중해서 제대로 영어를 배우길 바랐다고. 그래서 동원이는 7.8세때 오로지 영어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동원이와 첫 수업을 했을 때 난 좀 충격을 받았다. 초등2학년이지만 아이의 모국어 능력이나 독서력은 7세 수준이였다. 동원이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책을 읽었고, 그중 많은 단어들은 그냥 알지도 못한 채 문자 소리를 읽기 바빴다. 그리고 동원이에게 일부 단어를 설명할 때는 영어 단어로 바꾸어 설명했을 때 더 잘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수업을 하는 동안 내내 거의 책을 읽어주었다. 어쩌다 한 번씩 읽기가 얼마나 늘었는가 확인하려고 한 페이지 정도 읽게 하는 걸 빼고는 거의 읽어주었다. 참 지치고 힘든 수업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난 아이가 가진 환경과 능력 중 독서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찾아 그것을 십분 활용한다. 동원이의경우는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읽어주면 집중해서 잘 듣고 게다가 깔깔깔 웃는다. 그리고 그냥 듣고 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보태고 질문도 한다. 이런 아이들은 책을 읽을 줄 알게만 만들면 스스로 얼마든지 재미있게 읽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동원이는 머리도 아주 좋은 아이였다. 읽어준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했고, 이해력도 아주 높았다. 그리고 갑자기 낯선 외국에서 아이들이 생활하다 보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눈치가 발달한다. 이런 친구들 경우 책을 읽을 때 추측하며 읽는 습관이 배어있다. 동원이가 가진 능력의 장점을 이용해 최대한 동원이가 책에 흥미를 갖도록 노력했고, 실제로 동원이는 책을 잘 읽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읽을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책을 좋아할 수 있을까? 비밀은 동원이의 어머니의 노력도 한 몫했다. 동원이의 어머니는 한국에 돌아와 동원이의 심각한 상태를 알고 아주 열심히 한국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이 상태를 보면 학교에서의 학습은 거의 이뤄질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더구나 한자어 베이스인 우리 나라 교과서는 동원이 같이 영어에 익숙한 리터니들에게 더욱 취약하다. 비밀 암호문이 따로 없다. 자칫 학습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원이의 어머니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알아채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고, 내가 책숙제로 보내주는 책들과 추천받은 책들을 사서 퇴근 후에 정말 열심히 읽어주고 있었다. 나와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동원이의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동원이는 재미만 있다면 200쪽 내외 책들은 혼자 읽게 되었다. 그림책도 뜨문뜨문 읽던 동원이가 말이다. 동원이의 어머니는 무척 신기해했다. 아이가 두꺼운 책을 읽는 게 신기했고, 내가 골라준 책들은 유독 재밌게 낄낄거리며 읽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윤서는 아빠가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다. 그런데 처음에 난 이 아이를 만나고 정말 감탄했다.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10년 산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윤서는 그냥 한국에서 자라고 커온 아이처럼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이의 이력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냥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 같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윤서의 한국 책 독서력이다. 영어 책 읽는 능력과 한국어 책 읽는 능력이 똑같은 상태였다.


난 윤서어머니께 어떻게 이게 가능했냐고 물었다. 너무 존경스럽다는 말과 더불어.

사실 윤서와 같은 상황의 아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현재 윤서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어 실력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윤서어머니는 사실 자신은 초등교사라고 하시면서 언젠가 한국에 돌아갈 걸 대비해서 미국에서 한국 책을 정말 열심히 구해 매일 책을 읽어주셨다고 한다. 책 구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주변에 한국 사람들에게 빌리기도 하고, 한국에 나올 때마다 사가기도 했고,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나가는 사람들이 주고 간 책들을 받아 읽어주었다고 하셨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서어머니 브라보!!


윤서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10년동안 자란 미국 사람에 가까운 아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한국 아이로 자랐다. 이건 순전히 윤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확고한 의지와 노력의 결과다. 윤서에게 영어는 생존을 위한 도구였고, 한국어는 정체성과 생각의 그릇을 만드는 모국어로서의 자리를 잘 지켜온 덕분이었다.




동원이나 윤서처럼 부모의 일이나 공부로 외국에 짧게 또는 오랜 기간 체류하다 들어온 리터니들을 자주 만난다. 또는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모국어보다 영어에 더 몰입하는 아이들 역시 많이 만난다. 두 경우 모두 영어 학습에만 몰두하면 한국어 습득에 문제를 겪고, 나중에 학습 부진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때 부모가 아이들에게 모국어와 영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 주냐에 따라 아이의 한국어 능력은 천지차이가 나며, 이후 학습의 결과도 달라진다.


초등 입학 전후인 6,7,8세 아이들은 슬슬 문자를 익혀 나간다. 차차 문자를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문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문자를 빨리 깨우쳤다고 혼자 책을 읽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이가 문자를 읽는다고 뜻까지 모두 이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아이가 문자에 담긴 의미까지 제대로 이해하며 책을 읽을때까지 부모가 읽어주는 게 좋다.


특히 모국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모국어의 기능이 있는데, 한국사람에게 한국어는 생각을 하는 도구이며, 감정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는 언어를 벗어나서 절대 생각할 수가 없다.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의 그릇이 크고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아이의 사고력과 연관되어 있는 모국어 교육에 너무도 소홀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외국어 노출을 시켜서 힘들지 않게 영어를 배우게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 특히 요즘 어린 세대에게 영어는 필수가 된 세상이다. 그러나 공교육안에서의 영어교육은 여전히 기본 회화는 물론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역시나 시험을 위한 '한국식 영어'를 고집하고 있다. 그러니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영어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리고 기회가 있으면 주재원으로 나가거나, 영어 유치원이나 국제학교에 보내는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럴 환경이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영어학원을 중고등까지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좋은 뜻에서 시작한 영어 교육을 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교육부가 이런 언어 교육에 대한 기본 가드라인조차 주지 않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분명한 것은 초등 입학 전후의 아이들 경우, 모국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 교육에 몰입하거나 영어에만 노출된 환경에 놓이다보면 자칫하면 둘 다 잘하는 상태가 아닌 둘다 엉성한 상태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런 엉성한 언어 형성은 아이 사고력에 영향을 준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른채 모국어의 중요성을 놓치고 영어 교육에 몰두하게 되면 윤서와 같은 모범적인 사례보단 동원이 사례와 같아지기 쉽다. 실제로는 굉장히 지능이 높은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생각의 그릇이 쪼그라들어 또래보다 굉장히 유아적인 상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특이 6-8세 사이에 꼭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면 영어 노출양의 2배로 한국어 책을 읽어주거나 한국어로 대화를 많이 해주는 것을 권한다. 영어 몰입은 그 이후에 해도 전혀 늦지 않다는 게 오랜 시간 아이들을 지켜보고 가르치면서 발견한 사실이다.


어째서 우린 무엇 때문에 우리의 언어를 이토록 홀대할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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