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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pr 05. 2024

잃어버린 것들

 그러니까, 정확히 2년 전이었다.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을 자발적 의지와 상관없이 그만두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져도 좋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고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결국 직장을 잃었고 가정으로 들어왔다. 직장을 잃은 슬픔은 컸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에서 밀려났다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마음이 지치니 몸도 아팠다.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유기견 봉사를 하거나 반려견을 키워 보는 게 어때?”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제안하였다. 어렸을 때 강아지를 길렀었고, 강아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나에게 관심이 가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우리 부부는 유기견 보호 센터를 검색하고 물색하였다. 그러나 보호 센터를 좀처럼 찾기가 힘들었다. 유기견 보호 센터나 동물 보호 센터는 주소가 공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나중에 이유를 알고 보니, 주소가 공개되면 그 주소로 사람들이 찾아와 반려동물이었던 동물들을 거기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남편의 지인 중에 유기견 보호 센터를 알고 계시는 분이 계셔서, 그분의 도움을 받아 센터에 찾아갔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2층으로 지어진 예쁜 건물이었다. 여기에서는 스무 마리의 반려견과 열한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옆으로 왔는데 이름은 초코라고 했다. 처음 유기견으로 발견되었을 때 5개월가량 된 강아지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겁이 얼마나 많던지 입양 뜰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소문난 겁쟁이였다고 한다. 지금은 2살이 되었지만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아직은 어리고 모든 게 궁금한 강아지라고 하였다.   보호자 부부는 반려 동물들이 이곳을 떠나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입양을 보내기 위해 홍보를 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초코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고 초코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초코가 집에 온 뒤로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소파에 기대어 있으면, 초코가 다가와 나의 무릎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 어쩌다가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하는 날이면, 빨리 일어나라고 나를 깨우기도 해서, 따로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았다.  한 번은 남편에게 줄 영양제를 챙기고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는 딱 한 알의 영양제가 남아 있었다. 영양제를 꺼내다가 마지막 한 알을 그만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간, 초코가 빛의 속도로 달려와서 그것을 단숨에 먹어버렸다. 다음날 남편은 자상하게도 퇴근길에 개 영양제를 사가지고 왔다. ‘도그시크’라는 이름의 영양제였는데, 황태 맛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줄 때마다 초코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구청의 작은 도서관에서 사서를 돕는 인턴사원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했다. 간단하게 면접을 보았고 채용통지를 받았다. 다음 날부터 출근을 해달라고 하였고 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 30분까지였다. 퇴근 후에,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를 때면, 누르는 소리만 듣고도 초코는 쏜살같이 달려왔다. 내가 온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현관문으로 다가와 멍멍 소리를 냈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꼬리를  흔들며 나를 과하게 반겨주었다.   


 어느 날 사서 선생님이 주말에 장미 축제에 가자고 했다. 주말에 사서 선생님을 비롯해 팀원 1명이 함께 참석했다. 날은 매우 화창하고 맑아서 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오월의 하늘이었다. 장미 축제는 도서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시민공원에서 열렸는데, 4월 말부터 시작하여 장미꽃이 질 때까지 열린다고 하였다. 장미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는 장미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많아서 겨우 공원 입구로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선생님들과 초코를 먼저 내려주고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뱅뱅 돌다가 겨우 주차를 마치고 장미 축제 장소로 5분쯤 걸어갔다. 도착했을 때 순간,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초코는 선생님의 품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인파 속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번개가 머리를 때리고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초코를 찾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다리의 힘이 풀리고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함께 찾아 주었다. 시간은 어느새 훌쩍 오후 네시였다. 선생님 한 분이 근처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 왔다. 공원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 도시락에 무슨 반찬이 있었는지 어떤 맛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돌을 먹는지 목이 콱 메었다.


 이제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었기 때문에 많았던 인파도 거의 빠져나가고 없었다. 초코는 이곳에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에 휩쓸려 누군가를 따라갔거나, 아니면 혼자서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왔다. 초코를 이제 완전히 못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만 소리 내어  큰소리로 공원이 떠나갈 듯 울었다. 슬픔과 죄책감과 좌절감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강아지 소리가 날 때마다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용수철이 튀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럴 때마다 초코는 아니었다.

이제 밤 12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위의 글은 직장을 잃은 슬픔과 어린 시절 사랑했던 반려견을 떠나보냈던 슬픔을 떠올리며 서사로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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