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의 ‘노이요지(怒而橈之)
사람들은 자기의 사소한 감정은 잘 통제하지 못하면서 남들이 싸우면 ‘좀 참아라’, ‘감정을 너무 앞세운다’, ‘비이성적이다’ 등으로 훈수를 둡니다. 바로 이 지점의 역지사지로 ‘손자병법’의 시계(始計) 편에서는 ‘상대를 노하게 만들어 소란을 일으켜라’는 뜻의 노이요지(怒而橈之)를 꺼냅니다. 역발상이죠. 지금까지 우리는 학교나 부모로부터 쭉 교육받기를 ‘분노를 참아라, 조절하라, 분리하라’였는데, 손자는 반대로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라’니 지극히 도발적이고 비상식적 비도덕적 발상입니다.
손자의 ‘노이요지’는 의도적으로 상대를 격분시켜 평정심을 잃게 하는 하나의 전략적 수단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조급한 성격, 강한 자존심 따위와 같은 특징에 맞추어 고의로 도발하고 자극하고 유도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쟁에서) 지구전의 의도를 포기하게 하거나, (비즈니스에서) 객관적 상황보다는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하거나, (개인적인 언쟁 등에서) 맹목적인 행동을 저질러 불리한 조건에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책략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것은 전쟁 상황에서나 쓰일 극한의 도구로서,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현실성이 다소 떨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도 존재합니다.
‘노이요지(怒而橈之)’의 현대적 실용 사례는 바로 수년 전까지도 많이 유행했던 압박면접입니다. 공격적인 질문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면서 지원자를 극도로 몰아붙이고 지원자가 답변하면 또 꼬투리를 잡아서 때린 곳을 또 때리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면접관이 의도를 가지고 지원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심지어 면접자의 외모, 신체, 학력, 과거 트라우마 등을 지적하고 상처를 건드려 감정을 흩트려 놓기도 합니다. 지원자의 순발력과 대처능력, 그리고 스트레스 내성과 자제력, 위기관리능력 등을 확인한다는 명목이었지요.
입사 후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작게는 고객의 클레임에서 심한 경우 중요한 거래처의 고위 실력자와의 불화까지 여러 가지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사고와 신속한 판단력, 그리고 유연한 대응력이 관건인데, 이 경우 압박 면접은 지원자가 이런 역량이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인권침해 소지 등 부작용 논란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자 최근에는 형태를 달리하여 구조화 면접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손자는 이런 논란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분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습니다. ‘분노는 다시 바뀌어 희소식이 될 수 있고 성냄은 다시 바뀌어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망한 국가는 다시 존재할 수 없고,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怒可以復喜, 慍可以復悅 亡國不可以復存, 死者不可以復生/ 노가이복희, 온가이복열 망국불가이복존, 사자불가이복생)
한번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분노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계란과 같아서 항상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내 계란이 깨지면 내가 스스로 덮어버리면 그만이지만, 타인의 계란이라면 내가 수습하기 힘듭니다. 한 순간의 ‘욱’ 감정으로 30년 친구와도 절교하는 경우가 생기고 억만금의 비즈니스관계도 끊어지기는 경우를 간혹 목도합니다. 감정은 순간의 단면이지만, 깊은 우정은 긴 시간 축적의 은행적금 같은 것입니다. 순간의 감정으로 30년 동안 축적된 우정의 적금을 깨는 일은 없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