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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송목 Mar 28. 2024

손자병법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손자병법』은 전쟁을 위한, 전쟁의, 전쟁 전략서입니다. 현대전의 미사일이나 탱크도 아니고, 그것도 2500년 전의 창 칼을 쓰던 시대의 케케묵은 전쟁법입니다. 고작 이런 고전적인 병법에 관심이 있어 손자병법 책을 손에 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더구나 지금은 전쟁 상황도 아니고, 일반인이 무슨 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 비즈니스에서 상대를 적으로 보고 싸워 이기는 법을 갈고닦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말이죠. 또 내용으로 말하자면 손자가 주장하는 전쟁의 핵심은 속임수와 기습인데, 지금 같은 평화와 존중의 시대에 일상에서 그런 논 리를 폈다가는 자칫 욕먹을 수도 있겠죠. 마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예찬하는 것처럼 말이죠.


『손자병법』이 6000자 정도의 워낙 분량이 적은 책이고 원문(해설서)만 보면 다소 만만해 보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단시간 내에 독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몇 백번을 읽었다’, ‘수 천 번을 독파했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짧고 단시간 내에 읽을 수 있다는 ‘만만함’ 때문에 그냥 생각 없이 『손자병법』을 눈으로만 읽을 경우 그 안에 숨겨진 손자의 깊은 통찰력을 놓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손자병법』에 대해 요모조모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혹자는 손자병법을 통해서 경영을 배운다고 합니다. ‘전쟁은 속임수다’라고 하면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경영은 속임수다’ 라거나 ‘인생은 속임수다’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드실 겁니다. 물론 비즈니스에서도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일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손자병법이라는 책의 기조는 사람을 대량 살상한다거나 속고 속인다는 것을 기본전제로 펼치는 전쟁 전략서인 만큼, 반드시 현대 비즈니스와 손자병법을 우리 인생이나 경영과 대비하여 참고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이라면 차라리 피터드러크나 다른 전문 경영서를 뒤지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 생각 듭니다.


또 혹자는 손자병법에서 인생철학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손자가 신전론(愼戰論)을 펼친다 해서, 전쟁을 함부로 벌이는 걸 조심하라고 강조한다 해서, 무슨 휴머니즘이니 대단한 철학서로 치켜세우는 것도 좀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리더십 책이나 자기 계발서에는 이보다 더 심오하고 더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내용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손자병법에서 인생의 보편적인 지혜와 철학을 배운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칸트도 있고 공자, 맹자, 불경, 성경도 있는데 굳이 손자병법에서 어렵게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병법서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이지 않는 지혜와 통찰이 스며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치 공학 책이지만 인문학적 내용이 스며들어 있다는 정도로 말입니다. 


먼저손자병법은 원정 전략서입니다

손자병법에 대한 이런저런 주석, 포장 빼고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하면 ‘전쟁 전략서’입니다. 그것도 공격해 오는 적을 방어하는 전쟁이 아니라 멀리 있는 적을 의도적으로 공격하러 가는 원정(遠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용병개념서’입니다. 즉, 군주가 위객지도(爲客之道)의 ‘원정(遠征)’만을 전제로 놓고 전쟁기획, 지휘전략, 비용산정, 자산운용, 정보 등을 다루는 전략서입니다. 전쟁은 공격도 있고 방어도 있는데, 방어보다는 공격(특히 원정)하는 것 위주의 전략이라는 것이지요. 이 점은 기습, 출병비용 산정, 병사동원 방법, 원거리수송법, 속도중시, 궤도(詭道)의 기만술과 교란책, 공성(攻城), 벌교(伐交), 벌병(伐兵) 등 전편의 내용이 원정(遠征)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통해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둘째, ‘괜찮은 전쟁은 없습니다

싸움은 자기가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행위입니다. 국가라는 이름과 규모만 다를 뿐 전쟁도 싸움의 본질은 같습니다. ‘리링’은 그의 책 <유일한 규칙>에서 ‘병법은 살인 예술이고 군인은 직업 킬러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전쟁에는 대규모 살인이 있었고 스파이가 활동했으며 속임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상이 그렇다 해서 기밀을 몰래 빼내고, 암살을 행하는 일이 의롭다 할 수 없으며, 어떤 수식어로도 살인이 기본인 전쟁을 미화할 수 없습니다. 괜찮은 담배가 없듯이 괜찮은 전쟁은 없습니다. 담배는 무조건 해롭고 전쟁은 무조건 나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봅시다. 손자병법에서는 스파이 활용(용간)의 중요성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정치가, 군인, 외교관은 누구라도 간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누구나 간첩을 나쁜 놈으로 욕합니다. 하지만, 자기편 간첩은 욕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기 강아지는 귀여워하면서 남의 강아지는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편 간첩은 오히려 애국자라 치켜세우고 훈장도 줍니다. 적들에게 전쟁 영웅은 우리에게는 원수이고 살인마입니다. 


최근 사례로 금방 끝날 것 같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측은 애꿎은 죽음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병사 20여만 명이 사망하여 죄수까지 동원하고 있고, 우크라이나도 병력 약 7만 명이 사망하여 40대 국민까지 동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쟁초부터  당사국은 물론 세계 모든 국가들이 말로는 평화니 휴머니즘을 외치고 있지만, 죽고 죽이는 살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에는 윤리도 없으며 휴머니즘도 없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런 개념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산에서 조개를 찾고 바다에서 솔방울 찾는 거랑 다를 바 없습니다. 좋은 전쟁도 없고 착한 적군도 없습니다. 있다면 위장이거나 군대의 본질이 뭔지도 모르고 제복이 좋아 잘못 발들여 놓은 순진한 사람일 겁니다. 우리가 평소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2005>, <웰 컴투 동막골, 2005>, <공동경비구역 JSA, 2000> 등에서 전쟁의 미화된 단면이나 왜곡으로 가스라이팅 된 탓이라 생각합니다.   


셋째손자병법은 병법서입니다

손자병법은 병법서로서 2500년 동안 병법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왔습니다. 글자는 분명 ‘병법’인데 사람들은 여기에다 자꾸 무슨 철학, 사상, 휴머니즘을 붙이려 합니다. ‘손자병법’은 전쟁을 주제로 하는 글자 그대로 ‘병법서’ 일뿐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손자를 무슨 위대한 사상이나 철학의 대가가 되는 양 승화시키려 합니다. 일견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둑 두는 사람들이 ‘바둑이 곧 인생이다’라고 말한다거나, 야구하는 분들이 ‘야구가 인생이다’라고 한다거나, 골프 하는 분들이 ‘골프가 인생이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탄력성의 논리와 확장이라면, 자기가 심취해 있는 스포츠나 직업등 각 분야에서 ‘인생’이나 ‘철학’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당연히 손자병법도 인생, 철학이 될 수 있겠지요.


손자병법 일부 내용에서 휴머니즘이나 인생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해서 ‘전쟁서’라는 본질을 덮어주지는 못합니다. 분명히 사람 죽이는 전쟁을 기반으로 하는 ‘전쟁 전략서’입니다. 손자병법은 정치(道)와 연결되어 있지만, 윤리와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이고 전략적이지만 도덕적 윤리적이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편도 1000리(약 400km), 2000리(약 800km) 길의 장거리 침공을 위한 원정(遠征)은 적극적,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대략 430km인데 이 먼 거리를 말 타고 걸어서 공격하러 간다는데, 이 점에서는 아무리 신전론(愼戰論)을 미화한다 해도 인생철학이니, 휴머니즘, 경영철학까지 비약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손자 특유의 통찰 방법론의 탁월함과 전략적 사고의 태도에서 삶의 영감을 얻는 정도로 만족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공존의 지피지기와 속지 않기 위한 궤도의 기만과 교란술을 배우고, 불가피하게 싸우게 될 경우 상대를 피하거나 극복하는 전략을 터득하는 거지요.

제가 특히 『손자병법』 6,109자에서 주목한 단어는 ‘지피지기’입니다. 1편 시계(始計)부터 13편 용간(用間)까지 지피지기가 스며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각 문장에서 지피지기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기도 하고 생략되기도 했지만, 전편에 걸쳐 지피지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물론 전쟁 기반의 병법서지만, 오늘날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서도  ‘지피지기’는 여전히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2500년 전의 창칼 쓰는 군사 전략이 무슨 도움이며, 고전적인 전쟁사례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여러분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쓰면서 가능하다면 현대적 감각에 부합하는 ‘지피지기’ 실생활 사례와 철학으로 접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다만, 손자병법이 병법 서라는 당초 ‘병법중심’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하여 원문과 최대한 매칭과 적절한 전쟁사례를 수록함으로써, 유연성 있는 접근을 통하여 다원적 해설과 활용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습니다. ‘병법’의 의미를 확장하고 비틀어 작게는 가정 일상, 회사 크게는 정치, 사회분야에서 ‘지피지기’ 적용점과 전략적 시사점을 찾아보려는 시도입니다. 


따라서, 살벌하고 건조한 전쟁이야기에서 벗어나 생활스토리로 이야기를 엮어가다 보면, 다소는 개인적 에세이화로 당초 손자병법의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이기 때문에 특별하고, 생활근접이다 보니 신선한 흥미를 자극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있습니다. 2500년 전 손자의 통찰이 현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언어와 영감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참고문헌>

1. 논문, 박창희, 『손자병법: 군사전략 관점에서 본 손자의 군사사상』(서울:플래닛미디어, 2017), 13쪽

2. 논문, 고가, 손자의 전쟁관과 정치사상-‘도(道)’,‘리(利)’,‘승(勝)’,‘지(知)’개념을 중심으로, 2019, 서울대학교 대학원 

3. 논문, 박재일, 손자병법의 性格에 관한 연구,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2019, p18

4.  리링, 임태홍 역, 유일한 규칙, 글항아리, 2013, p59-61

5. 칼럼, 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끝이 안 보이는 우크라이나 전쟁…다발 전쟁 시대 대비해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4948#home

6. 마쥔, 임홍빈 역, 손자병법 교양강의, 돌베개, 2009, 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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