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가 말씀하시기를, 전쟁이란 국가의 큰일이다’孫子曰,兵者,國之大事 손자왈 병자,국지대사)
여기에서 ‘손자왈孫子曰‘은 학생이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쓴 것입니다. 『손자병법』의 매 편은 모두 이 세 글자로 시작되는데, 이는 손자의 말을 누군가 받아 적은 것임을 뜻합니다.
'손'은 성씨이고 ‘자’는 존칭이며 '왈'은 말한다는 뜻으로 ‘공자왈, 맹자왈...‘ 같은 쓰임새죠. 이는 '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혹은 '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표현입니다. 특히 존경하는 사람이나 스승의 말을 전할 때 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 손무‘가 아닌 '손자'라고 합니다.’손자‘와 ’손무‘는 같은 사람입니다.
2. 손자는 원래 손(孫)씨인가?
아닙니다. 손무의 자는 장경(長卿)이며, 춘추시대 말기에 제(齊) 나라의 낙안(樂安)에서 태어나 주로 오(吳) 나라에서 활동했던 장군이자 병법가(兵法家)입니다. 그의 태어난 때와 사망 시기는 대략 공자와 같은 시기(기원전 552-479)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기」에 의하면 그의 조상인 진완(陳完)은 본래 진(陳) 나라 왕자였는데 33세가 되던 기원전 627년에 진나라에서 태자가 살해당하는 내란이 발생하자 제나라로 망명하였습니다. 제나라 환공(桓公)은 그를 공정(工正)이라는 벼슬과 함께 전(田)씨 성을 주어 환대했고 진완(陳完)의 5 세손인 전서(田書)에 이르러서는 제나라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대부가 된 전서(田書)는 거(莒) 나라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제 경공(景公)으로부터 손(孫)씨 성과 낙안(樂安)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고, 그의 아들이자 손무의 아버지인 손빙(孫憑)도 출사 하여 경(卿)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성씨가 자주 바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당시는 귀족만이 성을 가질 수 있는 시대였고 '성을 부여받는다 ‘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손무의 가계는 타국에서 이주해 온 신흥세력이었지만, 제나라에 깊이 뿌리를 내린 군사세가(軍事世家)가 되었으며, 이에 손무는 정치·군사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정보에 노출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무의 조부인 전서(田書)가 손(孫)씨로 바꾼 후에 손무 일가는 다른 전(田)씨들과 관계가 점차 소원해졌고, 토착 귀족세력으로부터 정치적인 견제를 받아 이에 손무는 자신도 권력투쟁의 희생양이 될 것을 우려하여 남방의 신흥국인 오나라로 망명하였습니다.
3. 손자병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야기가 조금 깁니다, 유명세만큼 역사가 있지요.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 의하면 손무는 오나라에 들어와 나부산(羅浮山)에 은거하다가, 우연히 사냥하러 온 오자서와 만나게 되었고, 오자서는 개혁군주로서 천하패권을 꿈꾸던 오왕 합려에게 손무를 천거했습니다. 이후 오왕 합려는 손무의 「병법 13편」을 미리 읽고 나서 궁중여인들을 대상으로 손무의 실전 지휘 능력을 시험한 후에 장수(후일 상장군上將軍)로 등용했습니다.
역사서의 기록을 종합 참고해 볼 때 손무는 기원전 512년(합려 3년) 서(徐)와 종오 정벌, 기원전 511년(합려 4년)과 기원전 508년(합려 7년)의 초나라와 국지전, 그리고 기원전 506년(합려 9년)의 초나라 원정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손무는 기원전 512년부터 기원전 504년까지 오왕 합려의 핵심 참모로서 원정(遠征) 개념을 설정하는 등 전략을 기획하고, 이에 필요한 군사력을 키우는데 기여했습니다. 손무는 8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탁월한 군사적인 성과를 달성함으로써 『병법 13편」에 수록된 군사력 구축 및 운용개념의 유용성을 증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주 열국지(東周列國志)」에 의하면 손자는 은퇴 후에는 산중에 은둔하면서 자신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병법을 수정·보완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손자병법』은 전국시대로부터 진한 시대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전사(轉寫), 수정, 증편되어 동한(東漢)의 반고가 『한서(漢書) 예문지』를 저술할 때는 82편까지 늘어났고 이를 삼국시대 위(魏) 왕 조조(曹操)가 13편으로 선별, 정리하여 주석을 붙인 『손자 약해(孫子略解)』를 편찬했는데 보통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손자병법』 책들은 조조의 이 위무주손자(魏武註孫子)를 기초로 한 책들이라 보면 무방하겠습니다.
4. 손자병법은 왜 스테디셀러인가?
나폴레옹도 전쟁터에서 항상 휴대하고 애독하였으며, 독일 빌헤름 2세는 1차 대전에 패한 후 『손자병법』을 읽고 나서 “내가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하고 한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현대 군사전략가로 명성이 높은 리델하트도 자신이 지은 20권 이상의 책에 수록된 모든 전쟁의 원칙과 원리가 6,109자의 『손자병법』 안에 다 들어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손자병법』13편은 전국시대(기원전 403년~기원전 221년)를 거쳐 한나라 때에 크게 유행했으며, 송나라 때부터는 무경칠서(武經七書)라 하여 「손자」와 함께 「오자」 「사마법」 「위료자」 「육도」 「삼략」 「이위공문대」의 7종을 묶어 편찬했는데, 이 가운데 『손자병법』을 으뜸으로 쳐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왕조 말기에 이르기까지 역대로 『손자병법』을 애독해 왔고, 특히 조선 초기부터는 무관의 과거시험에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및 개인 문집 등의 사료를 보면 고려의 김방경과 최영, 조선의 유성룡, 이순신, 곽재우 등은 『손자병법』을 깊이 이해하고 실전에 활용한 장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를 거쳐 7세기경에 이 병법서가 전파되었으며, 18세기 이후에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유럽 각국의 군사학자들이 탐독하는 명저가 되었습니다.
최근 기업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일본 기업 중에 도요타、소니, SOFTBANK、파나소닉 등의 회사는 자사의 경영활동에 손자병법의 경쟁법칙을 적용한 바가 있습니다. 한국계 일본인인 Softbank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사장은 자신의 성공 비결은 손자병법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책 『손정의의 선택』에 의하면, 손무의 성공적인 전략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한 오사칠계(五事)를 기업의 기반으로 다뤄 전략사상을 도입했습니다. 이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CEO인 빌게이츠, Facebook CEO인 마크 주커버그 등 미국기업인들도 경영전략에 『손자병법』을 도입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저자=최송목
5. 손자병법의 4가지 특징
일반 서적의 글자 수가 300페이지 기준으로 대략 15만 자인 점을 감안하면 《손자병법》은 불과 6,000자 정도로 거의 소책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워낙 분량이 적다 보니 주석과 해설을 곁들여 읽는다고 해도 만만해 보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단시간에 쉽게 독파할 수 있습니다. ‘몇백 번을 읽었다’, ‘수천 번을 독파했다’는 말들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듯싶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단숨에 읽을 수 있다는 만만함 때문에 《손자병법》을 눈으로만 읽을 경우 그 안에 숨겨진 깊은 통찰과 지혜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자에 집착해 본질을 보지 못하고, 표면을 보느라 내면을 놓칠 수 있죠.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손자병법》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 손자병법은 공격중심, 전략중심, 정규전 중심이다
손자 연구의 권위자인 리링 교수의 《유일한 규칙》에 의하면, 병법서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고 공격과 수비가 있습니다. 이때 손자는 공격을 중시하고 묵자는 수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묵자는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굳게 지켜 낸 수비의 달인이자 침략을 자제(非攻, 비공)하고 겸애를 주장한 평 화주의자입니다. 나폴레옹 시대 프로이센 출신의 탁월한 군사 전략가이자 《전쟁론》의 저자인 클라우제비츠는 힘을 중시했으며 협상보다 전쟁을 우선시했습니다. 반면 손자는 전략을 중시했으며 웬만하면 협상이나 책략으로 전쟁을 대신하려 했고 전쟁은 최후의 수단으로 삼 았습니다. 한편 손자와 클라우제비츠의 병법이 모두 정규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마오쩌둥의 병법은 게릴라전, 비밀 작전, 테러 파괴 공작, 심리전 등의 비정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 정규전과 시간을 끌면서 버티는 지구전은 모두 약자의 전략으로 상대를 속이는 것을 강조합니다.
▢ 손자병법은 대전략이다
현대의 전쟁은 총력전입니다. 이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나타난 현상으로, 군인과 민간의 경계가 무너졌고 군사 수단과 비군사 수 단이 복합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이 점에 주목해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설을 제시했습니다. 전략이 ‘대전략’으로 변한 것인데, 《손자병법》 또한 다루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군주와 장수의 관계를 논하고 군인과 민간의 관계를 논하며 군대 부역과 출병의 관계를 논합니다. 또 책략과 교류와 군대를 정벌하는 일의 상호 관련성을 논했습니다. 따라서 손자의 전략 역시 대전략(Grand Strategy)입니다.
▢ 손자병법은 논리적이다
어떤 주제의 글이든 시대 정신과 작가만의 독특한 사상이 배기 마련입니다. 손자는 병법의 이름으로 그의 철학과 사상을 《손자병법》에 심었습니다. 병법서로 출발했지만 인문학을 담았고 철학을 담았고 자신의 사상을 담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해설이 있습니다. 그중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 박재일의 논문 ‘《손자병법》 의 性格에 관한 연구’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손자의 용병은 ‘궤도’를 최상위 기본 개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궤도는 기만, 교란 등의 여건을 마련하고 적절한 시간, 장소, 방법을 선택해 기습하는 개념입니다. 그 하위 개념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승(全勝), 선승(先勝), 속승(速勝), 필승(必勝)입니다.
◾그중 전승(全勝)은 벌모(伐謀), 벌교(伐交)로 이어지는 정치·외교적 책략으로, 가능한 무력 충돌 없이 승리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하는 ‘최소 피해, 최대 효과’의 승리 개념입니다. 여기에는 아군의 피해는 물론 적군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온전하게(全)’ 이긴다는 뜻입니다 (시계, 작전, 모공, 용간)
◾선승(先勝)은 군사력의 압도적인 우위로 비대칭적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미리(先) 이겨 놓고 싸우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용병 개념입니다. (군형, 병세, 허실)
◾속승(速勝)은 기만에 기초해 적이 예상하지 못하는 비대칭적인 군사력으로 신속하게(速) 공격하고 대응이 불가능하게 하는 속전속결 전략입니다. (군쟁, 구변, 구지)
◾필승(必勝)은 피아의 상황, 지형, 기상 조건을 숙지하고 적의 의도에 부합하는 승리 요건(必)을 조성한 다음 적의 약점에 아군의 전투력을 집중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개념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우발 상황에 대처하는 B플랜, C플랜도 포함합니다. (행군, 지형)
《손자병법》은 이 네 가지 개념을 근간으로 하며 용병의 단계별로 하향식 논리구조로 구성돼 있습니다. 다른 한편 원정의 수행 단계별로 보면 원정 결정 ▶원정 준비 ▶이동 ▶교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 손자병법은 함축적이다
일반 서적이 대략 15만 자 내외라는 점을 감안할 때 손자의 6,000자는 그것의 4퍼센트 정도 분량입니다. 그나마도 당시의 자연 지리와 지형을 활용하는 기술적인 부분의 여섯 편(〈군쟁〉, 〈구변〉, 〈행군〉, 〈지형〉, 〈구지〉, 〈화공〉)을 빼면 실제로 현대인과 맞닿는 부분은 7편 분량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실제 활용 가능한 분량은 일반 서적의 2퍼센트 정도로 줄어듭니다. 전문 작가라면 하루아 침에 원고를 마감해도 될 수준의 미니북이죠.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 구성된 얇은 책이다 보니 독자가 알아서 생각하고 알아서 자기 상황에 대입해 상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손자병법》은 2,500년 후의 현대인도 원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현재 자기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습니다.
또 《손자병법》의 글은 불친절합니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툭 던져 놓듯이 쓴 글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이라 죽편에 자기 생각을 압축 표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압축의 단문은 독자로 하여금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수백 편의 해설서가 나오게 되었고 원본보다 해설이 오히려 긴 책들이 많아진 거죠.
《손자병법》은 문장이 간결합니다. 종이가 아니라 죽편이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기록매체 조건에서 글을 남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그래서 시(詩)는 아니지만 시처럼 짧습니다. 학문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혼란을 줄 소지도 다분합니다. 지금 시대의 독자가 보면 해석이 모호하거나 여럿 나올 수 있으니 분명 단점이겠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독자의 다양한 상상을 수용할 수 있으니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독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단문의 역설입니다. 그래서 2500년 후의 현대인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손자병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다른 방식으로 열광합니다. 자의적인 해석으로 상상의 폭을 넓힌 결과입니다.
결론적으로 《손자병법》은 전쟁이라는 한정된 상황에서의 전술 지휘법이 담긴 전략서로 출발했지만,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의 복합적인 요소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세부적인 전술뿐 만 아니라 전쟁과 관련한 외교, 정치, 심리, 천문, 지리 등도 같이 언급함으로써 내용 전반을 총체적 전략, 즉 ‘대전략’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은 비록 적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정교합니다. 나아가 짧은 단문으로 다양한 해설의 여지와 오역의 소지가 되는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여 각 독자들의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군사. 정치. 외교전문가는 전략 관점으로, 사업가는 경영관점으로, 리더들은 조직관리 관점으로, 심리학자들은 인간관계 관점으로, 기획자는 기획의 모델 等으로, 독자 각자의 위치와 스텐스에서 상황과 현실을 통찰하고 지혜를 모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참고한 책/문헌>
1. 리링, 임태홍 역, 유일한 규칙, 글항아리, 2013, p70-73, p83, p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