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라진 건 정확하게는 지난 2월 19일이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월 3일 이미 그녀의 미래는 사실상 결정되어 있었다. '사망 가능성' 진단이다.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가신 그날 정신없이 우물쭈물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불렀다. "보호자분 되세요? 이리 와 보세요"
응급실 중앙 모니터에 자리 잡은 나이 좀 있는 담당의사가 불렀다.
이어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가락은 모니터에 투영된 엄마의 두개골 사진을 이리저리 하릴없이 커즈로 그어대고 있었다.
"가망 없어요... 가망 없어요"하는 무언의 신호 같았다.
"아... 네"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지식식과 경험과 상업성 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말을 평소 잘 믿지 않는 나였지만, 이때만큼은 더 이상 그들의 속물근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죽음의 마지막 문턱에 다다른 엄마는 더 이상 그들에게 상품가치가 없을 터이고, 이런저런 몇 가지 좋지 않은 다른 징표가 엄마의 다가올 죽음 확률을 높여주고 있었다.
세상에는 예견된 일이라고 모두 다 덤덤해질 수 없다. 매일 사건 사고로 넘쳐나는 게 '죽음'이다. TV로, 뉴스로 타인의 죽음을 듣고, 보고 생활화된 지도 오래다. 하지만 그런 먼 죽음, 타인의 죽음과 좀 다르게 다가오는 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다. 나의 엄마도 그랬다. 병원의 여러 죽음 중 하나였지만, 나에겐 가장 큰 산이 무너지는 산사태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지막날, 보지 않아도 될 장면을 굳이 보려고 나는 억지 노력했다. 엄마가 한 줌 흙이 되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는 걸 직접 목도하려 했다. 기억에 확실하게 각인하려고 했다. 그렇게 기록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울 거 같아서다.
사실 화장장에서 화장 장면을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장인, 장모, 처제를 그렇게 보냈다. 당시는 타서 뼈가 되어 나온 유골을 직접 빻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연출해 주었다. '우리는 확실하게 처리합니다. 이렇게...'라고 하는 것처럼. 딱 '한 줌의 흙'이 된다는 성구를 시현이라도 하는 것처럼 절구통에 유골을 넣고, 빻고, 뼈가루를 항아리에 부어 넣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빻는 과정은 그라인더(기계)로 그냥 짧게 끝냈다. 현대화가 된 건지, 배려를 해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뼈를 빻는 야만적인 폭행 장면이 사라진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직접 장면을 봐서인지, 아직도 나는 엄마 생각을 할 때면 꼭 그 일련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엄마 시신이 들어가고, 태워지고, 그라인더의 '윙'하는 짧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 줌 뼈가루가 되어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는 연속 장면이다.
그래서 나는 현실을 확실하게 자각한다. '나는 있고 엄마는 없다.'라는 현실이다.
잠깐동안 엄마의 죽음을 믿기지 않다가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확실하게 '엄마가 사라졌다'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한다. 펙트의 힘이고 시각의 힘이고 각인된 기억의 힘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런 강제된 기억으로 모든 살아있는 자들에게 신이 우리 인간에게 던지는 경고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너도 반드시 죽는다.'
엄마는 그렇게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기억은 부활되어 가끔씩 추억의 사다리를 타고 스멀스멀 항아리를 삐져나온다. 기억도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다. 엄마는 죽어서, 나는 살아서 기억으로 함께 한다. 같이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산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