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승(不戰勝), 백전불태(百戰不殆)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젊은 정치 신인인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의 만남을 묘사한 한 신문기사 제목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공산주의자’, ‘파시스트’라고 비난하던 두 사람 사이에 갑작스레 기묘한 브로맨스가 연출됐다. 맘다니는 예의를 갖췄고, 트럼프는 의외라 할 만큼 친절했다. 두 사람 모두 한 발씩 물러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의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왜 갑자기 싸움을 멈추고 공손해졌을까?
손자병법 모공편에는 이러한 장면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백전백승 비선지선자야. 부전이굴인지병 선지선자야(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이기는 법’이 아니다. 싸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 그 비용을 계산할 줄 아는 전략적 시야다. 아무리 강한 장수라도 백 번 싸우면 어딘가에 흠집이 나고, 승리에는 언제나 상처가 따른다. 그러니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부전승(不戰勝)’이다.
‘부전승’은 통상 선거의 무투표 당선이나 스포츠의 기권 승리를 뜻하는 용어로 쓰인다. 범위를 넓히면 불필요한 대결구도를 피함으로써 안전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백전불태(百戰不殆)’의 전략이다. 이 개념은 오늘날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굳이 싸움을 벌여 상처나 갈등을 만들 필요가 없다. 흠집을 내거나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능력, 그것이 진짜 승자의 리더십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와 맘다니의 태도는 매우 흥미롭다. 맘다니는 트럼프보다 젊고 활력이 넘치지만, 무게감에서는 아직 정치 신인이다. 굳이 시장 당선인이 대통령을 자극해 승산 없는 게임을 벌일 이유는 없다. 불필요한 도발로 스스로 리스크를 키우는 대신, 싸워서 얻는 이익보다 싸우지 않고 얻는 실익과 안전함을 택했다. 손자병법이 말한 ‘불태(不殆)’ 전략, 즉 싸움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피한 것이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경험 많은 정치인이자 계산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다. 젊은 신예 정치인을 자극해 예측 불가능한 돌발 리스크를 자초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친절한 태도로 긴장을 낮추는 편이 그에게 훨씬 유리하다. 싸움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영향력은 유지되고, 상대에게 불필요한 적대감도 남기지 않는 전략이다. 싸우지 않아도 판은 이미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부전승’ 접근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보여 준 ‘전략적 공손함’이라는 태도다. 공손함은 약자의 무기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다.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면서 상대를 예측 가능한 범위에 두는 것이다. 완벽히 상대를 제거할 수 없는 시대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점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트럼프와 맘다니가 보여준 전략적 계산과 상호 존중은 찾기 어렵다. 마치 난파선 위에서 방향키를 잡아야 할 선장들이 서로 삿대질만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은 상대를 ‘멸(滅)’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님에도, ‘부전승’ 전략은커녕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치킨게임 속에서 국민의 피로만 누적되고 있다. 드라마라면 재미라도 있겠지만, 현실이라 절망적이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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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인용>
1. 김형구기자, 트럼프는 친절했고, 맘다니는 공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