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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Feb 14. 2022

오늘의 성취 : 양모 펠트

양털로 만드는 고양이 털

베란다에서 양모 펠트 키트를 찾았다. 쓰레기로 버리느니 쓰레기 수준으로라도 만드는 게 좋겠다 싶어 그나마 쉬워 보이는 디자인을 골랐다.

오늘의 고양이

구성품이 꽤 간단하다. 표지를 겸한 설명서 1장, 검은 털, 수염이 될 낚싯줄, 하얀 스티로폼과 바늘 3개.


스티로폼은 쿡쿡 찌르는 과정에서 바닥 역할을 한다.

설명서가 영어로 쓰여 마음으로 만들기로 했다

내가 이해한 작업 과정은 이렇다.


1. 스티로폼 위에 양모를 뜯어 올린다.
2. 바늘로 쿡쿡 찌르다 보면 타래가 서로 엉키며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3. 그 과정을 통해 털이 단단하게 뭉치고 모양이 고정된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원재료

가벼운 마음으로 쿡쿡 찌르는데 모양이 잡히지 않는다. 그냥 공허하게 이렇게 찌르기만 해도 되는 것일까 의심이 든다. 힘을 주어 찌르다가, 약하게도 찌르다가 바늘 끝으로 털을 이리저리 밀어도 본다.

피부 아닙니다. 모공과 머리카락 아닙니다

신나서 찌르다 보니 바늘이 부러졌다. 틱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부러진 바늘이 떨어지는데 깜짝 놀랐다. 바늘이 꽤 잘 휜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우는 중이었나 보다.


다행스럽게도 털 안에서 부러지지 않았다. 그랬더라면 찾느라 또 고생했겠다. 혹 양모펠트에 새로 도전하실 생각이라면 바늘을 너무 꺾지 맙시다.

사극에 나오는 가채 스타일

바늘이 부러질까 걱정되어 손을 늦추니 역시나 작업도 늦어진다. 그렇지만 조금씩 모양이 갖추어지는 게 보기 즐겁다. 1픽셀씩 이미지를 수정하는 기분이다.

1시간의 결과

1시간 정도를 콕콕 찌르니 설명서와 얼추 비슷한 모양이 된다. 설명서에서는 몸통 높이를 3cm ~ 3.5cm 정도로 설명했는데 슬쩍 재 보니 2cm 정도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푹푹 들어가지 않고 제법 단단하다.

안전제일

고양이 귀를 만들다 바늘에 찔렸다. 아무래도 크기가 작으니 바늘이 쑤욱 빠지는 때문이다. 지난 파상풍 주사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다. 됐나? 아슬아슬하지만 아마 10년은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골무를 끼웠는데도 살짝 드러난 부분을 찔렸다. 더욱 소심해진 마음으로 야금야금 찌른다.

추억의 MP3 아닙니다

귀와 몸통을 따로 만들고 붙일 때에도 역시 바늘을 쓴다. 접합부를 바늘로 찌르다 보면 그 부분이 엉켜 붙는 방식. 그렇기에 접합부가 될 곳은 사전에 너무 단단하게 뭉치지 않는다.


귀를 놓으니 벌써 애정이 조금 생긴다.

다리 ver 1.0

다리는 조그마한 몸통 모양으로 2개를 만들고 이걸 반씩 잘라 붙인다. 그런데 가위질이 생각보다 깔끔하게 들지 않았다.


심지어 자른 다음에는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헷갈린다. 몸통 아래로 불룩 나왔으면 그게 다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접합에 들어갔다.

마음으로 보면 고양이가 있습니다

다리를 붙이는데 묘하지 않고 분명하게 사지의 길이와 두께가 다르다. 벌써부터 개성 가득.

비보잉 아닙니다. 앞다리 프리즈 아닙니다

꼬리까지 붙이니 제법 고양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수염 붙이기. 한 가닥으로 된 낚싯줄을 4등분해서 하나씩 얼굴 부분에 찔러 넣는다. 그런데 이미 바늘을 여러 번 찔린 얼굴 부분의 털이 단단하게 뭉쳐서 쉽게 들어가질 않는다.


설명서를 보니 바늘로 구멍으로 내고 거기에 찔러 넣는 모양이다.


언제나 마음과 계획과 현실은 따로 논다.

본격 수술

수염이 깊게 들어가지 않으니 바늘 하나로 구멍을 내고 그 옆으로 수염을 찔러 넣고 다른 바늘로 또 밀고 난리도 아니다.


털을 뭉치작업보다 수염을 다는 게 더 어렵다. 그래도 고양이는 수염이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했다.

바로크 수염 고양이

어마무시한 고양이 수염이 탄생했다.


생각보다 양모 펠트는 털이 여기저기 날리는 일이다. 작업하던 책상에 짧은 털이 이리저리 흩어져 마무리로 걸레질을 해야 했다. 어쩌면 손재주가 부족해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루고 미루었던 양모 펠트에 드디어 성공해서 다행이다. 기회가 된다면 여러 색을 써서 좀 더 그럴듯한 인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기대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유분방한 고양이 수염을 보면 진정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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