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권조 Feb 16. 2022

오늘의 성취 : 1분 맞추기

인간형 스톱워치

성취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과제에 도전하며 느낀 것이 몇 있다. 점점 과도한 목표를 세우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첫 번째다.


처음 생각했던 수준은 '라면 위에 계란 노른자 예쁘게 올리기' 정도였다. 물론 이걸 쉬우리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자칫 '풀코스 마라톤 도전하기'와 같은 걸 오늘의 성취라고 도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품었다. 분명 걱정이다. 내가 원하던 건 레벨업이 아니니까.


그러니 적당히 앉아 휴대전화만 가지고도 성취감을 느껴도 되지 않나 싶어 '1분 맞추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스톱워치와 동일하게 1분을 세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손목시계를 앞에 두고 눈을 감았다. 1분이 되었다 싶을 때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는데, 3번 정도 실패하고서 이게 무슨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있을지도

생각을 바꾸어 휴대전화 스톱워치를 쓰기로 했다. 조작 가능성이야 시계를 직접 찍으나 스톱워치를 캡쳐하나 동일할 테니.

자만의 말로.jpg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러다 괜히 어려운 도전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시간을 셈한다는 게 막상 시도하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느껴지는 심박, 자연스레 들고 나는 숨 따위를 활용하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보다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글이라면 이 정도 시점에서 '우리 몸에서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생체 신호는?'과 같은 주제 또는 '왜 심장은 1초에 1번씩 뛰지 않을까?' 하는 주제로 뻗어나갈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내게 지식이라고는 '복싱 링은 로프가 4줄이고 프로레슬링 링은 로프가 3줄이다' 정도가 고작이다.

점점 벌어지는 격차. 커리어 하이를 이미 지났나

내 머리에 시간을 세는 기관이 따로 있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마 모든 인간에게 없지 않을까.


재미있게도 1분 맞추기가 명상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잡념을 버리고 침착하게 명상을 한대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어지러운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1분을 맞추겠다는 생각만 하니 머릿속에 그저 숫자만 흐를 뿐이었다.

오차 범위가 5초라면 성공일지도 모른다

1분의 역사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는 내 지적 한계가 개탄스럽다. 왜 1분은 60초일까.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정한 걸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얻은 결과는 꽤나 실망스러웠다. 내가 궁금한 건 수의 신비가 아니었는데. 시계의 역사에 대해 책을 찾아보는 게 좀 더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이걸로 노력과 도전을 얘기한다면 민망할까?

9번의 도전 만에 성공했다. 연달아 9번을 시도한 건 아니다. 아무래도 눈을 계속 감고 있자니 지루하기도 하고, 왜인지 마음이 긴장되기도 했다.


성공했을 때에도 마음으로는 실패했으리라는 예상이 있었다. 눈을 감고 결과를 기다릴 때는 으레 예상과 결과가 들어맞질 않는다.


살면서 눈을 감고 정확하게 1분을 센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 이런 종류의 도전을 인지하지 못했던 인류가 상당했을 테니, 이 분야에 있어서는 인류 역대 랭킹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괜히 더 나아가 1:00:00에 도전할 마음은 없다. 0.88초 초과로 만족한다. 이번 기회에 이걸 88센티초라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전 21화 오늘의 성취 : 아크릴 물감 그리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