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아크릴 물감 on 캔버스
낙서를 끄적이던 걸 제외하고, 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린 건 언제가 마지막일까? 아마 전교생이 참여해야만 하는 행사에서 그리던 게 마지막이었겠지.
태블릿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심지어 휴대전화로도 제법 마음에 차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절이다. 그럼에도 손에 물감이 묻을까 걱정하며 그리는 그림에는 남다른 관심이 간다.
최근에 들른 카페에 그림이 걸린 걸 보고 괜히 마음이 동해 충동구매를 했다.
밑그림에 번호가 적혀 있고 물감에도 번호가 적혀 있다. 번호를 맞추어 색을 슬슬 칠하면 누구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하는 취지가 담겼다.
세척이 곤란할까 봐 물감은 따로 팔레트에 붓지 않았다. 색은 총 6가지인데 구성으로 따지면 3가지 색과 각각 그 짙은 색으로 되어 있다.
1번 색을 칠할 때에는 붓이 퍼서석해서 제대로 색이 칠해지지 않았다. 푹 담그거나 아니면 물로 한 번 씻어주기라도 해야 했을까. 영 지식이 없어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초심자의 용기로 덕지덕지 바른다. 밑그림 윤곽은 어느새 관심에서 사라졌다.
아크릴의 특징인 것인지 걱정과 다르게 물감이 빠르게 마른다.
노란 계열과 파란 계열을 지나 마지막으로 녹색 계열을 칠한다. 이대로 다 칠한다고 볼 만한 그림이 나올까? 하는 마음과 아무래도 완성만 한다면 뿌듯할 거야 하는 마음이 제각기 고개를 든다.
소소한 성취에 도전하며 삶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 게 몇 있다. 부족한 성과를 걱정하며 손을 놓는 일이 적어진다는 점이 우선 떠오른다.
삶을 열심히 달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때가 부쩍 많아졌다. 의례적으로 내미는 이유는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잠시 쉬어갑니다'이지만, 실상 마음에 두는 이유는 '골인이 멋있지 않고 초라할 것만 같아서요'에 더욱 가깝다.
성취를 명분으로 뛰어드는 도전은 결말이 꽤나 사소하다. 내세울 정도의 성과와 초라한 실패를 구분하기가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다 보면 성과와 바깥 시선 따위로 덜덜 떨리던 무릎을 잊고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도전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도움이 되고 있다. 아마도.
직장에서의 중요한 결정과 아크릴 물감 그리기의 중요도를 동일한 선상에 두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까?
다 칠하고 나니 가운데 잎은 쑥갓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칠하던 부분인데 선을 지키지 않고 슥슥 붓을 밀어내며 색을 입히는 손이 즐거웠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되돌아가지 않고 그림 하나를 다 그렸다. 테두리를 벗어날까 조마조마하던 1번도, 괜찮겠지 하며 설렁설렁했던 6번도 모아놓으니 제법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15센티미터의 작은 그림이지만 소중하다. 언젠가 더욱 큰 그림을 그린다면, 그저 손이 아파서 잠시 쉬어가는 정도였으면 하고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