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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Apr 17. 2024

부산 가는 길 : 1일 차

서울 ▶ 성남


「부산 가는 길 : 준비」에 이어 1일 차 여행을 시작했다. 집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버스터미널 또는 기차역에서 대강 정해 출발지로 이동한 뒤에 걷는 식이었다.


도보여행 차림으로 동네를 걸어 마을을 벗어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일련의 과정이 사진과 영상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여행을 마친 당시에, 1~2초씩의 컷을 모아 간단한 영상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분명 집을 나서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확보한 영상 파일은 2일 차 오전부터가 전부였다. 오늘의 교훈 1번, 파일 관리를 잘하자.


여하간 꽤 부지런하게 걸어 서울 소재 경찰청 맞은편을 지났다. 그리고 대망의 첫 사진.

혹시 몰라 번호판은 모자이크로 가려보았다

조그맣게 나온 도로 표지판으로 경찰청 앞이란 걸 알아내고 기뻐했으나, 정작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


아마 주류를 운반하던 트럭에서 화물이 쏟아져 기사와 환경미화원(환경공무관)이 함께 도로를 정리한 모양이다. 지도로 방향을 확인하니 사진은 이동 중에 뒤를 돌아봐서 찍은 것이다.


아마 (1) 쏟아진 화물을 보고도 휘적휘적 지나쳐서는 사진을 찍었거나 (2) 걷다가 쿵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니 화물이 쏟아져 있어 사진을 찍은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치우는 작업을 거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돕는 것이 의무는 아니나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뒤돌아 생각하면, 멋대로 떠나 다니는 여행인데 무엇에 쫓기는 듯 서두른 경향이 있었다. 마음에 좀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청소도 돕고 주변 구경도 했겠지.


이후 내가 어딜 걸었는지 알아내려 했는데 보존 과정에서 사진과 영상을 많이 잃어버렸는지 간극이 크다. 서울을 벗어나기까지 남아있는 사진은 경찰청 ▶ 한강 어딘가의 다리 ▶ 서울 남부터미널이었다.

도대체 무슨 다리일까

그래서 경찰청에서 서울 남부터미널로 가는 길에 있는 다리를 추리고 단서를 수집해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렇다, 사실 이 이야기는 여행기가 아니라 제한적인 정보로 저자의 이동 경로를 추정하는 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단서는 좌상단의 라이언 A와 우하단의 라이언 B.


동작대교에 전망대가 있으나 같은 구조물로 보기에는 어렵다. 로드뷰를 뒤진 끝에 2016년 7월의 한강대교 사진에서 라이언 B의 파도 문양을 확인했다. 파도였구나, 막연히 고래 그림이라 생각했다.


이제 보니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묘하게 직선이지 못한 경로를 그리며 걷고 있었다. 생각하면 서울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모 아파트 단지에 잘못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해 낑낑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서울 남부터미널을 들른 것만은 분명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분식집 냉면이 맛있었거든요

볕 아래 땀을 흘리다 보면 아무래도 짜고 신 음식을 찾게 된다. 물론 그럴 때일수록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균형 있게 신체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 하지만 나는 주로 자극적인 걸 먹으면서 "헤헤" 하고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1일 차의 첫 식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이어 서초 IC를 지나 서울을 벗어나고자 했다. 서초 IC에 부산 방향이 쓰여 있는 표지판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으니 기억하고 있다. 다만, 내 인스타그램 계정은 언제부터인가 만난 적도 없는 외국 여성이 광고 계정으로 사용한 바람에... 이제 남은 사진은 없다. 오늘의 교훈 2번, SNS 비밀번호를 잘 관리하자.

보도블록 위에 라바콘을 설치한 미술 작품, 「잊어버린 약속」

나는 왜 저런 사진을 찍은 걸까. 아마 파손된 보도블록을 수리하기 전에 라바콘으로 표시를 한 모양인데, 풀이 자라고 라바콘이 거멓게 물들도록 방치된 모양이다.


기억하기로는 서울과 성남의 경계 즈음이었는데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아파트 단지가 있었으나 높은 방음벽이 설치되어 통행은 불가능했다. 도로 사이사이 허리를 넘는 풀이 자란 곳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짜고 맵고 자극적인 맛, 최고야

1일 차 마지막 사진. 오후 6시를 넘겨서 성남에 도착했다. 운이 좋게도 당시 주문표가 남아 있어 명인만두 복정점이었던 걸 확인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운영을 하지 않는 모양. 위치는 복정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으로, 당시 내가 양재천을 따라 걷다가 탄천을 따라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8년 전 스스로의 일정을 되짚는 것도 이 모양인데 도대체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작업을 하는 걸까, 놀라울 따름이다.


어찌 되었든 1일 차에 서울 탈출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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