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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Apr 06. 2024

지극히 개인적인 편지

아까는 분명 기분이 좋았었는데 사실 걸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카페인 때문이었나 봐. 나는 사실 한국이 싫은 게 아니라 너와 함께 했던 추억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거라고 너를 마지막으로 본 인천공항이 두려웠던 거라고.


2년을 함께 했던 집을 매일 지나가며 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지옥이 따로 없었겠다 우리가 손잡고 걸었던 길을 매일 지나가며 내가 미안해 자취방을 거기로 옮기는 걸 말렸어야 하는데 멀리 네가 살고 싶었던 왕십리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퇴근길 목적지까지 두 정거장 남았던 때 나는 항상 너에게 연락을 했지 보고 싶어 나와주면 안 돼? 너는 거절한 적이 없었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도 나가기 참 귀찮았을 텐데도 너는 내 손을 잡고 처음 만나는 연인처럼 웃었지


일상을 도피하고 싶었던 난 매일 졸랐어 에버랜드를 갈래 서울랜드를 갈래 너는 놀이공원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 즉흥적인 계획에 늘 따라 주었어 지극히 작은 걸로 투정을 부리고 아주 작은 일로 다퉈도 너는 나보다 몇십 년을 더 산 사람처럼 항상 나를 껴안았지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 아무리 잊으려고 애를 써도 아무리 담담한 척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도 맨날 누워 있는 나를 봐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매번 고양이 모래를 하루에 세 번씩 치웠지 나는 뭐가 그렇게 귀찮았을까 작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너 돌돌이를 미는 너


너는 나한테 미안할 필요 없다고 한순간도 불행한 적이 없었다고 무척 보고 싶다고 이렇게 우는 나를 보면 너는 비상약을 먹으라고 했겠지 그렇게 말하는 너 대신 야리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봐 엄마가 왜 슬픈지 아는 것처럼


네가 아주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만 동시에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난 이기적인 걸까 삶의 방향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헤어졌지만 나는 매 순간 너를 생각한다고 많이 운다고 그러니까 너도 살라고 모든 게 괜찮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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