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도 연봉에 포함돼요.
영어 과외 선생님으로 시작했다.
내가 아는 걸 가르치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좋았다.
그 일이 나를 성장시킬 거라 믿었고, 그렇게 사는 삶을 원했다.
하지만 교육열은 뜨거웠고, 나는 금세 지쳤다.
대학을 중퇴했고, 과외도 끊겼다.
소개로 들어간 골프장 예약실에선 기숙사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다른 일을 해보려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 사람을 마주 보는 일로 돌아왔다.
선택보다는, 살아남는 방식에 가까웠다.
지금 나는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 일한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웃고, 사과하고, 외면당하고, 또 웃는다.
감정은 버려두고, 몸으로만 버티는 하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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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직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말한 말은 “죄송합니다”다.
그 말은 이제 입에 먼저 얹히는 반사 신경처럼 굳어버렸다.
하지만 정작 나는, 누군가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줄을 서지 않는 고객에게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쪽으로 줄을 서주시면 순서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앞사람 결제가 길어진다고 소리치는 고객에게
“죄송합니다, 아직 앞분이 결제 중이셔서요. 끝나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내가 결제하는 건데 왜 도와주는 거죠?”라는 말엔
“멘트 지침상 그렇게 안내드린 거예요.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제품 설명을 건넸을 땐
“혼자 볼게요.”
사과하고, 한 걸음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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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 그랬다.
“그 사과도 연봉에 포함된 거잖아요.”
최저시급에 이 많은 사과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그 말을 듣고 처음 알았다.
처음엔 그저 예의라고 생각했다.
바쁜 시간, 회사의 지침, 감정 관리.
하지만 하루에 수십 번씩 ‘죄송합니다’를 말하다 보면,
내 감정은 서랍 깊숙이 감춰지고,
나는 그 문장을 ‘반응’처럼 뱉어내게 된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도 온전히 바라보지 않는다.
그냥,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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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나의 일이지만,
그 사과가 나를 지켜주진 않는다.
웃음은 나의 무기지만,
그 웃음이 나를 위로하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정중하게, 조용히, 나를 버티고 있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계속 정중하게 버티고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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