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하게 버티는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할 수는 없다.

by 코기토



서비스직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처음엔 말이었고, 나중엔 표정이 되었고, 결국 내가 되었다.


서비스직 경력만 17년째다.

지금도 나는 억지웃음을 짓는다.

도대체 어디까지 웃으며 응대해야,

나는 겨우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걸까.



스무 살, 왕관 같던 나이.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영어 과외는 내게 잘 맞았다.

내가 아는 걸 가르치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친구들의 부와 부모님의 빚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결국 대학을 중퇴했고,

골프장 예약실에 취직해 기숙사 생활을 견뎠다.

그곳에서도 나는 ‘잘 웃는 사람’이었고,

고객의 감정과 내 감정을 자꾸 겹쳐 느꼈다.


부모님의 빚을 다 갚고 남은 건 천만 원.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 살아야 했다.

대학도, 기술도 없이

‘친절한 사람’으로만 살아온 나는

그저 백화점으로 흘러들어왔다.



어제, 같이 일하는 남자 주임에게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고객은 날카로운 글을 본사에 보냈고,

그 안에 주임의 이름은 여러 번 반복됐다.


사연은 이랬다.

손님은 자녀와 함께 시식을 여러 번 이용했고,

실수로 사용한 이쑤시개를 새 통에 다시 넣었다.

그걸 본 주임은 위생상 문제를 우려해 전부를 버렸다.


왜 버리냐는 고객의 질문에

“이미 사용한 것을 넣으셨어요.”

주임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했고,

그 말에서 일이 시작되었다.

그의 말투와 몸짓에서 불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컨디션이 나쁠 수도, 마음이 지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웃어야 하고,

내색하면 안 된다고들 말한다.


그 직원은 평소 친절한 사람에게는 정중했지만,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고객에겐 곧잘 거칠어졌다.

그는 말하길,

“그 사람, 자녀들과 몇 번이고 먹었어요.

다른 고객들 다 쳐다보는데도.

저런 분한텐 한 번쯤 알려줘야죠.”


그의 말이 전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부 맞는 말도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이 떠난 뒤 조용히 그것을 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판단하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 짧은 순간에 짜증이 나서 아차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루 10시간.

수십, 수백 명을 상대하는 시간 속에서

어떤 날은 세상이

목소리가 크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나는 웃는다.

하지만 그 웃음이 언제나 진심은 아니다.

내가 주는 친절이 늘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나의 방식으로 정중하게 버티는 중이다.

그게 지금 내가 이 일을,

그리고 나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이어가는 방식이다.



다음 글에서는,

‘서비스’를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과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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