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무상이 아닙니다.
요즘은 “제가 진상인가요?”라고 묻는 글이 자주 보인다.
그만큼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
이제는 예의와 이미지의 문제로까지 확장된 시대다.
서비스직에 근무하는 이상,
다양한 생각과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 조우한다.
사람마다 역린이 다르기에, 참을 수 있는 범위와 참을 수 없는 범위가 다르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서비스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
더 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전에 받았던 걸 기준으로 오늘을 재단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서 나는 매일 생각한다.
서비스는 어디까지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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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많이 샀으니 쇼핑백은 그냥 줘”형
결제 전에 이미 쇼핑백이 유료라는 안내를 마친다.
하지만 계산을 끝낸 뒤, “이걸 어떻게 들고 가냐”며 화를 낸다.
“많이 샀으니 담을 것이라도 줘야지.”
환경부담금이 부과된다고 설명해도,
“그건 너희 일이잖아”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치고
정말 많이 산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단골을 몰라보는 직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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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에 줬잖아요”형
“지난번에는 줬는데, 왜 오늘은 안 줘요?”
본사 프로모션이 바뀌었고, 품목도 다르다고 설명해도
되돌아오는 건 상처 같은 말이다.
“맨날 주던 걸 왜 안 줘?”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의 선의가 오늘의 당연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겪는다.
서비스란 결국, 한번 시작하면
끝없이 내어줘야만 성립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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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융통성 없네”형
서비스는 어디까지가 ‘배려’이고,
어디서부터가 ‘굴복’일까.
어떤 고객은 말한다.
“그렇게 융통성 없게 해서 장사되겠어?”
말은 웃으며 하지만, 그 말은 압박이다.
융통성은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이다.
규칙을 깨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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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줬다고, 계속 줘야 하는 게 서비스일까.
한 번 받은 적 있다고, 그걸 계속 요구할 수 있을까.
그게 선의였다면, 왜 그렇게 쉽게 권리가 되는 걸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진짜 받아야 할 사람은
언제나 조용히 웃고 돌아서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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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부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떤 말은 그냥 불렀을 뿐인데,
문장이 마음에 지워지다 만 낙서처럼 남는다.